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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림사업과 현황[식목일 특집 논문 이제] 청청한 산하를
  • 權雷擇(권뢰택)
  • 승인 1968.04.01
  • 호수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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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事(행사)的(적)造林(조림)方法(방법)止揚(지양)해야
愛林(애림)思想(사상) 고취 등 治山(치산)은 治(치)心(심)에서
專業(전업)的(적)林業(임업)者(자) 육성 時急(시급)

  삼라만상이동면에서 소생하여 靜(정)에서 動(동)으로 싹트기 시작하는 봄철이 되고 보면 누구나 정원에 한 포기의 꽃이라도 가꾸어 보고 싶고 한그루의 나무라도 손수심어보고 싶으며 주말이 되면 교외로 나아가 대자연속에서 마음껏 호흡해 보고 싶은 심정이 든다.
  恒例的(항례적)으로 식목일 전후하면 紀念植樹(기념식수)이니 愛林(애림)思想(사상)이니 떠들어 대고 공무원, 사회단체, 학생들이 동원되어 造林(조림)行事(행사)를 되풀이 하곤 하니 위의 산야는 殺(쇄)緊張(긴장)하게 無(무)立(립)木花(목화) 되어가고 森林(삼림)資源(자원)은 ?湯(탕)되어 林産物(임산물)의 需要供給(수요공급)의 균형을 策(책)할 방도가 없는 난관에 봉착되고 있는 현황이고 보면 우리도 국토를 풍치 좋은 武陵桃源(무릉도원)으로 조성해놓고 살수 없나 하여 황폐되는 국토를 우려도 해보고 좀 더 실효적인 造林(조림)方法(방법)으로 국토를 綠化(녹화)시킬 수 없나하여 일 년에 한번 요즘이 되면 누구나가 생각도 해보고서로 화제 삼아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造林學(조림학)을 전공하고 강의하는 필자로서 이 방면에의 제목으로 原稿請託(원고청탁)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인상 싶다. 원래 造林(조림) 즉 森林(삼림)을 조성하고 보호하는 목적에는 커다란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이다.
  ①公益(공익)을 지향하는 조림= 과학이 발달된 一流(일류)文明(문명)國(국)에서도 大(대)暴風雨(폭풍우)ㆍ洪水(홍수)早魁(조괴)의 피해를 막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천재지변을 방지하는 방법으로는 울창한 森林(삼림)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길뿐이라는 것은 상식된 사실, 그래서 자고로 農商工(농상공)의 實業面(실업면)을 賤(천)하게 여기든 옛날에도 森林(삼림)의 公益性(공익성)을 거역하지 못했고 적극적인 조림을 策(책)하지 않고는 대자연의 위험을 어떻게 했으리요. 고려예종원년(서기1106년) 日官(일관)秦(진)松(송)獄(옥)及(급)京都(경도)鎭(진)山(산)積年(적년)雨(우)水(수)沙(사)십漂流(표류)巖石(암석)暴露(폭로)草木(초목)不(불)茂(무)宜(의)栽(재)植(식)穗(수)補(보) 인가라 했고 李(이)明(명)시대의 ‘續大典(속대전)’의 工(공)農(농) 栽(재)植(식)條(조)에 보면 每年(매년)春(춘)冬(동) 2月(월)ㆍ10月(월)令(령)四山(사산)分受(분수)人(인)無(무)分受(분수)處(처)則(칙)坊(방)里(리)人(인)松(송)雜(잡)木(목)栽(재)植(식) 違(위)者(자)科(과)罪(죄)라 하여 都城(도성)四山(사산)에는 科罪(과죄)까지 해가며 조림했든 사적은 무엇을 뜻함이요. 國土(국토)保安(보안), 水原(수원)涵養(함양), 土砂(토사)防止(방지), 風致(풍치)造成(조성)… 公益(공익)적인 保安(보안)地域(지역)은 所有者(소유자)에게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고 愛林(애림)思想(사상)에 만 呼(호)訟(송)하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인 것이다. 제2차 經濟開發(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천에 국민의 총력이 요청되는 때고 보면 森林(삼림)造成(조성)國土(국토)建設(건설)이야 말로 먼저 다루어져야 할 긴급한 당면사업이라고 본다.
