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ㆍ18C를 중심으로

‘밀턴’, ‘번연’ 등의 作品(작품), 퓨리터니즘 傾向(경향)짙어
17C에는 個性(개성) 중시로 새로운 隨筆文學(수필문학) 낳아
抵抗(저항)정신 강한 로맨티시즘


  모든 文化(문화)가 그렇듯이 文學(문학) 또한 그 시대의 歷史的(역사적) 産物(산물)임엔 틀림없다. 17C, 18C 200여 년 간이 영국에 있어서는 혼란과 변혁의 시기로 文學(문학)에 있어서도 예외 일수는 없어 많은 과정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本考(본고)에서는 17, 18C를 中心(중심)으로 英文學(영문학)의 변모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註(주)◇
 

  Ⅰ
  文學(문학) 예술 철학 등 인류가 남긴 정신적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人間(인간)이 狀況內的(상황내적)인 존재라는 조건에 절대적인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인간은 그가 성장한 사회의 하나의 有機體(유기체)일 수밖에 없고, 한 作家(작가)가 사용하는 소재는 종교적 사상적 윤리적 이념의 총합이며, 그것이 또한 작가의 정신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작가는 그가 처한 환경, 다시 말해서 자신이 그 일부분이며, 그의 감정과 욕망에 특수한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 경제, 사회적 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에서 한 時代(시대)의 文學(문학)을 말하는데 있어서 그 역사성을 배재 할 수 없다. 그러나 17ㆍ18C세기의 영문학을 變換機的(변환기적)인 관점에서 32매의 길이로 논한다는 것은 벅찬 과제다. 까닭은 그것이 이 두 세기의 문학을 역사적 혹은 文學史的(문학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는 뜻이 되겠는데 영국은 이 2백 년 동안에 가장 어지러운 혼란과 변혁을 겪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Ⅱ
  17세기는 前(전) 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화려하게 꽃피었던 영국 르네상스의 말기에 해당하고 이 세기 전반의 특징으로서 종교사상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영국 國敎(국교)에 대한 청도교의 항쟁이 격렬해지고 그것이 정치에도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1603년에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는 王權神授說(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면서 극심한 전제정치를 국민에게 강요하고,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부르짖는 청도교들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해서 Pilgrim Fathers로 알려진 퓨리턴들이 신천지 미국으로 이주해 갔던 것도 이때의 일이다. 1625년에 왕위에 오른 찰스1세 역시 철저한 舊敎(구교)신봉자인 전제군주로서 마침내, 1642년에 크롬웰이 일어나 찰스왕을 교수형에 처하는 청교도혁명이 발생하며, 이러한 청교정신이 밀턴과 번연 등의 위대한 청교문학을 낳기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시대사조를 구현하는 문학사상은 르네상스정신을 대표하는 희랍적이고 현세적인 것과 청교도 정신을 대표하는 헤브라이적 來世的(내세적)인 것이 교차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제임스 一世期(일세기)의 劇文學(극문학)은 대체로 엘리자베스 時代(시대)의 극의 연장으로 볼 수 있으나, 셰익스피어의 友人(우인)이면서도 그 경향을 달리해서 古典的(고전적)인 劇作法(극작법)을 답습한 밴 죤슨은 ‘풍소희극’(Comedy of manners)를 써서, 인간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관조했던 셰익스피어와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이 시대의 극의 일반적인 특색은 엘리자베스 時代(시대) 劇(극)의 말기적인 퇴폐현상으로서 관능적이고 값싼 오락물로 퇴화하는 현상을 보였으나, 청교도 혁명과 더불어 크롬웰의 극장폐쇄령에 의해서 엘리자베스 시대의 화려했던 劇文學(극문학)은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이 時代(시대)의 詩歌(시가)로서는 중세사상과 르네상스의 낭만적인 정신 사이에서 번민한 존 단의 流脈(유맥)에 속한 이른바 ‘形而上詩人(형이상시인)’群(군)과 고전적인 시풍을 숭상한 벤 죤슨을 따르는 王黨(왕당)내지는 ‘世俗詩人(세속시인)’群(군)을 들 수 있다. 특히 죤 단은 스펜서 이래의 르네상스 시인들의 일체의 전통과 인습을 무시하고 예리한 직관과 격렬한 감정과 다채로운 상상과 치밀한 知性(지성)을 구사하는 시를 써서 후세의 지성시인들에게, 심지어 금세기의 엘리어트에게까지 큰 영향을 남긴 것은 주목할 만하다.
