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우위의 이데올로기 파괴 돼

性差(성차)원인설 生理主義(생리주의)에서 文化主義(문화주의)로
男性(남성)의 女性化(여성화)는 찬부리化(화)의 일종
男女(남녀)의 性差(성차)는 생물학적 本性(본성)에서 생겨


  모든 學問(학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대전제를 내걸고 출발했다. 만학의 어버이격인 哲學(철학)에서 과학에 이르기까지 그 기본 명제는 인간 탐구인 것이다. 本考(본고)에서는 인간탐구의 성실한 방법의 하나인 性差論(성차론)을 알아봄으로써 인간의 연구에 접근하고자 한다. ◇편집자 註(주)◇

  어느 사회에서나 ‘自明性(자명성)’이 지배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왜 그러한가’하는 물음에 대하여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하는 대답밖에 나올 수 없는 부분들이다.
  남녀에 관한 문제들이 바로 이러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아마 어느 사회치고, 남녀의 兩極現象(양극현상)처럼 선명하게 自明性(자명성)이 드러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사회 속에서의 남녀의 역할은 남성은 남성,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운명적 사실 하나만으로 결정되어버린 필연적인 행동유형이고 남녀라는 性(성)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식, 이것이 주로 自明性(자명성)을 규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왔다.
  남녀의 性差(성차)는 이른바 생물학적인 본성에서 생기고, 이 기반으로부터 남녀별의 행동유형이 결정되며, 따라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심리학적 특성도 아울러 형성되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性別(성별)에 수반되는 이러한 믿음은 다른 민족과 사회에 관한 정보가 없었고, 사회 속의 행동을 모두 개인 심리의 동기에서 2차적으로 유발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시대에 있어서는 성의 역할이 그러한 自明性(자명성)으로 강조된다고 하여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쩌면 주관적인 소견과 종교적 독단으로까지 비약한 性差(성차)에 관한 사상들은 19세기로 접어들면서부터 도전을 받기에 이른다.
  19세기가 되면서부터 남녀의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과학적, 실증적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때마침 여성해방의 물결을 타고 이제까지의 性差觀(성차관)을 뒤엎는, 비록 性差(성차)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生物(생물), 生理的(생리적)인 것에 근원을 두지 않는 사회, 문화적인 환경 차에 의한 것이라는 방향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나갔다. 즉, 성차사실의 원인으로서 생물, 생리주의와 사회, 문화주의라는 두 개의 갈래가 생겼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후자의 견해가 지배적인 것으로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느 한편의 입장에만 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오히려 性(성)과 性行動(성행동)을 실존적 인간의 기본적 사실로서 파악하고 싶은 것이다. 性差(성차)는 여기서부터 부차적으로 생기는 인간적 행동의 한 단면일 뿐이다.
 

  性差(성차)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부터라 했지만, 그 이전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수하다는 이데올로기가 당연시 되어왔기 때문에 性差(성차)에 대한 연구가 싹틀 수가 없었다. 그런데 교육과 산업이 발전함에 잇따라 女性(여성)의 정신적 능력과 특성을 비교하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의 촉매가 된 것이 영국의 골톤(Galton, F.)을 비롯한 個人差(개인차)의 연구들이고, 불란서의 비네로부터 시작된 테스트의 연구들이었다.
  골톤은 1869년 ‘유전적 천재’라는 책에서 個人差(개인차)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고, 이와 관련시켜 握力(악력)과 고음소리에 대한 감수성, 악조건 속의 작업능력 등은 남자가 우세하고, 고통을 감수성은 여자가 낫다는 것을 제시했다. 또 미국의 길버트(Gilbert, J.A.) 등은 감각의 반응속도 등에서 남녀 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제시하였고 이태리의 오트레니(Qttolenghi, O.S.)는 여성의 촉각이 남성보다 훨씬 예민하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테스드의 연구에서도 시초에는 性(성)차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 연구가 진척되어감에 따라, 지능구조에 대한 관심이 고조하게 되었고, 지능의 전체수준에서는 性(성)차가 없으나, 문제의 종류에 따라 性(성)차가 있다는 것, 지능의 양적차이뿐만 아니라 질적인 차이도 있다는 것, 남녀의 사회적 제반 조건과 생육, 교육조건과 성격의 차이에 따라 지적차이도 나타나는데 이는 성차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 등이 발표됨에 따라 성차에 대한 관심들이 점점 높아져가게끔 되었다.