  都心地(도심지)의 摩天樓(마천루), 都市計劃(도시계획), 道路(도로)擴張(확장)改修(개수)는 財力(재력)과 勞力(노력)만 있으면 短時日(단시일)에 그 結果(결과)를 볼 수 있으나 森林(삼림)造成(조성)은 아무리 財力(재력)과 勞力(노력)與件(여건)이 갖춰진다 해도 장구한 세월이 경과하지 않으면 實效(실효)를 보지 못하는 것이니 그만큼 빨리 착수해야 될 當面(당면)事業(사업)이라는 것을 말한다. 매년 數億(수억)林(림)의 造林(조림), 數萬(수만)名(명)의 動員(동원)云云(운운)의 선전적인 조림보다는 畿(기)町(정)步(보)의 成林(성림)이 긴요된다. 행사적이며 未(미)役(역)制(제)의 造林(조림)方法(방법)을 지양하고 농업고등학교 林學科(임학과) 이상의 졸업자, 林業(임업)技術(기술)의 체험자로 현재 無職(무직)에 있는 技術(기술)能力者(능력자)를 총동원하여 직업전인 造林(조림)隊(대), 또는 國土(국토)綠化(녹화)隊(대), 國土(국토)建設(건설)隊(대)를 조직하여 적극적인 책임제의 造林(조림)을 실시해야 될 것이다.
  그 조직과 실천방법은 왕년 미국의 經濟(경제)大恐慌(대공황) 시대 ‘루즈벨트’ 大統領(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의한 CㆍCㆍC隊員(대원)의 造林(조림)事業(사업)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造林(조림)이란 無識(무식)한 노무자의 일이란 思考(사고)를 버려야 된다. 과거 조림은 했으나 成林(성림)을 보지 못하고 실패하여 一般(일반)輿論(여론)을 免(면)치 못했든 원인은 여러 角度(각도)에서 검토될 것이나 技術(기술)面(면)에서 본다면 苗木(묘목)의 掘(굴)取(취)選(선)苗(묘) 包裝(포장) 輸送(수송) 假植(가식)植栽(식재)를 一貫(일관)한 造林(조림)기술의 粗放(조방)한데 있다고 단정해도 과언이 아닐상 싶다.
  團(단)場(장)에서 掘(굴)取(취)된 苗木(묘목)이 植栽(식재)되기까지의 과정에 있어 非科學的(비과학적)이며 취급이 粗放(조방)해서야 植栽(식재)한 후 活着(활착)하는 것이 이상하 노릇이고 적어도 樹木(수목)生理(생리), 土壤(토양), 造林(조림)에 대한 정규교육을 받은 林業(임업)技術者(기술자)들이면 植栽(식재)한 후에 枯死(고사)하는 게 異(이)常(상)的(적)이 되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조직된 造林(조림)隊員(대원)은 室內(실내)勸(권)務(무)의 林業(임업)技術者(기술자)에 비하여 수배의 給與(급여)優待(우대)가 있어야 한다. 造林(조림)면의 非常時(비상시)에 있어서 실지로 畿(기)町(정)步(보)의  成立(성립)功勞(공로)는 크게 평가해주어야 될 현황이고 보면, 給與(급여)財源(재원)云云(운운)할 것이나 植栽(식재)後(후) 活着(활착)成林(성림) 되지 못하면 곧 과거 2,3년간을 거쳐서 쌓았던 養苗(양묘)努力(노력)과 造林(조림)費(비)의 경제적 손실은 누가 가질 것이며 매년 이와 같은 일을 되풀이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林業(임업)技術者(기술자)로 無職(무직)者(자)가 있다면  기술의 死藏(사장)이요 技術者(기술자)라면 꼭 成林(성림)시킨다는 기술의 자각이 필요 된다.
  樹木(수목)은 거대하게 수백 년 내지 천여 년의 수명을 지니고 웅장하게 자라는 姿態(자태)는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기념사업에 적당하다. 自古(자고)로 高官(고관)就(취)位(위), 誕辰(탄신)結婚(결혼), 凱(개)定(정), 出征(출정) 의 記念(기념)으로 植樹(식수)를 했다.
  法主寺(법주사)의 正(정)이品(품)松(송), 震(진)門(문)寺(사)의 盤松(반송), 景福宮(경복궁)의 향나무, 曹(조)溪(계)寺(사)의 白松(백송) 등, 천연기념물로 指定(지정)된 國寶的(국보적)인 巨樹(거수)가 모두 무슨 綠(녹)由(유)로 人工(인공)植栽(식재)된 것이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세계적인 巨樹(거수) 미국 ‘캘리포니아’ Sierva Nevada지역의 Sequoia gigantea에 못지 않은 웅장한 모습, 그러나 혹은 義湘(의상)大師(대사)가 심었으니 西山大師(서산대사)가 樹(수)栽(재)했으니 區區(구구)하여 우리의 자랑거리도 그 由來(유래)를 알 바 없다.
  외국에 여행한 사람은 이와 같은 紀念植樹(기념식수)에는 石(석)林(림)ㆍ鐘板(종판)으로 標識(표지)하여 그 나무와 같이 영구히 보존됨을 목격했을 것이다. 어느 高官(고관)이 취임하면 閣下(각하) 紀念植樹(기념식수)의 標柱(표주)가 앞 다투어 서게 되나 勢道(세도)가 없어지면 그날로 標柱(표주)가 없어지니 植樹(식수)에도 阿附(아부)가 있어야 되는 것인가?
