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지난13일) 東大(동대)新聞(신문)을 통하여 體育(체육)場(장)起工(기공)에 대한 記事(기사)를 읽고 本校(본교)敎授(교수)의 한사람으로 기쁨을 禁(금)치 못하는 바이었다. 앞으로 이를 契機(계기)로 하여 東(동)大(대)健兒(건아)들이 더욱 學園(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고 ‘스포츠’에 젊음의 情熱(정열)을 유감없이 發揮(발휘)하도록… 하는 마음 간절하다. 진정한 ‘스포츠ㆍ맨’은 紳士(신사)이다 라는 말도 있거니와 學生(학생)時節(시절)에 가장 印象(인상)깊고 먼 훗날에 남는 것은 ‘스포츠’뿐이다.
  마침 오늘 오후(11월27일) 교수실로 찾아온 尹(윤)記者(기자)와 더불어 창가를 두드리는 빗방울소리를 들으면서 옛날 本人(본인)은 學生(학생)時節(시절)의 한 토막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30年(년)前(전) 1936年(년) 正月(정월)에 本人(본인)이 市內(시내) C專門(전문)學校(학교)在學(재학)時節(시절)에 日本(일본)長(장)崎(기)를 거쳐 蹴球(축구)의 ‘메카’ 上(상)海(해)로 蹴球(축구)遠征(원정)을 간 일이 있다.
  당시는 日帝(일제)下(하)에 우리 젊은이들이 祖國(조국)을 빛내기 위해서는 ‘스포-츠’를 통하는 길이 가장 適當(적당)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당시 ‘마라톤’에 孫基禎(손기정)(當時(당시) 養正(양정)中學生(중학생)) 蹴球(축구)에 金容植(김용식)(當時(당시) 普成(보성)專門(전문))籠球(농구)에 李性求(이성구)ㆍ廉(염)은鉉(현)ㆍ張利鎭(장이진)(당시 延(연)專(전)生(생)) 選手(선수)들이 伯林(백림)올림픽에서 그 이름을 날릴 때 이다.
  當時(당시), 上海(상해)에는 우리 僑胞(교포)가 약 4~5천명(대부분이 亡命客(망명객)과 그들의 家族(가족)) 이 居住(거주)하고 있었다. 우리 選手(선수)가 전中國(중국) ‘올림픽 팀’인 전上海(상해)팀과 蹴球(축구)對戰(대전)하는 운동장에는 僑胞(교포)들의 열띤 응원이 빠질 리 없다. 그날 약 2만 명의 觀衆(관중)속에서 약 3천명 僑胞(교포)들의 눈물겨운 熱狂(열광)의 應援(응원)의 德分(덕분)에 2대1로 全(전)上海(상해)팀을 擊破(격파)하고 너무나 기쁨에 못 이겨 ‘東海(동해)물과 白頭山(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은 부르지 못하고 學校(학교)校歌(교가)를 목이 터지라고 부르는 마당에 우리同胞(동포) 3천명이 ‘운동장’ 안으로 휩쓸어 들어와서 우리 選手(선수) 11명을 껴앉고 뛰고 기쁨의 눈물을 쏟아 완전히 ‘눈물의 바다’를 이뤘던 것이다.
  이 눈물 속에는 나라 없는 슬픔 가난의 슬픔 孤獨(고독)의 슬픔 그보다 大韓(대한)의 얼 ‘主體意識(주체의식)’이 용솟음친 연유이라고 할 것이다. 문득 이러한 30년 전 ‘스포츠’를 통한 追憶(추억)이 한 토막이 되살아난다. 東大(동대)健兒(건아)들이여 東國(동국)學園(학원)에서 眞理(진리)를 探究(탐구)하는 餘暇(여가)에 한 時間(시간)이라도 좋으니 運動(운동)園(원)에서 心身(심신)을 단련하라 그리하여 빛나는 太極旗(태극기) 아래에서 구김살 없이 두팔과 두다리로 힘차게 大地(대지)를 밟고 서라 여기에 大韓民國(대한민국)의 젊은이의 ‘얼’이 키워지는 것이다.
  앞날의 祖國(조국)과 東國(동국)은 永遠(영원)히 代(대)를 이어 젊은이 너희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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