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기행 -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도초도

 ▲선왕산에서 내려다본 비금도 풍경. 선왕산은 해발 255m에 불과한 조그마한 산이지만 능선을 함께 달리는 그림산과 더불어 볼거리가 많다.

대학생이 섬을 찾을 기회는 많지 않다. 섬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섬은 무한한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소통의 상징일지 모른다. 섬마다의 색다른 볼거리는 육지에서 찾을 수 없었던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섬마을을 찾아 본지는 대학생 기자단 50여 명과 함께 서울에서 약 300㎞ 떨어진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도초도로 떠났다.

전라남도 신안군은 1,004개의 섬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해서 ‘천사섬’이라 불린다. 그 중 비금도와 도초도는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차도선으로 2시간을 달리면 닿을 수 있다. 비금면 가산항으로 가는 뱃길은 많은 섬 사이를 구불구불 지난다. 바다 곳곳에는 김을 양식하는 지주(支柱)가 눈에 띈다. 바다를 내려다봤다. 부서졌다 만났다 하는 물보라는 배가 지난 자리를 똑같은 간격으로 수놓고 있었다.

배에서 만난 유삼옥 할아버지는 비금면 주민이다. 할아버지는 목포의 약국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우리가 비금과 도초에 가는 길이라 설명하자, 비금이 고향이신 할아버지는 당신 동네 자랑에 바쁘셨다. “비금에 왔으면 간재미(가오리)랑 병어를 묵어야제. 가산 가믄 바로 염전이여, 소금 구경도 가보고. 근데 오늘 날씨가 구려서 우쨔노.”

하늘과 바다가 준 선물 천일염

얄궂은 날씨였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바다안개가 자욱했다. 안개와 바닷바람 사이로 안좌, 팔금을 통과해 가산항에 내렸다. 이곳에서 조금만 걸으면 드넓은 산과 하늘, 바다를 품은 염전이 펼쳐진다. 비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천일염을 생산한 곳으로 유명하다. 1946년 첫 생산을 시작으로 50~60년대에는 염전 사업이 큰 호황을 누렸다. 비금에서 먼저 개발된 대동염전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보존되고 있다.

동행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최성환 박사는 날씨 때문에 소금채취 체험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주일 중 하루라도 비가 오면 생산이 어려워요. 비가 안 오는 날 중에서도 햇빛이 쨍쨍할 때만 작업을 하고요.”

아쉬운 대로 염전에 가까이 서서 소금을 관찰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얗고 조그만 정육면체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신안 천일염은 다른 소금에 비해 미네랄 함량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보다 칼륨을 3배나 더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비금도에서의 만찬은 주민들이 직접 준비해주셨다. 비금도 바다에서 직접 잡아 올린 병어와 톳이 메인 메뉴. 병어회무침과 새콤달콤 톳무침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천일염으로 절인 김치도 별미였다. 상을 차려주신 비금면 여성회 어머니들은 오히려 “맛있게 잡숴 줘서 정말 고맙다”며 좋아하셨다. 비금 주민들이 손꼽은 명소는 섬 북쪽에 자리한 명사십리 해수욕장. 백색 모래가 십 리에 걸쳐 펼쳐져 있어 명사십리(明沙十里)다. 모래사장에 올라서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 단단한 모래가 인상적이었다.

이튿날 비금의 남쪽 허리를 가로지르는 선왕산을 찾았다. 등산길이 잘 정비돼있지 않아 정상에 오르려면 바위를 건너고 풀을 헤쳐야 한다. 그렇지만 굳이 꼭대기에 오르지 않아도 중간중간 아름다운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산 중턱에서 비금도 동서남북을 굽어보면 멀리 크고 작은 수많은 섬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바둑판을 그려 놓은 듯한 염전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비금에서 나고 자란 바둑 천재 이세돌이 선왕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실력을 갈고닦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오르면 하트 모양 해변으로 이름난 하누넘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다녀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나서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란다.

천사 마을 지키는 고란리 석장승

 

선왕산에서 하누넘 쪽으로 하산해 버스를 타고 서남문대교로 향했다. 비금과 도초는 1996년 이 다리가 완공되면서 한 몸이 되었다. 도초도 남쪽에 자리한 시목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 반원형으로 조성돼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물이 빠진 갯벌의 숨구멍에 맛소금을 뿌리면 쏘옥 하고 얼굴을 내미는 맛조개와의 만남도 재미있다.

버스는 고란리로 향했다. 신안에서 가장 넓은 고란 평야를 가로질러 마을 입구에 이르면 눈을 부라리는 석장승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의 재앙을 막아준다는 장승은 보통 나무로 만드는데, 특이하게도 이곳에는 석장승이 많다. 고란리 외에 도초면 외상마을, 비금면 월포마을에도 석장승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고란리 석장승은 타원형의 튀어나온 눈과 커다란 귀가 인상적이다. 위압감을 주려고 윗니와 아랫니를 드러낸 입은 오히려 익살스러워 웃음이 난다.

다시 찾고 싶은 조용한 섬마을

목포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비금면 수대항으로 향했다. 비금에 하루를 머물렀지만 도초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한번 찾았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다시 찾아오더라는, 유삼옥 할아버지의 믿거나 말거나 섬 자랑이 생각났다.

신안의 여러 섬들 사이에 다리가 놓여 목포까지 연결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한다. 목포에서 차를 타고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육지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이곳에서 자동차의 속력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수만 년을 달려온 섬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명사십리 모랫길을 밟으러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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