▲법학과 95졸

만추입니다.

남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서울 시민에게도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합니다. 남산북부순환로는 사람통행만이 가능해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짝을 이뤄 걷는 시각장애우들, 조깅하는 내•외국인 들, 남산타워를 가기 위해 걸어가는 연인들도 보입니다. 지친 심신을 달래기 좋아 도심에 이런 곳이 있어 큰 축복입니다. 또한 남산을 에워싸고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해풍부원 군 후작 윤택영(순종효왕후 부친)저택이 있어서 좀 무겁지만 반면교사로 이 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순종은 1906년에 황태자 신분으로 태자비를 구했고, 윤택영은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앉히기 위해 뜨겁게 ‘로비’했습니다. 운좋게 딸이 태자비로 간택됐으나 그 과정에서 금 50만원(당시 고급저택 한 채 값이 1만원 정도, 현재 가치 5백억원)을 쏟으면서 큰 빚을 지게 됩니다. 윤택영은 황실과 사돈을 맺은지 1년만에 고종이 아관파천사건(1907년)으로 순종에게 양위하자, 황제의 장인(국구)이 되는 행운도 얻습니다.

하지만 국구(國舅)의 권 세를 부리면서도 윤택영은 말 못할 고민 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빚 문제였습니다. 태자비간택과정에서 생긴 빚에다가 국구의 품위유지를 위해 사치생활을 하다보니 재산이 압류되는 처지에 몰리고, 그러면 또 빚을 내어 막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빚에 시달리다 채무변제에 실패하자, 빚받이 소송이 쇄도했고, 채권자들은 1923년경 경성지방법원에 파산신청을 하여 1928년 2월경에 파산선고가 나자, 후작 작위를 박탈당하고 귀족예우가 중단돼 자연인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주위에도 개인 및 가계의 재무설계를 그르쳐 하우스푸어, 교육푸어, 자동차 푸어가 넘쳐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과다채무를 진 경우도 많지만 일부 사람들은 백화점에서, 술집에서 명품 구입이나 유흥비를 쓰다가 빚에 짓눌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비행태는 과 다채무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광고•판매 마케팅전략에 세뇌당하거나 개인의 신용도를 감안하지 않고 마치 현금을 주기나 하는 것처럼 신용대출과 신용카드 발급을 허용하는 세태에 기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소비자인 우리는 현재의 쾌락을 위해 미래를 담보하지 말고 좀 더 냉철한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지극히 필요한 때입니다. 취업공부와 학업만큼이나 개인의 재무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늦가을 지나 겨울초입 입니다만 취업준비와 학업을 잠시 접어두고 남산에 올라 낙엽을 밟으면서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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