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에 학교를 들린다는 것은 좀 어색한 일이다. 학교를 들렀다. 학교를 잊어버린다기보다는 개학이 되고, 어쩐지 촌색시가 처음으로 서울바닥을 밟았을 때처럼 쑥스러움을 맛보지 않기 위해서랄까? 우리 반애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학교에 들렀던 이유를 어줍잖으나마 붙여 보아야겠다. 남들이 먼저 밟아버리는 것보다 내가 남보다 먼저 학교를 가서 나중에 오는 애들을 맞이하는 게 마음 편하니까. 그러나 학교는 아무 감흥도 주지 않았다. 진눈개비가 내리는 ‘캠퍼스’는 어둑하게 흐려있었다. 우선 추웠고, 당장 나를 맞아줄 아무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턱없이 올라서버린 동악 언덕위의 내게 짜증이 돌았다.
  그래서 나는 발걸음을 들렸다. 퇴계로를 건너 중구청 앞을 지난 때였다. 금박종이와 만든 꽃들로 허술하게 짜여진 화환을 세 개나 어깨에 걸치고 가는 국민학교 졸업생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의 형이거나 삼촌쯤 돼 보이는 청년과 함께. 그 청년이 걸쳐준 화환들일까. 28일은 우리학교 졸업식날. 오빠는 괜히 뭐가 그리 바빠서 뻔질나게 싸돌아다닌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깨나 마시는 모양이고, 그러다가 외박이란걸 하고 어쩌다 술이 깨기도 전에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 몰래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잽싸게 이불을 둘러싸버린다.
덩달아 나는 졸업식날이 기다려진다. 학사모를 쓰고 점잖을 빼고 있을 그가 보고 싶다. 그때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의젓하려고 턱 앉아있을 오빠를 상상해보면 괜히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망칙한 생각이다. 나같은 덜된 기집애에게도 졸업하는 오빠의 목에 화환을 걸어줄만한 용기가 솟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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