  17세기를 통한 또 하나의 시대적 특색이 과학정신의 발전과 개성에의 관심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특유의 實證主義的(실증주의적) 思想(사상)의 효시로 볼 수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출현과 1662년에 설립된 영국왕립협회는 17세기적 사색과, 간결하고 평이한 散文文體(산문문체)의 발달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흥미가 문예부흥기의 산물이라면, 개성에의 각성은 17세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고, 새로운 문학형식으로서 隨筆(수필)을 낳게 한다. 베이컨의 ‘隨筆集(수필집)’그 대표적인 것이고 그의 수필은 지성적이며, 실제적 人生(인생)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개인에의 흥미에서 생긴 文學(문학)에는 또한 日記文學(일기문학)이 있다. 사무엘 패피즈의 日記(일기)가 대표적인 것으로 왕정복고당시의 風俗(풍속)을 기록으로서 또는 개인생활에 대한 성찰과 묘사 등으로 해서 문학사적 가치가 풍부하다.
  正敎徒革命(청교도혁명)과 왕정복고 시대를 함께 살았던 죤 밀턴은 혁명시기에 크롬웰의 외교비서로 활약했고, 왕정복고 후에 투옥되었으나, 친지의 주선으로 출옥한 다음 ‘失樂園(실낙원)’등 세편의 大作(대작)을 썼다.
  ‘失樂園(실낙원)’은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되는 神話(신화)를 주제로 해서 12권으로 성립되어 있는 作品(작품)으로, 밀턴은 제1권에서 ‘인간에 대한 神(신)의 길이 정담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詩(시)를 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 악마를 主人公(주인공)으로 하는 부분이 가장 걸출한 것은 밀턴이 청교혁명에 가담해서 싸웠던 그의 반역정신이 악마의 묘출로 구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詩(시)에는 구라파의 두 개의 神話(신화), 즉 희랍 神話(신화)와 헤브라이 神話(신화)가 하나의 世界(세계)로 합류함을 본다. 이것은 밀턴의 청교정신과 휴머니즘이 調和(조화)를 이루는 세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청교문학을 대표하는 또 한 사람에 죤 번연이 있다. 병적일 만큼 결백한 良心(양심)과 경건한 신앙심을 가진 그가 혁명시기에 불법설교를 했다는 죄목으로 12년 동안의 감옥살이를 하면서 쓴 것이 유명한 ‘天路歷程(천로역정)’이다. 크리스챤이라는 人間(인간)이 파멸의 도시를 탈출해서 하늘에 있는 도시에 도달하는 과정을 우화형식으로 쓴 作品(작품)으로, 救援(구원)을 찾는 신앙인의 心身(심신)의 유혹, 위험, 타락, 희망, 공포 등이 평이하면서도 빼어난 명문으로 쓰인 散文(산문)의 大作(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밀턴을 르네상스 말기의 사람으로 본다면, 죤 드라이든은 다음에 오는 啓蒙期(계몽기)의 첫머리에 든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詩(시)ㆍ批評劇(비평극)의 모든 분야에서 17세기 말의 영국문단을 수놓은 作家(작가)인 그의 ‘劇詩論(극시론)’은 영문학 비평사에 새로운 章(장)을 열었고, 政治的(정치적) 諷刺詩(풍자시)로 쓰여 진 ‘압사롬과 아키토펠’은 역시 풍자시의 대작으로 이름이 높다. 그가 다듬어서 다음 時代(시대)의 포오프에게 넘겨준 英雄對韻(영웅대운)(heroic couplet)은 거의 완벽에 가까워 졌고, 그는 詩(시)에서도 散文(산문)에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말을 구사했다. 왕립협회 강평의 하나에 平明(평명)한 영어를 보급한다는 뜻이 있거니와 그는 초기 회원으로서 그 목적에 크게 공헌했던 것이다.

  Ⅲ
  18세기는 기이함과 심오함을 자랑삼던 17세기의 分散的(분산적)인 知性(지성)을 지양하고 知的(지적)균형과 통합을 지향하는 合理主義(합리주의)시대로 옮아간다. 理性(이성)과 常識(상식)을 숭상하는 시대정신은 詩(시)와는 거리가 먼 것이고, 이러한 시대정신이 바로 18세기가 무수한 소설과 수필과 경이적인 散文文學(산문문학)을 낳게 한 중요한 이유가 된다.
