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KAPF’가 사상적 동반 기준

트로츠키가 ‘文學(문학)과 革命(혁명)’서 첫 사용


  現今(현금) 韓國(한국) 프로文學(문학) 硏究(연구)는 餘他(여타) 文學(문학) 分野(분야) 硏究(연구)에 比(비)해 相對的(상대적)으로 零星(영성)한 형편이다. 그 理由(이유)는 多樣(다양)하게 발견될 수 있겠지만 세 項目(항목)으로 要約(요약)될 수 있겠다.
  첫째, 프로文學(문학)은 藝術性(예술성) 追求(추구)보다 目的意識(목적의식)을 强調(강조)한 機械的(기계적) 圖式主義(도식주의)였기에 硏究(연구)할 價値(가치)가 없다는 否定的(부정적) 先入見(선입견)이다. 프로文學(문학)이 韓國(한국) 當代(당대) 狀況(상황)에 適切(적절)한 思想(사상)을 形象化(형상화)하려 했다지만, 그 思想(사상)을 美學的(미학적) 次元(차원)에서 論議(논의)하지 못하고 非文學的(비문학적) 이데올로기의 過剩(과잉) 露出(노출)로 끝나고 만 것도 사실이다.
  둘째, 隣接(인접) 分野(분야) 즉 政治(정치)∙經濟(경제)∙社會(사회)∙宗敎(종교) 等(등) 文學史(문학사)에서 必要(필요)한 文學(문학) 外的(외적) 學問(학문)이 프로文學(문학) 전모를 연구할 만큼 進展(진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文學(문학) 外的(외적) 事實(사실)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프로文學(문학)은 이러한 주변 학문 연구가 본軌度(궤도)에 올랐을 때 비로소 本格的(본격적)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셋째, 資料(자료) 수집의 곤란이다. 당시 체계 없이 출몰한 숱한 諸刊行物(제간행물)이 제대로 보관∙전수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들을 샅샅이 구해서 정확한 자료를 총체적으로 수집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實證主義的(실증주의적) 방법론을 요청하고 있는 프로문학연구에 이 점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난점이다.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 硏究(연구) 역시 프로文學(문학)과의 연관성 때문에 프로문학 연구부진의 원인과 유사한 이유로, 연구대상에서 자주 제외되거나 연구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나 생각된다.

  그러나 정당한 한국문학사 記述(기술)을 위해서도 韓國文學史上(한국문학사상) 엄연한 역사적 실체이며, 객관적인 사실인 프로문학을 정리∙검토하는 일은 절대로 필요하다. 프로문학이 만일 한국문학사상 커다란 과오를 범했다면 더 이상의 과오를 범하지 않을 龜鑑(귀감)을 위해서도 프로문학 연구는 깊이 있게 행해져야 한다.
  이와 꼭 같은 이유로 동반자작가 연구, 또한 그 필요성은 절실히 요청된다.
  同伴者(동반자)는 자신의 主義(주의)∙主張(주장)∙見解(견해)를 提示(제시)∙貫徹(관철)시키려는 者(자)라기 보다는 그러한 개인이나 단체를 協助(협조)∙支持(지지) 혹은 追從(추종)하는 者(자)라는 의미가 짙다. 이처럼 用語自體(용어자체)의 성격이 非主體的(비주체적)이므로 경우에 따라 可變(가변)되고 不透明(불투명)하게 사용될 소지가 처음부터 내포되어 있다.
  때문에 동반자란 용어를 註譯(주역)이나 解說(해설)없이 사용할 경우 막연하거나 오해를 야기할 우려가 많다.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의 경우도 例外(예외)는 없다.
  막연히 동반자작가라 할 때, 부르주아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인지, 프롤레타리아 동반자작가인지, 혹은 다른 流派(유파)의 동반자작가인지 구별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同伴者(동반자)작가의 발생지인 러시아에서도 좌경파 동반자작가니 우경파 동반자작가니 하고 양분되었던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일찍이 白鐵(백철)도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라 하더라도, 農民作家(농민작가)에 대한 동반자작가와 프로작가에 대한 동반자작가가 별도로 존재해야 함을 주장한 적이 있다.
