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신문 그 못다한 말 접어두고

‘돈키호테의 생활로 一貫(일관)’
 

  어느 날 占星學(점성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와 茶(다)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내 占(점)을 쳐주겠다면서 생일을 물었다.
  11月生(월생)인 나의 星座(성좌)는 ‘제갈’座(좌)인데 불행히도 지금 그 풀이를 정확히 할 수 없으니 後(후)에 자세히 알아 주겠노라하고 헤어진 일이 있었다. 그 기억이 머리에서 지워질 때쯤 나는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멍청한 웃음을 웃어버렸다.
  내 占(점)을 쳐 준다던 친구, 그는 자기의 運命(운명)도 예지하지 못한 채 지금은 어느 떠돌이별이 되었는지…
  나는 지금도 나의 星座(성좌)인 ‘제갈’의 뜻을 모르고 나의 運命(운명)도 모르는 점괘 잃은 ‘집시’가 되었다. 그리고 영원히 알 수 없는-.
  이렇듯이 나는 내일을 모르고 오늘을 살아왔고 살고 있다. 大學(대학) 4년이, 大學(대학)新聞記者(신문기자) 生活(생활) 3년이, 미리 알 수 없었던 운명이고 팔자소관이었다.
  조금은 희극적이고, 조금은 인간적인 나의 ‘돈키호테’ 같았던 生活(생활)의 단면들이 하나도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데 그것이 대견스럽고 정답게 기억되는 것은 이미 살아 봤다는 안도감에서일까?
  완벽에 가깝게 꽉 짜인 내일의 ‘플랜’들이 불안하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건 언제나 내일엔 많은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니까.
  또다시 出港(출항)을 해서는 어디론가 나의 星座(성좌)를 찾아가야지만 나는 나를 모르고 또 모를 것이다.
  아직도 마르지 않은 新聞紙(신문지)의 ‘잉크’ 냄새가 코끝에서 가시지 않았고 비뚤어진 誤字(오자)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나는 이 정든 곳을 떠나야하고 존경하는 L敎授(교수)님과 서운한 작별을 해야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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