  자연을 사랑하고 樹木(수목)을 愛護(애호)하는 사상보급에는 낙담할 필요가 없다. 기차ㆍ자동차로 지방 여행할 때 보듯이 沿(연)道(도)에서 두 손으로 욕질하든 광경은 옛일이고 두 손 흔들며 환영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엇을 말함인고, 旣成世代(기성세대)의 죄, 교육의 힘, 개화의 상징이라고 할지, 治山(치산)은 治(치)心(심)에서!
② 企業的(기업적) 造林(조림)
  자유주의의 經濟體制(경제체제)하에서 영리적으로 爲營(위영)하려는 林業(임업)經營(경영)에 森林(삼림)의 公益(공익)성 또는 木材(목재)의 需要供給(수요공급)의 책정을 내세워 무한한 억압과 간섭은 養(양)縮(축)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公益(공익)은 사익에 앞선다 해도 私(사)經營(경영)에 영향이 될 정도의 재적희생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欲治山者(욕치산자)는 先治私山(선치사산)이고 보면 특히 林業(임업)經營(경영)과같이 公益(공익)과 사익의 충돌이 심한 일차산업 부문에는 적극적인 정부 助長(조장)策(책)이 촉구된 것이다. 林業(임업)을 한 企業(기업)으로 事業(사업)하려는 사람은 造林(조림)投資(투자)가 얼마의 利律(이율)로 순환되는지 다른 생산업의 투자에 비한 損益(손익)計算(계산)은 예민한 것이다.
  山林法(산림법)에도 一團地(일단지) 百(백)정보 이상의 林野(임야) 소유자는 소정된 營林(영림)監督(감독) 밑에 영리를 목적하여 營林(영림)事業(사업) 하게되어있다. 정상적인 造林(조림)費(비)를 1만 3천 2백 원 투자하면 伐期(벌기) 30년으로 複利(복리)計算(계산)하면 40만 7천 4백 40원이 되니 아무리 木材(목재)時勢(시세)의 上昇率(상승률)을 고려한다 해도 現(현)金利(금리) 狀態(상태)로 보는 장기예금의 法定利字額(법정이자액)보다 下廻(하회)한다면造林(조림)은 기본 財産(재산)蓄積(축적)이니 愛林(애림)思想(사상)이니 해본들 事業資本(사업자본)이 빈약한 일반 林業(임업)가들이 住宅資金(주택자금)ㆍ電力(전력)資金(자금)ㆍ輸出産業(수출산업)ㆍ長期(장기)水利(수리)事業(사업) 등 국책적인 低利(저리)資金(자금)融資(융자)의 방도가 없는 한 그 진흥은 豫期(예기)하기 곤란할 것이다.
  資本的(자본적)으로 빈약한 私經濟(사경제)에서는 정부의 뒷받침이 없는 국가에서는 斫伐業者(작벌업자)는 있어도 事業的(사업적)인 林業(임업)은 성립되기 곤란하고 養苗業(양묘업)은 있어도 造林業者(조림업자)는 없다 해도 과장된 表現(표현)은 아닐 것이다. 원래 斫伐業者(작벌업자)는 林木(임목)蓄積(축적)을 볼 때에 鑛主(광주)가 鑛脈(광맥) 보듯이 한다. 토지가 고가의 물질을 포장하고 있어 그 물질을 급속히 換價(환가)하고 그 跡地(적지)는 無價値(무가치)한 것으로 포기하듯이 保續的(보속적) 수확은 염두에 두지 않고 換價(환가)할 수 있는 정도의 林木(임목)蓄積(축적)은 가급적 빨리 伐採(벌채)하여 投資(투자)資本(자본)을 회수하고 이윤을 꾀하려는 나머지 過伐(과벌)에 血眼(혈안)이 되어 급속도로 山林(산림)이 황폐되어감은 부정 못할 사실이기도 하다.
  林業(임업)은 定(정)養(양)的(적)인 長期(장기)生産業(생산업)으로 森林(삼림)의 全(전)生産過程(생산과정)ㆍ養苗(양묘)ㆍ造林(조림)ㆍ撫育(무육)伐採(벌채)를 專業的(전업적)으로 爲營(위영)하고 營林(영림)에서의 수입은 第(제)2生(생)造成(조성)에 환원시켜 保護(보호)作業(작업)을 지향하는 事業的(사업적)인 林業者(임업자) 육성에 과감한 助長策(조장책)을 책함이 당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權雷擇(권뢰택)  農林大(농림대) 敎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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