 

  性差(성차)연구를 그 역사적 동향으로 보면 27년도부터 性差(성차)에 관한 전반적인 분석이 활발하게 시작 되었지만 2차대전시에는 性差(성차)의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것이 전후에도 그 영향이 계속되어 이제 그 연구결과는 男女(남녀)에 관한 이제까지의 사상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게끔 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性差(성차)의 규정요인을 탐색하는 측면보다는 남성과 여성의 社會(사회)에서의 性(성)역할의식에 그 연구의 초점을 둔 연구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연구는 아이들이 몇 살부터 또는 어떠한 방식으로 男女別(남녀별)의 성격과 태도를 갖게 되느냐, 그것을 남성으로서 또는 여성으로서 어떻게 의식하느냐 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 것으로서 주로 프로이트 法(법)에 의하여 판정되었다.
  문화 속에서 性別(성별)에 따라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행동특성, 인격의 특징을 우리는 보통 性役割(성역할)이라 한다. 즉, 性役割(성역할)이란 性差(성차)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로부터의 기대되고 스스로가 지각한 역할을 말한다. 이러한 性役割(성역할)을 습득하는 것으로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면 性差(성차)의 내용은 어떻게 규정되는 것인가, 나마다움과 여자다움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性差(성차)의 근원을 캐보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生物學的性差(생물학적 성차)와 사회적, 문화적 성차로 나눌 수 있겠다. 생물학적 성차란 남녀들이 갖는 염색체의 차이를 근본으로 하고, 성장과정에 있어서의 體重(체중), 身長(신장) 기타의 발육상태의 차이, 사춘기 이후의 性(성)호르몬 分泌(분비)의 차이, 또 이를 바탕으로 하는 生殖機能(생식기능)의 차이 등이다.
  이와 같은 차이들은 어떠한 문화ㆍ사회 속에서도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生物學的(생물학적)차이를 토대로 남녀의 성격구별을 설명하기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예로 남자가 제 아무리 잘난 체 해도 아이는 낳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여성을 ‘아이 낳는 性(성)’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해석해가는 방식이 있다. 즉 여성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기 때문에 남을 공격하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경향이 생기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보살피는, 새들의 保護本能(보호본능)과 같은 성격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애’, ‘결혼’과 ‘자식과 남편을 돌보는 것’등이 여성의 전부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애는 남성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단막극에 불과하지만, 여자에게는 문자 그대로 ‘목숨’과 같은 것이 된다. 아무리 여성다운 여성이라도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감성을 발휘한다. 보호본능이 출산생리와 一義的(일의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단칸王(왕)을 죽이게 한 맥베드 夫人(부인)은 남편을 출세시키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여성의 허영과 탐욕과 잔인도 다 이러한 생리적 여건에 무리가 있다고 설명해버린다. 남성이 여성보다 바람기가 많다고 비난하지만, 이것도 생리적인 것으로 별로 여성이 더 도덕적이기 때문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개․고양이․염소․토끼 등 모든 하등 포유동물의 암컷은 일정한 시기 이외에는 교미가 되지 않지만, 수컷은 언제나 할 수 있다. 도대체 성기의 구조부터 수컷은 자극받기 쉽고 따라서 수컷은 억제하기 힘들게 되어있지 않은가…. 하여튼 이러한 생물적 조건 때문에 여성은 수동적인 것이고, 받아들이는 쪽으로만 되어 있는 성이기 때문에 아양과 미태가 절로 나타나는 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이유로 유행도 쫓고 허영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나 이러한 해석들에는 무언가 석연치 못한 점이 있다. 하나의 원리를 독단적으로 제시하고선, 만사를 단정해버리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가설만 있고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 할 하등의 증명이 없다. ‘지배자의 유추’ 심리라는 것이 있는데, 지배자가 자신의 허점을 언제나 약자에게서 확대시켜 발견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가령 남학생이 수학을 싫어했을 경우, 친절하게도 여학생들은 더 싫어할 것이 아닌가 하고 추리하는 스타일이다. 대철학자 칸트마저도 이러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여자에게 기하학을 가르치는 일 같이 잔인한 짓은 없다’라고 했다지 않는가.
