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와 기대 외면한 연극

劇團(극단)은 個性(개성)과 理念忘却(이념망각)하고 移動(이동)
純粹(순수)한 理論的(이론적) 學術硏究團體(학술연구단체) 緊要(긴요)

  오늘의 演劇(연극)계는 許多(허다)한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그 解決策(해결책)은 미처 講究(강구)되어 있지 못한 실정에 놓여있다.
  물론 한 나라의 演劇(연극)이 발전하고 그리하여 이것이 보다 높은 次元(차원)에서 인류의 苦惱(고뇌)를 根源的(근원적)으로 다스려 治療(치료)할 수 있는 길이란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演劇(연극)은 무뢰한들이 생각하는 바의 假飾(가식)과 模倣(모방)일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만년의 戱曲(희곡) ‘템페스트’ 중에서 “俳優(배우)는 모두가 精靈(정령)이다”란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우리가 劇場(극장)으로 가는 것을 단순한 오락을 求(구)해서가 아니라 그 精靈(정령)의 소리를 들음은 물론 내 心魂(심혼) 중의 어느 一面(일면)에 존재할 나의 소리와 나의 참모습을 鑑賞(감상)하기 위하여 劇場(극장)으로 가는 것이다.
  까닭에 劇場(극장)은 나의 分身(분신)의 處所(처소)이며 언제나 現實的(현실적)인 複雜(복잡)한 生活(생활)에 쫓기는 우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이 高貴(고귀)한 순간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몇 개의 劇場(극장)이 이러한 우리들의 靈魂(영혼)의 安息處(안식처)가 되어있고 거기서 참된 나의 소리 나의 精靈(정령)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의 演劇(연극)은 왜 이렇게 간절한 우리의 慾求(욕구)와 切實(절실)한 願望(원망)을 外面(외면) 하려는가? 우리들 만인의 精靈(정령)이 되어야 할 그들 演技者(연기자)에게 이러한 素養(소양)은 아직도 부족한 것인가?
  올해로써 韓國(한국)의 新演劇(신연극) 운동은 꼭 60년을 맞이한다. 결코 우리의 新劇歷史(신극역사)가 日淺(일천)한 탓은 아니다.
  우리의 演劇(연극)계의 반성은 時急(시급)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觀客(관객)을 招致(초치)하고, 그리하여 그들 心魂(심혼)의 소리를 들려주기에 노력하기 이전, 演劇人(연극인)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는 온 것이다.
  오늘의 演劇運動(연극운동)은 완전히 ‘아마추어’演劇(연극)이다. 老鍊(노련)한 俳優(배우)들은 이미 演劇舞臺(연극무대)를 탈출하고, 映畵(영화)와 TㆍV 스크린에 그들의 生計(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 實驗劇(실험극) 운동에서 우리는 將來(장래)를 기다려본다고는 하더라도 그들 素人(소인)들의 演技(연기)에서 우리들 참된 靈魂(영혼)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난센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다.
  어쨌든 오늘의 俳優(배우)들은 무척들 바쁜 속에서 오고 가고 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개성과 이념을 忘却(망각)하고 劇團(극단)의 性格(성격)과 理念(이념)도 가리지 아니하고 移動(이동)한다.
  그것이 그들에겐 숫저히 편리한 수단이 되고만 원인은 그들 有名俳優(유명배우)(?)에겐 언제나 劇團(극단)이 문호를 개방하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韓國(한국)에 존재하는 많은 劇團(극단)들은 그 명칭은 相異(상이)하나 그들 演技陣(연기진)의 구성멤버들을 보면 모두가 거의 같은 이름들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 演技者(연기자)의 역량은 한정되고 어디서나 같은 인물을 되풀이할 밖에 그들은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러한 不規則(불규칙)한 狀態(상태)下(하)에서 그들은 활보하고 여기에 아무런 制裁(제재)가 없는 것도 自體(자체)로서의 時急(시급)한 問題點(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演劇界(연극계)는 스스로 自省(자성)할 단계에 와 있다.