  이러한 구분에 따른 작가의 작가에 대한 특색을 白鐵(백철)은 설명하지 않았지만 藏原惟人(장원유인)의 論理(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은 물론이다.
  白鐵(백철) 外(외)에도 安在左(안재좌), 申鼓頌(신고송), 金南天(김남천), 兪鎭午(유진오) 등도 이와 비슷한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다.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Popit ciki∙파프토키)란 러시아의 트로츠키(1879~1940)가 그의 저서 <文學(문학)과 革命(혁명)>(1923)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917년 프롤레타리아 革命(혁명) 이후 한동안의 戰時共産主義時代(전시공산주의시대)를 거쳐 1921년 新經濟政策(신경제정책)(NEP) 발표부터 러시아는 전국에 걸쳐 다소 自由化(자유화)의 活氣(활기)가 조성된다. 이에 편승해서 문단에도 활발한 창작활동과 함께 여러 文學團體(문학단체)가 범람하게 되는데, 그 중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 ‘세라피온 兄弟(형제)’가 포함된 이 동반자작가 그룹이다.
  트로츠키의 주장을 근거로 러시아의 동반자작가의 규정을 요약해 보면 ①부르주아 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 사이에 同伴者文學(동반자문학)이라는 과도기문학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과도기적 作品(작품)을 産出(산출)하는 작가라는 것 ②이들은 혁명의 어떤 부분에서 題材(제재)를 捕捉(포착)하여 자기류로 수용, 작품화했다는 것. ③자기류 외 작품제작에도 불구하고 그들 전체에 공통적인 특질이 있는데 이것이 反階級主義(반계급주의)라는 것 ④그들은 혁명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해 혁명의 계급주의적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⑤그들은 노동자∙농민을 현실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樂觀的(낙관적)으로 관찰했다는 것. ⑥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예술가가 아니고 혁명의 예술적 동반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동반자작가의 규정은 日本(일본)을 거쳐 韓國(한국)에 移入(이입)되었는데 그대로 한국에 적용시키기는 상당한 무리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러시아혁명에 준하는 혁명도 없었으려니와 러시아에 엄연히 존재했던 동반자문학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동반자작가가 논의되기는 1929년 이후인데, 동반자작가라는 명칭 외에 隨伴(수반)派(파)∙隨伴(수반)者(자)∙同伴者(동반자)∙同情(동정)者(자)∙同伴(동반)系(계)의 작가∙同伴作家(동반작가)∙同伴(동반)文學者(문학자)∙同伴者(동반자)層(층)∙동반자的(적) 작가∙동반가 작가∙파프토키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자주 언급된 것으로 보아 당시 문단에 관심이 높았던 듯 하다.
  이 명칭을 주로 사용한 KAPF側(측)은 러시아的(적) 규정과는 달리 “會員(회원)아닌 作家(작가)가 ‘카프’가 가진 同一(동일)한 思想性(사상성)을 가지고 어느 정도 ‘카프’와 보조를 같이하는 작가”를 일컬었다.
  이러한 KAPF側(측)의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규정이 얼마나 非論理的(비논리적)이고 非妥當的(비타당적)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KAPF側(측)의 주장을 근거로 당시의 작가 系譜(계보)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民族主義作家(민족주의작가) (부르주아 作家(작가))
  階級主義作家(계급주의작가) (프로 作家(작가))
  민족의식을 작품화한 작가를 민족주의작가 (KAPF측의 표현은 부르주아작가), 계급의식을 작품화한 작가를 계급주의작가 (프로작가) 라고 할 때, 계급주의 작가 중 KAPF에 소속되어 있으면 KAPF파 작가, KAPF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동반자작가가 된다. 그런데도 KAPF측은 KAPF파 작가라는 용어는 쓰지 않고 프로작가와 동반자작가만을 구분하는데, 그렇다면 동반자작가는 곧 프로작가가 되는 모순을 내포하게 된다.