 

  이상과 같은 여러 편견들은 여성의 마음에 관한 연구들이 주로 남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설을 낳게끔 했다. 아프리카를 탐험한 대부분들의 탐험가들이 원주민들에게서 구조를 받을 때, 구조에 솔선하는 사람들이 대개가 여자들이라는 것을 기록에서 읽은 롬부로소(Lombroso, A.)는 여자는 남자보다 동정심이 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지만, 이는 그가 탐험가들이 모두 남자였다는 사실을 간과한 때문이었다. 여자는 사실 동성에게는 그다지 동정적이지 못하다. 여의사가 남자환자에게는 친절해도 여자환자에게는 그렇게 사무적일 수 없고, 여학교 노처녀 사람의 잔인성을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性差(성차)의 어디까지를 生理的(생리적) 원인으로 잡아야 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난점이 있는 것이다. 비근한 얘기로 월경은 여성만의 생리현상이지만, 이것과 여성성격과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프로이드와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初潮(초조)가 쇼크가 되어 리비도가 억압을 받고 여성은 수동적으로 여자는 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보봐르(S. Beauboir)는 그의 ‘제2의 性(성)’에서 性(성)을 자각하는 가장 큰 계기로 초조를 들고 있다.
  실제로 초조체험에 대한 질문조사들에 의하면 초조로 인하여 생활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학생이 22%, 근로청년 중에 약 12%로 나타났고, 그것도 어떻게 변화했냐는 물음에 ‘순진성이 없어졌다’가 제일 많고 ‘이성에 관심이 생겼다’ ‘자랑스러움을 느꼈다’라는 답이 많았다는 것이다. 요즘의 여성들은 초조에 관해서는 부모나 교사들로부터 이미 배워 알고 있기 때문에 놀란다든지 슬퍼한다든지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여자가 수동적으로 되는 것은 쇼크 때문에서가 아니라 ‘사회의 기대’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즉 사람은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남녀로 구별되어 취급받는다. 먼저 깃저고리부터가 다르다. 이어서 여아는 여자다운 이름이 붙여진다. 그리고서 옷, 여러 가지 소유물, 말씨, 행동거지 등 모든 것이 ‘여자답게’ 길러진다. 국민학교 때는 ‘여자답게 얌전해야지’ 중학생 때는  ‘여학생이 되었으니 부엌일만은 거들어야지’ 고교생이 그러면 ‘말괄량이를 누가 며느리로 데리고 가겠느냐’라는 식으로 길러진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사회의 관심과 틀 속으로 얽매여 들어간다. 즉 사회에 의하여 여성성격이 만들어져 가는 셈이다.
  “만들어서 간다”는 입장에서 프로이드는 유별나게 성적(sexual)인 면을 강조하여 해석한다. 그는 여자아이들이 어릴 때 남자아이들의 성기가 자기들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열등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이 응어리가 되어 여성 특유의 콤플렉스가 되는데, 여성들의 남자선망의식은 이렇듯, 어릴 때부터 싹터왔다는 것이다.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것도 페니스 代償(대상)때문이라는 것. 정말 그럴까. 신프로이드학파의 여성학자 호오나이(Horney, K.)는 프로이드의 그러한 생각에 반대한다.