  新劇(신극) 60周年(주년)을 맞는 劇界(극계)에서는 금년에 들어와 비로소 懷古的(회고적)이라고는 할는지 모르나 1910年代(년대)의 草創期(초창기)戱曲(희곡)으로서 林聖九(임성구) 作(작) ‘六穴砲强盜(육혈포강도)’와 1920年代(년대)의 朴勝喜(박승희) 作(작) ‘아리랑 고개’ 및 1930年代(년대)를 대표하는 劇藝術硏究會(극예술연구회)의 柳致眞(유치진) 作(작) ‘土幕(토막)’ 그리고 1940年代(년대)의 金春光(김춘광) 작 ‘檢査(검사)와 女先生(여선생)’, 1950年代(년대)의 吳泳鎭(오영진) 作(작) ‘시집가는 날’ 등 다섯 편의 그 時代(시대) 代表作(대표작)들을 時代順(시대순)으로 구성 ‘눈으로 보는 新演劇(신연극) 60年史(년사)’를 마련, ‘그래도 幕(막)은 오른다’ (車凡錫(차범석) 構成(구성)) 라는 이름으로 그간 日帝(일제)下(하)의 모진 彈壓(탄압)下(하)에 서로 錦錦(금금)히 이어 나온 新劇(신극)의 자취를 회고하고 다시 그 열을 되새기는 뜻으로 오늘의 新舊(신구) 演藝人(연예인) 공동으로 이루어진 演劇(연극) 행사가 있었다.
  이는 단순한 신演劇(연극) 60년의 還甲宴(환갑연)이라기보다는 점차 우리 演劇(연극)계에 있어서의 신演劇(연극) 60년의 정리와 그 체계화를 도모한 뜻에서도 실로 보람 있었던 행사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機會(기회)를 통하여 이번에 출연한 사람들만이라도 우리는 서로 過去(과거)의 新演劇(신연극)運動(운동) 草創期(초창기)에 있어서의 演劇(연극)인의 熱意(열의)와 日帝(일제)下(하)의 連續(연속)된 수난하의 역사를 알 수 있었을 것이며, 현재 韓國(한국)의 演劇(연극)과 演劇(연극)인의 觀點(관점)이 어느 만큼 달랐던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 華麗(화려)할 수만 없었던 우리 新劇(신극)草創期(초창기)時代(시대)의 俳優(배우)와 作者(작자)들의 修練(수련)은 우선 피나는 노력과 함께 그래도 오늘을 향해 志向(지향)하는 그들의 목표와 꿈이 있었다.
  오늘에 사는 우리는 또 미래의 꿈과 그 목표를 가지고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演技者(연기자)는 또 항시 새로울 수 있는 자신의 力量(역량)을 위해 스스로 자숙하여 목표와 그의 확고한 연기이념을 터득해 갖는 일이다.
그 밖에 우리는 演劇(연극)인 相互間(상호간)에 너무나 孤立(고립)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우리에겐 演劇(연극)의 理論(이론)과 實際(실제)를 다루고 演劇(연극)인 相互間(상호간)의 意見(의견)을 開陳(개진)할 學會(학회)라는 名目(명목)의 이름조차 없었다.
  演劇(연극)의 실재 演技面(연기면)을 통한 硏究團體(연구단체)도 있어야 하나 此際(차제)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그 實際面(실제면)을 보완할 演劇(연극)의 純粹(순수)한 理論(이론)적인 學術(학술)硏究團體(연구단체)도 하나쯤은 시급히 있어야 할 문제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演劇(연극)은 空中樓閣(공중누각)이 아닌 實際(실제)면과 理論面(이론면)이 아닌 補給(보급)되어 竝進(병진)하는 가운데서 비로소 한국의 演劇(연극)은 그 正道(정도)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며 이로서 우리는 次善策(차선책)의 하나로서 劇團(극단)의 소리와 演技者(연기자)의 소리, 그 보다 觀客(관객)의 소리를 重視(중시)하며 영화 방송 TV등 운영자의 反省(반성)을 促求(촉구)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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