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사상과 제도·강한의지와 정체성 본받아야


  7백년 이상을 아름다운 청년국가로 성장하다가 갑자기 전사한 나라가 있었다. 청년국가라지만 그 국가는 그때까지도 흥망성쇄와 기복이 심한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나라였다.
  그 나라가 1천3백여년 만에 다시 부활하여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논문과 책으로, 그리고 춤과 음악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선 고구려 벽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21세기를 불과 2년여 앞둔 우리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뛰는 3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만 한다. 글로벌시대에 맞춰 세계화를 지향하고, 동시에 민족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또한 생존과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세계 및 동아시아의 신질서 재편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해결모델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검증을 생략하거나 유예와 실험기간이 보족한 서구이론을 수용하여 적용시키려 했었다.
  고구려는 우리가 잃었고 잊어버렸던 정체성을 찾고 되살리는데 꼭 필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정체성을 말하려면 성급한 사람들이나, 길들여진 사람들은 어설픈 국수주의의 발로이거나 강자 곁에서 좁은 땅에 만족하며 지내온 빈자의 대국콤플렉스 때문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구려를 통해서 몇 가지 달리 해석해야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반도민족인가? 고구려는 대륙의 평원, 북만주지역의 초원지대, 연해주일대의 삼림지대와 함께 한반도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동해와 황해의 중부해양을 해양활동의 영역으로 삼았다.
  이러한 자연영역을 확보하였으니 그들의 경제 형태와 문화양식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농경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초원에서 말과 가축 등을 키우는 유목민의 삶도 있었고, 대삼림지대에서 사냥을 하였으며, 해양민으로서 어업과 교역도 적극적으로 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와 삶의 응축물이 한민족의 문화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고구려는 우리가 대국, 즉 ‘중국콤플렉스’를 갖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껏 자민족의 문화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한 채 다른 문화의 주변부와 아류로서 쭈뼛거려 왔다. 그런데 고구려는 영토가 넓었고, 군사적으로 강국이었으며, 유목제국들은 물론 중국의 숱한 대국들을 패배시켰다. 그러므로 당당하고 자의식이 강했으며 세계국가적인 태도를 가졌다. 그리고 통념과 달리 독창적인 사상과 제도, 문화를 가진 문화국가였다. 자신들의 세계관을 가졌으며 미술, 체육, 건축술, 토목공학 등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무엇보다도 미의식이 뛰어났으며 자유의지가 강했다.
  또한 고구려는 세계화의 지평을 넓힌 제국지향적 국가였다. 주변의 많은 종족들을 자국의 국민으로 받아드렸고, 각각 다른 자연환경대에서 발생한 문화들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질적으로 승화시킨 이른바 자동족적, 다문화 국가였다. 이처럼 민족자아에 충실하면서도 국제적인 고구려 문화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특정문화의 주변부로 편입되려는 현재의 우리에게 한계를 깨닫게 하고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고구려의 현재적 의미는 또 있다. 고구려의 번성과 멸망은 동아지중해의 역학관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 동아지중해란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동해 남해 황해 등 중국해를 둘러싼 중국지역과 만주일대, 그리고 일본열도가 자리 잡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으로서 설정한 역사적 모델이다.
  5세기의 고구려는 긴박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의 질서재편과정에 능동적이고 현명한 태도를 취했다. 제1단계로 광개토대왕은 정치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팽창시켜 동아지중해의 전 영역에 걸친 중핵국가로 부상하였다. 제2단계로 장수왕은 해양력을 더욱 강화시켜 외교력을 바탕으로 동아지중해의 중핵에서 역학관계를 조정하여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7세기에 벌어진 전면적인 질서 재편 전쟁에서 결국은 패배하였다. 삼면포위전략과 70여년 간에 걸친 전쟁으로 국력이 소진되었으며, 해양력의 약화로 인하여 중핵조정역할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앞에 둔 지금 동아시아의 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면서 향후 민족운명의 기본틀이 결정되고 있다. 우리는 주변의 강국들에 비하여 정치 군사 경제력은 물론 문화력이 상대적으로 허약하다. 따라서 실수 없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응방법론을 절실히 모색해야 한다. 역사학이 단순한 교훈의 역할을 벗어나 미래예측지표의 기능을 하고, 대응방법론을 찾는 학문이라면 고구려는 우리에게 의미 있고 효율성이 강한 모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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