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동구사태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獨裁(독재)도 부르주아獨裁(독재)도 아닌 ‘고몰카’의 이른바 ‘社會主義要素(사회주의요소)와 民主主義要素(민주주의요소)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는 共産主義(공산주의)의 立場(입장)에서 볼 때 分明(분명)히 異端(이단)인 것이다.
  이러한 理論(이론)을 展開(전개)한 東歐(동구)의 共産主義者(공산주의자)들은 1945年(년)을 前後(전후)하여 ‘民族戰線(민족전선)’(알바니아), ‘祖國戰線(조국전선)’(불가리아), ‘愛國人民戰線(애국인민전선)’(헝가리), ‘反(반)파쇼民主(민주)쁠럭’(東獨(동독)), ‘人民戰線(인민전선)’(유고) 등으로 共産化(공산화)하기 시작하였으니 이들의 ‘유고’와 ‘알바니아’는 自體內(자체내)의 게릴라戰(전)으로 그 以外(이외)의 나라는 소련 占領下(점령하)의 無血共産化(무혈공산화)를 이룩하였다.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의 形成段階(형성단계)를 보면 大體(대체)로 1945年(년)에서 1948年(년)까지는 民主陣營(민주진영)과 共産陣營(공산진영)과 平和共存(평화공존)으로 共産黨(공산당)이 主導權(주도권)을 잡은 時期(시기)이며 1948年(년)에서 1952年(년)까지는 共産政權(공산정권)의 强化(강화)와 프롤레타리아獨裁(독재) 그리고 소련化(화)를 이룩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유고’의 ‘티토’(Tito)는 ‘코민테른’에서 除名(제명)되었으며 (1948年(년)7月(월)28日(일)), ‘폴란드’의 民族共産主義者(민족공산주의자)‘고몰카’(1948年(년)9月(월)3日(일))와 ‘헝가리’의 ‘라즈크’(1949年(년)9月(월)) 등이 權座(권좌)에서 축출당하였다. 이에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는 소련化(화)의 强力(강력)한 要求(요구)에 부딪쳐 變質(변질)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53年(년)3月(월)5日(일)‘스탈린’이 死亡(사망)하자 東歐(동구)에서는 새로운 自由化(자유화)의 물결이 擡頭(대두)하여 ‘첵코’ (1953年(년)1月(월))와 東獨(동독)(同年(동년) 6月(월))에서 3年後(년후)에는 ‘폴란드’, ‘헝가리’에서 大大的(대대적) ‘反(반)쏘련化(화)’의 民族主義(민족주의)물결이 휩쓸었다. 그러나 ‘푸루시체프’에 依(의)한 ‘소련化(화)’의 强壓(강압)은 드디어 ‘헝가리’ ‘폴란드’의 ‘反(반)쏘련化(화)’ 民族運動(민족운동)을 武力(무력)으로 탄압하였다.
  이러한 渦中(와중)에서도 ‘폴란드’의 ‘고몰카’는 새로 등장하였고, 20次(차) 共産黨大會(공산당대회)에서의 ‘푸루시체프’의 平和共存論(평화공존론)과 함께 ‘티토’와 和解(화해)를 이룩하였다. 그렇다고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의 本來(본래)의 性格(성격)과 政策(정책)을 承認(승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社會主義祖國(사회주의조국)러시아化(화)’를 試圖(시도)하여 그의 宗主權(종주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면 도대체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란 어떤 것일까.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를 主唱(주창)한 사람은 소련의 ‘바르가’, ‘불가리아’의 ‘디미토로프’, ‘폴란드’의 ‘고몰카’, 그리고 ‘유고’의 ‘티토’등을 들 수 있다. 헝가리 出身(출신)의 ‘E·바르가’는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를 ‘特殊(특수)한 類型(유형)의 民主主義(민주주의)’라 하였고 ‘디미티로프’는 ‘勞動者階級(노동자계급)과 農民(농민), 技術者(기술자), 知識人(지식인)들이 연합한 社會主義(사회주의)를 위한 鬪爭(투쟁)’이라 하였다. 또한 ‘티토’는 처음부터 人民戰線(인민전선)의 基礎(기초)위에 人民民主主義政權(인민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고 프롤레타리아 獨裁(독재)의 過程(과정)을 겪지 않고도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에서 社會主義(사회주의)로 移行(이행)할 수 있다고 主張(주장)하였다.
  그러면 이와 같은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는 政治的(정치적)으로나 經濟的(경제적)으로나 소련과는 달리 修正主義(수정주의)로서 看做(간주)한다면 分明(분명)히 階級乃至(계급내지) 階層間(계층간)의 利益(이익)이 倂存(병존)하여야 할 制度的(제도적) 保障(보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制度的(제도적) 保障(보장)은 名目上(명목상)의 理論(이론)일 뿐 産業(산업)의 國有化(국유화), 土地改革(토지개혁) 및 集團農場化(집단농장화)를 敢行(감행)하여 그들의 이른바 ①生産手段(생산수단)의 全人民的(전인민적) 社會主義的(사회주의적) 所有(소유) ②生産手段(생산수단)의 協同組合的(협동조합적) 所有(소유) ③勤勞農民(근로농민), 手工業者(수공업자), 家內手工業者(가내수공업자)의 資本主義的(자본주의적) 所有(소유)는 無實(무실)하게 되고 프롤레타리아 獨裁(독재)의 社會主義的所有(사회주의적소유)만을 合理化(합리화)시켜 왔던 것이다.