  명예혁명 이래로 영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정당정치의 확립과 더불어 민중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깊어 갔다. 신흥중산계급을 대표하는 自由主義政堂(자유주의정당)(Whigs)과 귀족지주계급을 대표하는 보수정당(Torn)은 활발한 정쟁에 휘말리게 되고, 정당정치의 필수적 도구인 言論(언론)의 필요성에서 신문이 출연한다. 정치가와 文士(문사)들은 커피점에 모여서 정치와 문학을 담론하게 되고 18세기의 런던에 무수히 생겼던 커피점이나 클럽 자체가 정당으로 나누어진 형편이었다.
  그런데 文學(문학)에는 형식에 대한 전통이 있고, 그것을 감상하는 독자 측에도 형식이며 문체의 美(미)를 식별하고 引用(인용)의 미묘함 같은 것을 즐기고 이해 할 만 한 교양이 요구된다. 그러나 신흥서민계급의 사람들은 그러한 문학적 교양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文學(문학)을 요구하고 필요로 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요구에서 생겨난 것이 저널리즘과 소설이요, 詩歌(시가)에 있어서의 로맨티시즘의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최초에 생겨난 것이 定期刊行物(정기간행물)이었다. 이것은 뉴스를 취급하는 신문의 효시적인 것과, 수필적인 것과의, 두 종류로 나누어져 발달했다.
  다니엘 대포는 59세가 되어서 ‘로빈슨 크루소’를 쓰기까지 저널리스트로 활약했고, 많은 팡프렐을 시험하고 신문을 내서 自由貿易(자유무역)을 주장하고 민주주의를 고취하고 정부가 非國敎徒(비국교도)에 대해서 관용스럽지 못한 것을 諷刺(풍자)했다.
  雜誌的(잡지적)인 저널리스트에는 스티일과 애드슨이 있다. 스티일이 시작한 ‘테트러’紙(지)에 애디슨이 가담했고, 다음에 두 사람 합작으로 ‘스펙크태이터’를 발행해서 절세의 호평을 받았으며, 애디슨이 ‘셰익스피어 論(론)’과 ‘밀튼 論(론)’ 등을 썼던 것도 바로 이 신문이었다.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제재를 택한 다음, 논리적이 아니라 담화식 취미론적으로 풍습을 완곡하게, 혹은 조소하고 혹은 경계하는 가운데, 우아와 겸손을 가르쳤다. 이렇게 해서 품위 있는 문체를 가꾸면서 영국의 散文(산문)을 거의 완성의 경지에 까지 성숙시켜 갔다.
  대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쉬프트의 ‘걸리버 旅行記(여행기)’와 더불어 近代小說(근대소설)의 출발을 의미하거니와, 이 소설은 독력으로 自身(자신)을 가지고 自己(자기)의 生活(생활)을 개척해나간다는 당시의 서민계급 영국인의 人生(인생)에 대한 理想(이상)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또 하나는 近代小說(근대소설)의 手法(수법)인 리얼리즘이 여기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文學史的(문학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해서 다져진 터전 위에서 영국최초의 本格小說(본격소설)을 내놓은 것이 ‘파멜러’를 쓴 리쳐드슨 이고, 이어서 피일딩, 스모레트, 스터언으로 이어지면서 오늘에 이르는 영국소설의 발전을 보게 되었다.
  詩(시)를 中心(중심)해서 말할 때, 18세기 영문학은 古典主義(고전주의)에서 시작한다. 알렉산더 포프가 1711년에 드라이든에게서 이어 받은 英雄對韻(영웅대운)으로 ‘批評論(비평론)’이라는 詩論(시론)을 써서 이름을 떨친다. 그것은 이성과 양식을 비평의 기준으로 한 고전주의적 강평을 논한 것으로 그 요지는 ‘自然(자연)을 따르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自然(자연)은 개성과 자유가 깃든 자연이 아니고 이성에 복종하는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로서의 자연을 의미해서 18새기의 시대사조인 합리주의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諷刺文學(풍자문학)은 18세기의 문학적 유산이다. 급격한 사회변동은 가치관념의 전도를 초래한다. 17세기에 청교도의 전제하에 억압되었던 인간본능이 해방되어 17세기에 청교도의 전제하에 억압되었던 인간본능이 해방되어 퓨리턴들의 허위와 위선을 조종하는데서 시작된 諷刺文學(풍자문학)은 합리주의와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18세기에 들어와서, 더욱이 그것이 정치투쟁과 결합함으로서, 질투, 시기, 인신공격, 중상 비방 등으로 나타났고, 하나의 문학형태로 완성되어 졌다.