  프로이드는 주로 노이로제에 걸린 부인환자들만 분석한 결과로 그러한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고 본 것이다. 부인들의 노이로제 현상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남자들을 지배하고 싶다, 남자들처럼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다는 식으로, 분석의사는 이것을 페니스 선망의 콤플렉스를 나타내는 것이라 단순하게 판단해 버린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분석자의 그러한 말에 환자 중에는 다른 분명한 사단을 짐작하면서도 眞相(진상)을 그냥 덮어두고 싶은 동기로 해서 그 분석을 쾌히 받아들이는데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나의 남편은 나를 조금도 돌봐주지도 않고 귀여워 해 주지도 않습니다. 히스테리가 될 수밖에 더 있나요”하면서 호소하는 환자가 있다고 하자. 분석의사는 사정을 잘 들은 후에 “당신 남편은 훌륭한 분입니다. 다만 사업에 열중하다보니 무관심하게 된 것 뿐이지요. 부인은 너무 과욕이십니다. 참을성이 없는 성품이라 보아지네요”라고 설명했다고 하자. 환자는 “이 엉터리 의사!”하면서 분개한 나머지 증세는 더 악화할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부인의 불만은 이유가 충분합니다. 여자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언제나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 마음 속 깊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남편으로 향하여 표현되었다 해서 조금도 무리라 볼 수 없지요. 부인은 여성이라는, ‘페니스’를 갖지 못한 性(성)으로 생을 향유케 한 하느님에 대하여 언제나 원망하는 잠재의식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지요”라고 설명했다면 얼마나 피차 마음편한 일이겠는가.
  호오나이는 만일 여성이 남성으로 되고 싶어 했다면, 그것은 신체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조건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든 섹스이든, 가정이든, 자식이든 어떠한 것이든 여자가 바라는 것은 언제나 남성들의 손에 의해서만 모두 주어져 왔던 역사 속에 여자들이 너무나 오래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회 환경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여성은 의존적 존재로 되어버렸다. 그러나 의존 만 하는 생활에는 반드시 거기에 따르는 부차적 현상이 생기는 법. 여자는 그러한 속에서 여자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사회적으로 열등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열등감이 드물게 그러한 남성선망이라는 병적 상황으로 전환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호오나이 이외에도 여러 사회학자, 문화인류학자, 심리학자들이 사회적 여건에 의한 성차현상을 다방면으로 연구하고들 있지만, 그 중에서도 미드(Mead, M.)의 미개사회에 있어서의 남녀연구처럼 남녀의 성역할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문화적 규정요인에 의하여 지배되는가를 보여주는 연구도 없을 것 같다.
  즉 뉴기니아의 몬드구몰 族(족)은 여자가 남자 못지않게 강인하고, 육아를 기피하며, 식량공급도 여자가 하기 때문에, 남자들은 싸움이나 하고 음모나 꾸미면서 지낸다. 또 찬부리 族(족)들은 여자들이 활달하고 사무능력도 있고 고기잡이도 하여 생활자원을 마련하는 등 생활에 관한 일이 거의 다 여자가 맡아 하므로 남자들은 치장이나 하고 의례적 역할이나 보조적 역할이나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들의 문화에는 우리들의 사회화는 전혀 반대되는 남녀의 유형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드의 결론은 여러 사회에서 남녀가 갖는 특성, 능력, 역할 등은 남녀가 태어날 때부터 갖는 특성, 능력 등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모두가 정통적으로 이어받은 문화의 유형, 특히 남녀에 관한 관습에 바탕을 둔 일정한 생활방식을 학습함으로써 남자가 되고 여자도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사회의 남녀의 성차도 사회의 변혁에 따라 별수 없이 변질되고 만다는 얘기다. ‘여자와 양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자들은 근자에 강해지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고등교육진출은 여대생 망국론이 나올 정도까지 되었고, 관리직을 맡게 되는 여자 수도 점차로 증가하는 추세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보다 편한 생활을 위해서 부부가 함께 맞벌이 생활전선을 펴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아지게 된 세상이 되었다. 이에 비하여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기약한 면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제는 생활현상 면에서, 특히 태도나 복장 면에서 여성화의 경향이 두드러짐을 느끼게끔 되었다. 이제 우리 문명권에도 일종의 ‘찬부리化(화) 현상’이 나타나는 징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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