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의 학내보도에 의하면 ‘학생들 스스로가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다함으로써 권리를 갖자’는 旗幟(기치)를 들고 ‘學園淨化(학원정화)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그리하여 우선 무감독시험으로써 그 시범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종류의 淨化(정화)운동이 지난날에 전연 없었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러한 운동의 요구와 필요성과 부르짖음이 그 頻度(빈도)를 재촉하면서 또다시 행동화되었다는데서 그 뜻을 찾고서 하는 것이다.
  일반사회에서 있어서의 부패가 그 사회구성원의 權能(권능)을 존중하지 못하는데서 싹트고, 그러함으로써 권리와 의무를 위한 행사가 헛되는 것을 보고 체험하는 이 환경 속에서 나마, 그러한 운동이 나타날 수 있는 갸륵한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을 자부하고자 할 따름이다. 사실에 있어서, 일반사회의 극심한 부패는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르렀음을 생각할 때, 한 나라 大學(대학)교육의 존립이 그 위기에 처했음을 통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大學(대학) 내의 쟁화운동은 그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결의의 발로이고, 행동이라는 측면에서 또 하나의 뜻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금번의 그러한 움직임에서 체득한 바와 같이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은 결코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행사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다.
  즉 大學社會(대학사회)는 大學生(대학생)들의 것이고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은 그 大學生(대학생)들로부터 싹 터나오는 것이며 그들에게 온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주변에서는 그 움직임이 늦게 싹터 행동화된 감이 있다.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이 헛되게 잠들어 있었고 그 理性(이성)은 大學社會(대학사회)의 屬性(속성)이 아닌 다른 社會(사회)에의 예속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날의 그러한 정화운동과 틀린 점을 거기에서 찾는 것이다.
  즉 다른 社會(사회)에의 예속 밑에서 이루어졌던 淨化(정화)운동과 스스로의 자각에 들어선 운동과의 큰 차이가 바로 그것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지난날의 그러한 운동은 순수한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의 所有者(소유자)가 아닌 者(자)들에 의하여 행동의 强制性(강제성)을 띠었다는 점에서 성공할 수 없었고, 그러한 절실한 요구에 同一化(동일화)될 수 없었다는 결정적인 결함을 찾게 된 것이다. 또한 示範(시범)의 운동마저 이룩될 수 없었다는 근본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더욱 이번의 운동이 학생 스스로에 의하여 싹텄다고는 하지만, 교수들의 협조와 아량 또한 저버릴 수 없는 계기로서 잠겨 있음을 솔직히 지적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볼 때, 學園(학원)淨化(정화)운동이 싹틈에 즈음하여 몇 가지의 행동방향을 本欄(본란)은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學園淨化(학원정화)운동은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이 있을 때 또는 있는 곳에서 성공될 수 있고,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학생의 어느 정도가 그 운동에 대하여 同一(동일)體感(체감)을 가지고 호응해 주느냐에 따라 大學(대학)발전에 계기로서의 그 운동의 질과 양의 면에 있어서의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둘째는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은 절대 物理的(물리적)인 힘에 의하여 造成(조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個別(개별) 理性(이성)의 단순한 線和(선화)가 아닌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힘으로의 轉化(전화)에서 그 類型性(유형성)과 指導性(지도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순수한 學園(학원)淨化(정화)운동이 小數(소수) 離脫者(이탈자)이며 ‘大學政治家(대학정치가)’인 少數者(소수자)의 計略(계략)에 의하여 이용될 수 없으며, 또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理性(이성)이 지니는 마지막의 불꽃을 짓밟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그 學園淨化(학원정화)운동을 앞장서서 이끄는 학생들의 마음의 자세문제이다. 그 운동에 앞장 서는 것은 결코 어떠한 특권이나 명예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理性(이성)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부심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평가를 훗날의 大學(대학)사에 미룰 수 있는 長期(장기)적이고 여유 있으며 필요 없는 외부자극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비록 ‘大學(대학)의 理性(이성)’의 바탕이 大學生(대학생)들에게 있다고 하지만 학생들의 자세에 못지않은 교직자들의 자세도 절실히 요구된다. 오히려 학생들의 그러한 움직임과 교직자들의 움직임이 競合(경합)될 때 보다 성공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의 운동이 성공의 결실을 맺도록 아낌없는 찬사와 모든 격려를 本欄(본란)을 통하여 우선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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