  포오프의 ‘書籍戰爭(서적전쟁)’은 도서관에 있는 新古書籍(신고서적)들이 전쟁을 한다는 諷刺詩(풍자시)로 古文學軍(고문학군)이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으로 여기서 전자는 희랍과 라틴문학을 가르치고 후자는 르네상스 이후의 문학을 말한다. 죠나단 쉬프트의 ‘걸리버 旅行記(여행기)’등이 당대의 대표적인 諷刺文學(풍자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포오프가 세상을 떠나고 적막했던 영국문단에 최초로 ‘英語辭典(영어사전)’을 편찬하고 ‘英國詩人傳(영국시인전)’을 써서 후세에 이름을 남긴 사뮤엘 죤슨이, 고전주의의 기치아래 그가 만든 文學(문학)클럽에 당당한 文士(문사)들을 거느리며 1세의 문단을 휘어잡았던 것도 18세기 문학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古典主義(고전주의) 전통은 포프에서 죤슨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으나 時代思潮(시대사조)는 1750년대부터 로맨티시즘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1780년대에는 낭만주의가 主流(주류)를 이루는 현상을 보여준다.
  문학은 그 성질상 시간이 지나면 귀족화하기 마련이고, 전통이 오래 지속되면 독자에 대해서도 문학적 교양을 요구하게 되며, 점차로 庶民(서민)에게서 멀어져 간다. 庶民文學(서민문학)의 한 형태로서 처음에는 저널리즘, 소설등과 함께 서민문학의 詩歌(시가)에 있어서의 하나의 취세로서 생겨난 18세기의 로맨티시즘이 더욱 성숙해서 19세기의 낭만주의 문학으로 발전해 갔다.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이른바 로맨티시즘의 선구자로 알려진 詩人(시인)들은 각기 개인적인 특징과 사상을 보여주고 있지만은 일반적으로 로맨티시즘의 특성은 想像(상상)과 정열의 해방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영문학에 있어서는 포프의 ‘批評論(비평론)’ 등의 고전주의적 속박에서 表現(표현)의 해방을 요구하는 욕구와 內容的(내용적)으로 고전주의의 이성숭상, 조화, 균제, 안정 등에 대한 반항이며 形式(형식)에 있어서도 고전주의로부터의 탈출에서 나타났다.
  영국의 로맨티시즘은 自然文學(자연문학)의 형태로 北方(북방)에서 일어났다. 제임스 톰슨의 ‘四季(사계)’는 自然文學(자연문학)의 선구로서 無韻詩形(무운시형)으로 쓰인 山川草木의 四季風景(사계풍경)묘사는 그의 鳥獸(조수)에 대한 애정이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함께 庶民(서민)의 감정에 호소하는 바가 컸다. 自然文學(자연문학)은 庶民文學(서민문학)이다. 현실성과 일상성을 구가하는 18세기 시대사조에의 저항정신은 로맨티시즘의 懷古的(회고적)인 감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것은 中世思慕(중세사모)의 정으로 나타났고 中世(중세)의 로맨스가 풍기는 기이한 감각의 美(미)며, 조상전래의 민요에서 불러진 ‘옛날의 전쟁터’ 등에 대한 憧憬(동경)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요원한 것뿐만 아니라 地理的(지리적)으로도 먼 곳을 즐기는 異國(이국)취미로 발전해 갔다.   애드워드 영과 토머스 그레이 등, 이른바 ‘基地詩人(기지시인)’에 속하면서, 人生無常(인생무상)과 生死(생사)의 憂愁(우수)를 노래한 감상과 정열의 詩人群(시인군)과, 로버트 버언즈와 윌리엄 브레이크로 대표되는 사랑과 열정과 신비에 魂(혼)을 불태운 詩人(시인)들이 18세기 후반의 로맨티시스트 들이다.
  이상으로 時代狀況(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17, 18세기 영문학의 변천을 개관하였거니와 人間精神文化遺産(인간정신문화유산)의 한 형태로서의 文學(문학)은 역시 주어진 상황에서 생기는 時代精神(시대정신)에의 영합과 반항이라는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새로운 人間魂(인간혼)의 양식을 求(구)해 나가는 영원한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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