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신문 칼럼 시리즈 (5) 역사파트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조혜정 교수

작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흥행 최고봉의 지표인 천만 관객을 모았다.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 광해는 우리들이 알던 폭군 광해와는 달리 선정을 펼쳐 백성을 어루만지는 임금이었다.
이렇게 감독은 ‘진짜’ 임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팩션사극’을 그려냈다. 이번 칼럼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만남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해내는 팩션사극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가히 사극열풍이다. TV는 물론 영화관에서도 사극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다. 뿐인가? 지난해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231만 명이라는 관객이 관람, ‘도둑들’과 함께 ‘천만관객’ 영화에 이름을 올렸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489만 명의 관객이 든 것으로 집계되어 2012년 전체영화 흥행순위 6위에 올랐다. 그 외에도 ‘가비’, ‘후궁: 제왕의 첩’, ‘나는 왕이로소이다’ 같은 영화들이 지난해 개봉됐고, 앞으로도 ‘관상’, ‘조선미녀삼총사’, ‘전령’, ‘군도’, ‘역린’ 등이 제작되고 있다.
TV에서 사극은 어느 방송에서건 한 군데 이상은 꼭 편성하는 관계로 늘 접해 왔지만, 사극영화가 제작 혹은 상영한다는 소식이 요즘처럼 빈번하게 들리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극영화가 영화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2000년대 들어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과 ‘왕의 남자’가 영화적 재미나 작품성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러한 흐름이 ‘최종병기 활’과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이어지면서 사극영화의 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 팩션의 시작
사극영화가 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배경에는 당연히 스토리의 힘이 작용한다. 스토리의 힘이야 어느 영화에서든 요구되는 것이지만, 사극의 경우 그것은 ‘역사’라는 거대한 서사의 원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역사’라는 저수지에서 길어 올린 스토리는 사실과 허구 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히 근래 사극의 특징은 바로 실제(fact)와 허구(fiction)를 결합한 이른바 ‘팩션’(faction)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이다.
팩션사극은 역사에 대한 상상력의 개입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기술하고 펼쳐나간다. 역사적 실제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팩션은 사실 혹은 현실의 역사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해석’의 역사이다. 팩션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우려를 모르지 않지만, 기록된 역사, 공인된 역사에 틈새가 왜 없겠는가? 그 틈새, 균열의 지점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찾아내고 선택하는 것이 바로 팩션의 묘미이다.

▲지난 해 천만관객을 달성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역사적 틈새에서 희망을 선언하다
영화 ‘왕의 남자’나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모두 팩션사극으로서, 역사적 기술(記述)의 틈새 혹은 균열의 지점을 정교하게 포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조선왕조실록’에서의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기술에서 영화적 모티브를 발견한 것이 아니던가. ‘왕의 남자’는 광대 공길이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는데,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고 말한 내용이 영화의 출발이었고,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누락되어 있는 15일간의 광해의 행적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가케무샤(影武者)로서 천민 하선의 존재를 등장시키고, 하선으로 하여금 ‘왕보다 더 왕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하여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게 했다. 당연히 하선의 존재는 픽션이나, 하선이 천민의 삶을 살았기에 백성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대동법이나 정책(친명배금이 아닌 등거리 외교)을 펴게 되었다는 스토리는 영화적 상상이지만 현실의 반영이고 희망과 기대의 선언인 것이다.

박제된 역사를 출렁이는 힘
팩션사극의 힘은 앞서 말한 특징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말한다. 역사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역사적 사실과 결과는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를 되돌리고, 다시 쓰고 싶은 적이 왜 없겠는가? 특히 이것이 대중의 무의식적 욕망으로 전화될 때 팩션은 이에 대한 보상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팩션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의 저자 김기봉의 지적대로 ‘이미 일어난 역사로서 닫혀 있는 텍스트를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텍스트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잘 만들어진 팩션사극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역사를 탐구하게 만드는 동기로 작용함으로써 잊히고 책 속에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탐색되고 재해석되는 살아있는 역사로 만들 것이다. 이것이 팩션사극의 힘이다. 물론 역사적 팩트와 픽션의 분별은 역사학자들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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