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것도 없이 大學生(대학생)이란 學問(학문)을 하는 젊은이를 두고 이름이다. 學問(학문)을 하는 젊은이란 따라서 아직은 미숙한대로 학문을 정열적으로 파고드는 쟁기를 보유한다. 아직은 미숙하다는 것은 한편 또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을 뜻한다.
  학문에 대한 이 순수한 정렬은 곧 미래의 대성을 약속하는 전제가 된다. 다시 말하면 순수한 정열은 대학생의 본질적인 속성이 되는 셈이다. 이 속성의 위에만 미래의 대성이 꽃피기 때문이다.
 이 순수한 情熱人(정열인)이란 이름의 대학생은, 또 탐구하고 모험하고 개척을 하는 知的(지적)인 生活人(생활인)이란 이름으로 바꿀 수가 있다.
  학문뿐이 아니라, 生活圈(생활권)속에 드는 모든 事象(사상)들에 知的(지적)인 분석과 비판을 가하여 그것을 개혁하고 혁신하는 힘이 바로 대학생의 첫째 요인이 되는 셈이다.
  프랑스 속담에 <만약 젊은이가 안다면, 그리고 늙은이가 할 수 있다면…>하는 명귀가 있다.
  젊은이에게 知的(지적)인 식견이 있고, 늙은이에게 아직도 젊은 정열과 능력이 있다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있겠는가?
  한데 孟子(맹자)말씀대로 하늘은 한사람에게 두 가지 能(능)을 함께 태워주지 않았던 것이다. 젊은이에게 열정과 능력을 주어놓고서는 知的(지적)인 식견을 빠뜨려놓고, 늙은이에게 식견과 달관이 주어지면서 하늘은 이제 그에게서 젊은 열정과 능력을 회수해가는 것이다. 이래서 인생은 항시 아쉽고 그립고 한것일까?
  그러나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은 그 하늘의 섭리를 앉아서 감수하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물길을 달리 되돌려대는 부단한 시도를 감행하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로서의 첫 출발, 그래서 비로소 현대인은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요, 주어진 운명의 노예상태에서 부단히 해방되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생이란 이름의 젊은이가 <할 수 있는>능력의 위에 <아는>知力(지력)을 갖추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운명에의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山(산)과 바다와 하늘과 그 모든 自然(자연)의 크기 앞에 자신을 놓고 보며 사람은 <어찌하여 造物主(조물주)는 나를 이렇게도 微少(미소)한 인간으로밖에 태워내주지 않았는가>고 탄식한다.
  그것을 아는 이는 그 自然(자연)의 크기에 도전함으로써 자신을 그렇게 미소한 것으로만 태워준 조물주에게 항거한다.
  대학생이 등산에 앞서는 것도 그 知的(지적)인 挑戰(도전)이 그 첫 원인이 된다.
  대학생의 생활이 그렇듯이 대학생의 등산이 知的(지적)이어야 할 것은 논리의 당연한 귀결이 된다.
  대학생은 그 젊은 체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것을 知的(지적)으로 관리하면서, 보다 높고 큰 山(산)의 정복에 집중한다.
  <록·크라이밍>에서도 그렇다. 젊은 체력만 믿고 이에 대하면, 대개의 경우, 엉뚱한 사고를 낸다. <슬랍>을 기어오르는데 필요한 三點確保(삼점확보)의 기본이론이라든가, <침니>등반이나 <압자일렌>의 역학적인 이론이 모두 프랙션, 즉 마찰이 주는 持續力(지속력)의 응용에 있다는 구체적인 開眼(개안)에 그 知力(지력)을 동원한다.
  岩壁(암벽)에 대한 등과 발바닥과 손바닥의 접착에서 일어나는 마찰의 중력을 이용하여 그 등과 손과 발을 올려 놓음으로써 몸 전체를 위로 끌어 올리는 물리적인 터득이라든가 直壁(직벽)에 대해서 垂直的(수직적)인 降下(강하)의 속도를 줄이는데 자일과 몸의 마찰의 지도력을 이용하는 압짜일렌의 방법이 물리적인 이론의 바탕에서 나온 거라는 사실에서부터 이에 개량을 가하는 방도-그런 것에 필요한 면모가 된다.
  장마철의 시냇물 건너기를 비롯해서 積雪期(적설기)등반에 대해서 보행과 휴식에 따르는 체력관리, 식량의 영양학적 고려와 그 보관법의 개량, 讀圖法(독도법), 쟈일의 操作(조작), 캠핑에 요긴한 지식과 그 기술적인 개척, 그리고 무엇보다 地理(지리) 및 地學(지학)의 섭렵, 直等法(직등법)을 비롯한 등반법의 새로운 모색, 이 모든 知的(지적)인 활동이 있어 비로소 대학생의 登山(등산)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目的地(목적지)의 주변에 산재하는 학구적인 대상에 대한 집요한 관심도 중요한 제목이 된다.
  굳이 학술조사단의 명목을 띄지 않더라도, 생물의 분포, 기상관측, 지질조사, 나아가서는 방언과 민요, 풍속의 민속학적 수집, 그 곳의 향토개발에 필요한 기본조사는 오히려 이런 우발적인 각도에서 뜻밖의 학문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가가 남아돌아가고, 체력이 넘치고, 낭만끼가 푸짐하여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는 모든 생활주변에 대한 知的(지적)인 욕구가 따르지 않아서는 안 될 일들이다.
  놀이삼아 登山(등산)을 하드라도 대학생의 등산에는 어딘가 다른 데가 있기 마련이다.
  옷차림새는 물론, 그들의 노래, 그들의 행동거지가 다른 것은, 그들이 모든 주변에 대해서 언제나 知的(지적)인 활동을 게을리 하고 있지 않다는 그 태도가 저절로 거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