  이를 문학 쪽에 적용시킨다면 KAPF派文學(파문학) 혹은 동반자문학이 구별되어 존재해야만 한다. KAPF측은 KAPF派(파) 작가와 동반자작가가 각각 다른 문학 작품을 산출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동반자작가도 프로문학 작품을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실 지금까지 韓國文學史上(한국문학사상) 동반자작가에 대한 論議(논의)가 상당히 혼란된 양상을 띤 것은 論者(논자)에 따라 그 기준을 달리 정한 때문이요, 그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KAPF측의 불투명한 동반자작가의 규정 때문이다. 그 결과 동반자작가 論議(논의)가 전혀 상반된 자리에서까지 이루어졌던 것이다.
  즉 “‘카프’가 가진 동일한 사상성을 가지고 어느 정도 ‘카프’와 보조를 같이 한다”고 했을 때, KAPF가 가진 사상성이 항상 고정∙불변이었나 하는 점이다. 또 ‘어느 정도’ 보조를 해야만 되는지도 막연하기 짝이 없다.
  鄭明煥(정명환)이 동반자작가에 대한 새롭고 엄밀한 규정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내린 규정“카프의 圈外(권외)에 서면서도 의식적으로 카프의 主義(주의)∙主唱(주창)-즉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취를 위한 예술 활동의 주장에 동조한 작가”도 그 기준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막연히 KAPF의 사상적 동반자라고 했을 때, 또 KAPF의 主義(주의)∙主唱(주창)에 동조한다고 했을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동반해야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韓國的(한국적) 상황하의 동반자작가 논의는 먼저 그 동반할 대상의 기준이 문제되어야만 한다.
  周知(주지)하다시피 한국에서 동반자작가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29년 이후이니 그 당시 KAPF의 사상적 동반, 그 당시 KAPF의 主義(주의)∙主唱(주창)이 기준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이 筆者(필자)의 견해다.
  趙演鉉(조연현)은 新傾向派(신경향파) (1923)의 ‘미온적인 계급의식’이 KAPF의 발족 (1925)으로 계급의식이 강화되고, ‘강화된 계급의식’에서 盟員大會(맹원대회) (1927)를 계기로 ‘武裝階級意識(무장계급의식)’으로, 볼셰비키化(화) (1930) 부터는 ‘전투하는 계급의식’ 으로 전개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KAPF의 의식변화와 함께 당시 KAPF의 의식수준을 잘 말해주는 언급이다.
  金光植(김광식)도 당시 KAPF의 主義(주의)∙主唱(주창)은 “前衛(전위)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와 “黨(당)의 文學(문학)의 두 명제로 요약되며 의식수준은 ‘전투하는 계급의식’”이라고 趙演鉉(조연현)의 주장과 軌(궤)를 같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당시 KAPF는 林仁植(임인식) (和(화)) 金孝植(김효식) (南天(남천)), 權煥(권환), 安漢(안한) 등이 중심이 되어 KAPF 조직의 결함을 간파하고 그 再組織(재조직)을 위해 노력했으며, 아울러 客觀的(객관적)∙現實的(현실적)∙實在的(실재적)∙具體的(구체적)∙進取的(진취적)∙革命的(혁명적)∙集團的(집단적)∙成長的(성장적)∙組織的(조직적)∙政治鬪爭的(정치투쟁적) 목적의식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文學(문학)작품을 산출하면서도 KAPF에는 가입하지 않은 韓國(한국)의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들이 그 무렵의 KAPF의 主義(주의)∙主唱(주창)에 따르고 그 무렵의 KAPF派(파)의 작품에 보조를 같이 해야 함은 너무도 온당한 일이다.