  이러한 ‘巨獸(거수)’ 앞에 獨自的(독자적)인 方向(방향)을 잡지 못한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는 ‘社會主義者分業(사회주의자분업)’이라는 帝國主義的(제국주의적) 추종을 脫皮(탈피)하려는 努力(노력)의 일단이 ‘티토’의 修正路線(수정노선)이었던 것이다. ‘티토’는 1956年(년) 소련과의 友好關係(우호관계)를 再開(재개)하였으나 1958年(년)4月(월) 制(제)7次(차) ‘유고共産主義同盟(공산주의동맹)’에서 다시금 후루시체프의 改革案(개혁안)을 反對(반대)하고 修正主義的(수정주의적) 新綱領(신강령)을 채택하여 獨自路線(독자노선)을 指向(지향)하였으니 東歐衛星諸國(동구위성제국)가운데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의 命脈(명맥)을 유지한 유일한 나라라 할 수 있다. 그 후 ‘고몰카’의 登場(등장)으로 ‘폴란드’도 獨自路線(독자노선)을 찾는데 ‘유고’ 다음의 위치를 찾게 되었다. 特(특)히 共産國家中(공산국가중)에서도 ‘유고’와 ‘폴란드’는 美國(미국)의 원조를 받아왔던 事實(사실)도 看過(간과)할 수 없다 하겠다. 이러한 일련의 自由化運動(자유화운동)이 多中心主義(다중심주의)(多極化(다극화)의 물결을 타고 最近(최근)의 共産協議會(공산협의회)(부다페스트會議(회의)) 以後(이후) 더욱 노골화되어 이제는 ‘社會主義祖國(사회주의조국)러시아’에의 宗主權(종주권)은 世界(세계)의 鳥類(조류)앞에 屈服(굴복)하고 말았다.
  特(특)히 中蘇紛爭(중소분쟁)을 契機(계기)로 하여 ‘스탈린化(화)’의 方向(방향)은 아이러니하게도 中共(중공)과 ‘알바니아’에게 넘어갔으며 소련도 修正主義路線(수정주의노선)을 걷게 되었으니 ‘W·E·그리피스’ 敎授(교수)는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와 修正主義(수정주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修正主義(수정주의)란 東歐(동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맑스‘初期(초기)의 理想主義(이상주의) 特(특)히 人間(인간)의 價値(가치), 국제주의, 人類(인류)의 福祉(복지)를 다시 찾기 위한 것이며 ‘베른슈타인’ ‘바크닝’ ‘부카린’ ‘트로쯔키’의 이상을 結合(결합)시킨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여 첫째로 修正主義者(수정주의자)들은 소련 共産黨(공산당)과 他國共産黨(타국공산당)과의 關係(관계)에서 從屬關係(종속관계)를 거부하고 社會主義(사회주의)에의 길이 다를 수 있음을 認定(인정)하고 둘째로 ‘푸롤레타리아’革命(혁명)이 아니더라도 民主指導原則(민주지도원칙)으로 社會主義化(사회주의화) 할 수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集團農場(집단농장), 重工業優先(중공업우선), 經濟機構(경제기구)의 中央集權化(중앙집권화)의 漸進主義(점진주의), 넷째로 知識文化(지식문화)면에서 自由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梁興模(양흥모) 思想界(사상계) 63年特別號(년특별호)p.206)
  따라서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와 修正主義(수정주의)는 큰 差(차)가 없으나 다만 共産化(공산화)의 前提條件(전제조건)이라는 共通點(공통점)이 있으며 修正主義(수정주의)는 이들을 포함한 動的(동적) 包括的(포괄적)인 作用(작용)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는 政策(정책)의 多樣性(다양성)이 다소 있다 하겠으나 社會主義祖國(사회주의조국)에 대한 忠誠(충성)의 强要(강요)로 變質(변질)되었다가 이제는 國際的(국제적)인 多元化(다원화)의 現象(현상)에 따른 自由化(자유화)의 變質要請(요청)이 强力(강력)하게 대두되고 말았다. 1956년 ‘헝가리’의 ‘피의 鬪爭(투쟁)’이래 12년이 경과한 지금에 이르러 드디어 旣成保守派(기성보수파)와 新進進步派(신진진보파)의 鬪爭(투쟁)으로 化(화)하고 말았다.
  이러한 新(신)·舊(구)의 갈등이 人民民主主義(인민민주주의)의 方向(방향)을 民族主義(민족주의)와 自由化(자유화)로 變化(변화)시켰으니 ‘체코’의 한 文藝誌(문예지)는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은 固定觀念(고정관념)이나 우리들 舊世代(구세대)의 성급성 때문에 지나치게 침해를 받고 있다. 그들의 自由時間(자유시간)마저 완전히 組織(조직)속에 파묻혔다. 낭만적이란 것이 없다. 獨自的(독자적)인 人間(인간)은 극히 드물다.’고 하였으며 어떤 젊은이는 ‘그들은 (旣成保守派(기성보수파)) 우리가 無意味(무의미)한 것에 意味(의미)를 가져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여 그들은 이제 ‘희생자의 立場(입장)’만을 취할 수 없다고 主張(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變革(변혁)의 要求(요구)앞에선 東歐共産諸國(동구공산제국)은 底流(저류)하고 있는 民族主義(민족주의)와 自由化(자유화)의 挑戰(도전)을 거역할 수 없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미 國際政局(국제정국)은 내셔날·인터레스트라는 要求(요구)앞에 挑戰(도전)받은 지 오래였건만 이제야 東歐共産諸國(동구공산제국)에서 서서히 新(신)·舊(구)의 갈등이 노골화 되고 있다는 事實(사실)은 世界史(세계사)의 흐름에 順應(순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苦痛(고통)스런 運命(운명)앞에 서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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