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연습을 통해 행복한 삶을 찾다

지금은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조건들을 갖춘다고 해도 반드시 성공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처럼 사회적 압박이 심한 시대에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읽고 쓰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융은 "나의 글이 나의 삶이다"고 말했다. 읽고 쓰는 것은 어떤 스펙보다 더 강한 조건이며, 타인과 소통하는 것의 기본이다. 책을 읽고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다면 시간이 뺏어 간 마음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읽기와 글쓰기는 세상이 지성인에게 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생존을 위한 조건은 다양해졌다. 우리의 전 세대 보다 지금은 더 많은 조건을 갖추어야 살아갈 수 있다. 진학의 이유도 배움이라는 일차적 목적은 빛을 잃었다. 취업과 사회적 성공을 위한 조건을 얻기 위해 대학을 다니고 학위를 따는 일이 일반적이다. 대학교육이 생계를 위한 필수요소가 돼가고 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조건, 소위 스펙은 점점 높아져서 어학에 몰두하거나 자격증과 공모전 입상에 전념하는 학생들도 늘었다. 어느 틈엔가 사회봉사도 하나의 스펙이 되고 말았다. 어학연수, 교환학생으로 이력서에 필요한 항목을 하나하나 늘려간다.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원하는 직장을 얻어 편한 삶을 이루기가 힘겹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삶이란 결국 조건의 결합인가를 묻게 된다. 진학, 취업, 결혼에 필요한 각각의 조건을 따지고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실패의 짐을 짊어진다. 화려한 조건을 갖춘 이는 반드시 성공하며 행복할 수 있을까? 진부한 대답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래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대학도시 버클리의 한 출판사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주문받은 책을 우편발송 하는 직원은 소위 명문인 하버드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청년이었다. 그의 직책은 연봉도 적고 그다지 사회적 지위를 따질만한 일도 아니었다. 최고 학력을 갖고 왜 그 일을 하는가를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하버드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동의할 수 있으나 공감하기 어려웠다. 곁에서 지켜보던 출판사 사장은 “아마 행복은 필요한 조건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조건으로부터 해방될 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조건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처럼 사회적 압박이 심한 시대에 세상이 강요하는 조건에 맞선다는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진정 용기 있는 자만이 나설 수 있는 길이다. 그렇다면 외면의 조건 보다 더 강한 내부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찾아야할 것이다. 그 어떤 스펙보다 중요한 조건, 모든 배움의 기본인 그것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한 답을 제시하자면 읽고 쓰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읽고 쓰기라니? 세상에 읽고 쓰지 못하는 이가 어디에 있을까?” 항변할 수 있겠으나 세상엔 제대로 읽고 쓸 수 있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하루종일 인터넷 게시판에서 잡다한 글을 읽고 댓글 달기는 쉬운 일이다. 한 편의 리포트를 제대로 쓰지 못해 남의 것을 베끼거나 리포트 판매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일도 흔하다. 한 쪽짜리 자기소개서를 쓰려면 온종일 진땀을 흘린다. 게다가 고심을 기울인 자기소개서조차 천편일률적이다. 십 년이 넘는 교육을 받았음에도 책 한 권을 숙독하지 못하는 이가 많고, 짧은 댓글조차 비문투성이거나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맞지 않다.

젊은 세대의 스펙 쌓기 경쟁을 지켜보는 솔직한 심정은 그 시간에 차라리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대학교육의 현실적인 성과는 자신이 배운 것을 타인에게 전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그 시작이 읽고 쓰기를 익히는 데서 출발한다.
읽고 쓰기의 문제는 전공과 학과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공계의 논문이 읽기 쉽고 명확하며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일이다. 때만 되면 흘러간 유행가처럼 ‘인문학의 위기’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 원인은 명백하다.
읽을 수 있는 좋은 글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다루는 이들의 글이 난삽하기 그지없다. 읽기 쉬운 논문을 본 적이 손꼽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위기가 닥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불합리하다.

스펙 쌓기 경쟁에 동참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놓인 처지나 환경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고 글쓰기를 익혀야한다. 분명 그 어떤 스펙보다 더 강한 조건을 얻을 수 있다. 시험 답안부터 취업 후 써야하는 기안문서나 보고서까지 글쓰기의 기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로부터 흔히 듣는 질문이 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솔직한 대답은 “모른다.”이다. 형식에 따라 목적에 따라 잘 쓴 글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능력에 따라 글쓰기의 어려움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갖추어야 할 분명한 것은 있다. 그것은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는 일이다. 천 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자신의 문장 하나를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은 때에 따라 변해가지만 글로 쓰는 즉시 시간과 지면 속에 사로잡히게 된다. 생각은 기억할 수 없어도 글은 남아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숨길 수 없게 된다. 인류 문화와 인간 심리의 대가 카를 구스타프 융(C. G. Jung)은 그의 자서전에서 “나의 삶을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나의 글 밖에는 남은 것이 없다. 나의 글이 나의 삶이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삶을 표현할 한 줄의 문장도 얻지 못했다면 우울한 일이다.

세월이 가면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도 무뎌지고 생각의 능력도 나약해진다. 그때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고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다면 시간이 빼앗아 간 마음의 힘을 되찾아 올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곳에 진지한 해답이 있다. 세상이 지식인과 지성인에게 요구하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 책 읽기와 글쓰기를 진지하게 탐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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