  이렇게 韓國(한국) 동반자작가의 개념을 규정했을 대, 지금까지 한국문단에서 동반자작가라고 알려졌던 작가들이 과연 그런가 하는 것이다.
  동반자작가의 적응 범위도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 규정만큼이나 다양하다. 혹자는 新傾向派(신경향파) 작가만을 이 범주에 넣고, 혹자는 프로작가만을, 혹자는 新傾向派(신경향파)작가와 프로작가를 통틀어 말하기도 한다. 李孝石(이효석)∙兪鎭午(유진오) 두 작가만을 드는 論者(논자)도 있다.
  한마디로 동반자작가의 적용 범위는 무체계적∙무질서의 바로 그것이다.
  그 중 李孝石(이효석)∙兪鎭午(유진오)가 정통적인 동반자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러시아식 규정의 피상적 적용인 것 같다.
  즉 러시아의 동반자작가들은 階級意識(계급의식)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작품을 주로 <印刷(인쇄)> (루나촬스키 主宰(주재)) 나 <붉은 處女地(처녀지)> (보론스키 主宰(주재))등 프로문학 기관지에 개제하였다.
  李孝石(이효석)∙兪鎭午(유진오)도 그들의 處女作(처녀작)을 비롯한 初期(초기)의 作品(작품)을 당시 한국 프로문학 機關誌(기관지)라고 할 수 있는 <朝鮮之光(조선지광)>에 發表(발표)하였다.
  그러자 KAPF側(측)에서 러시아式(식)으로 그들을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로 호칭하기 시작한 듯하다.
  그들의 이 무렵의 작품들이 당시의 KAPF가 가진 同一(동일)한 思想性(사상성)을 가지고 어느 정도 KAPF와 보조를 같이 하거나 KAPF의 主義(주의)∙主唱(주창)에 同調(동조)했다고는 도저히 판단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무렵 KAPF側(측)에서 가장 우수한 걸작으로 내세운 小說(소설)로 ‘工場新聞(공장신문)’ (金南天(김남천), 朝鮮日報(조선일보), 1931∙7∙5 ~ 7∙15)과 ‘木花(목화)와 콩’ (權煥(권환), 朝鮮日報(조선일보), 1931∙7∙16 ~ 7∙24)이 있다. 이 두 작품과 같은 무렵의 李孝石(이효석), 兪鎭午(유진오)의 作品(작품)을 比較(비교)해 보면 이 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즉 KAPF側(측)에서 내세운 上記(상기) 걸작들이 한결 같이 노동자∙농민들이 조직적∙집단적∙전투적으로 행동하게 함으로써 아지∙프로(Agitation and Propaganda) 的(적) 효과를 의도적으로 노리고 있는 반면에, 李孝石(이효석)∙兪鎭午(유진오)의 작품들은 이들과는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고찰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韓國(한국)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 규정은 러시아의 그것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만큼 韓國的(한국적) 규정이 불가피하다. 러시아의 규정을 ㄹ염두에 둔 채 韓國(한국)의 동반자작가를 논하기 때문에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②한국의 동반자작가가 동반할 명확한 기준의 설정이다. 막연히 KAPF를 동반한다고 했을 때, KAPF가 표방한 의식의 변화 때문에 동반기준이 애매모호하게 되고 사실 이 때문에 한국 동반자작가 논의가 정반대의 입장에서도 행해졌다.
  韓國(한국)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는 1929년 이후부터 거론되기 시작했으므로 이 때의 KAPF意識(의식)을 同伴(동반)의 기준으로 삼아야겠다.
  ③그럴 경우 지금까지 알려진 同伴者(동반자) 작가들 특히 李孝石(이효석)∙兪鎭午(유진오)는 同伴者(동반자)작가라고 볼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韓國(한국) 同伴者作家(동반자작가) 에 대한 연구는 처음부터 좀 더 면밀히 새롭게 이루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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