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로 현실 돌아보기

폭염에 지쳐버린 여름 재난형 한국영화들이 극장을 채웠다. ‘설국열차’를 비롯하여 ‘더 테러 라이브’, ‘감기’, ‘숨바꼭질’은 놀랍게도 우리 현실을 재난적 상황으로 번역해내는 유사점을 보여주는데, 꼬리에 고리를 물고 흥행 행진을 벌이고 있다.

폭염 속에 냉기를 몰고 도착한 ‘설국열차’는 차별로 얼룩진 인류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온난화 해결책이 빙하기 부작용을 일으켜 꽁꽁 언 지구를 도는 열차만이 생존공간이다. 17년간 달려온 열차는 꼬리 칸 빈자들과 앞 칸 부자들로 나누어진다.

바퀴강정으로 연명하는 꼬리 칸은 엔진작동과 앞 칸의 필요를 채워주는 노예 같은 처지이다. 신격화된 엔진설계자 윌포드의 지배와, 그를 절대적으로 섬기는 메이슨의 탄압 속에 시달려온 꼬리 칸은 혁명을 꾀한다. 대장 커티스는 겨우 살아남아 윌포드를 만나지만 정신적 지주 길리엄이 윌포드와 내통해 온 것을 듣고 주저앉는다. 나가면 얼어 죽는다는 겁에 질린 이들과 달리 바깥 풍경을 관찰해온 남궁민수는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변화를 알아차린 유일한 인물이다. 그것은 기존체제 변혁보다는 떠나버리는 탈주이다.

영화 서사는 억울한 약자들의 저항과 사악한 소수 지배의 횡포를 대치시키며 풀려나간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수많은 이미지 상징과 사회 문화적 코드가 화면에 넘쳐난다. 칸마다 거쳐가는 이동은 근대화 역사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따라잡는 것만 같다. 바퀴강정을 보면 히틀러가 인간을 바퀴벌레 취급해서 학살했다는 아도르노식 탄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해양생태 칸에 등장하는 물고기들과 스시바, 위협용으로 등장하는 생선 피, 생선을 밟고 미끄러지는 커티스는 앞날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메이슨이 꼬리 칸을 위협하며 보여주는 손동작은 기계모터 동작이자, 그녀 역시 하위층 출신임을 보여주는 이미지 언어이다. 세세히 들여다볼수록 음미할 요소가 가득하기에 두 번 보면 더 재밌는 영화가 바로 ‘설국열차’이다. 평생직장 없는 시대, 청년들을 죽이는 ‘취업열차’, 예뻐지려다 죽어나가는 ‘뷰티열차’같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설국열차’ 신드롬’은 흥미진진하다.

팁: ‘더 테러’는 미디어 권력과 공권력의 결합을 집요한 긴장 속에서 고발한다. ‘감기’는 위협적 바이러스로 폐쇄된 분당을 무대로 정치판세의 위협을 절절하게 드러낸다. 집을 공포의 공간으로 설정한 ‘숨바꼭질’은 부동산 투기 공화국에 사는 무주택자의 설움을 건드린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