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이 실제와 결합, 행동화 될 때 진정한 사회발전 이룩될 수 있어”

공중도덕 중요성 새삼 느끼게도
남보다 먼저 사는 모습들에 感銘(감명)

  새로운 양상으로 시작된 대학생 봉사활동에 참가 하였다. 지금까지 실시하여 오던 봉사의 내용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방향을 모색, 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도시 문제 중의 하나인 교통질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리질서 도시봉사’였다.
  첫날, 미지의 일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눈을 뜬 것은 새벽 5시 경으로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퇴계로 2가에 7時(시)30分(분)까지 도착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지나는 곳에서 우선 나는 어떤 표정과 몸가짐을 해야 할까, 우리의 활동에 대한 시민의 반응이 혹 냉담하지나 않을까, 고달픈 것으로 끝나고 만다면… 하지만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날지도 모른다’ 등의 걱정과 기대감에 설렜다.
  겨울 새벽 공기는 몹시도 차가왔다. 기다리던 버스가 어둠 저쪽에서 다가올 때는 처음으로 차를 타보는 듯 반갑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는 새벽을 만지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새벽 가로등빛을 가르며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은 가시고, 이른 아침거리를 지나는 行人(행인)들과 신문대 한쪽 구석에 추위를 사르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장사 준비에 바쁜 남보다 먼저 사는 모습들이 있었다.
  그간의 방학생활동안, 늦게서야 잠을 깨는 이부자리 속에서는 결코 생각지 못한 활기찬 움직임이었다.
  삶의 태동, 바로 그것인 듯 하였다. 지정된 장소에 모인 우리組(조) 8명은 조장의 지시에 따라 표어판과 어깨띠, 호각을 분배받아 각 건널목에 배치되었다. 드디어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거리질서를 지키자’ ‘내가 지킨 교통질서, 명랑사회 이룩된다’라고 우리의 소지품들에 씌어져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온몸에 어색하게 와닿는 듯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졌다가는 흩어져 건너는 것이 반복되어졌다. 푸른 신호등이 켜지기도 전에 차도로 내려서는 사람과 그냥 지나쳐 가는 차들이 많이 있었다.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할 의식 개혁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우리들의 이 ‘거리질서 도시봉사활동’의 임무가 적지 않음을 자각하였다.
  우리들은 오랜 학교생활에서 교통도덕 공중도덕 등 기본적인 질서태도를 배웠지만, 그것은 교과서 속의 이론으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은 듯 하였다.
  이론이 다만, 이론으로 존재하지 않고 실제 생활과 결합, 융화하여 실천화‧행동화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참다운 이론이며 그렇게 될 때에만 바람직한 方向(방향)으로 社會(사회)가 發展(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추위에 발을 구르며 서 있는 우리들의 소리를 무시한 채 마구 길을 건너는 시민을 볼 때는 참으로 속상하였고 무정하게 까지 보였지만 그럴 때마다 책임감을 무겁게 느껴졌고 추위도 잊어버려졌다.
  길도 차동차도 모두 인간의 편리를 위한 것들이며, 질서 또한 인간생활에 필요한 인간을 위한 것임은 군말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사람이 사는 거리에는 人情(인정)도 있었다.
  겨울의 낮은 짧아 4時(시)부터 시작되는 오후 봉사활동은 어둠이 완전히 퍼진 6時(시)에 끝난다.
  어느 날, 오후에.
  앞을 지나쳐간 아저씨 한분이 되돌아오더니 ‘학생, 수고해요’ 하며 웃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적지 않은 놀라움과 당황으로 그저 따라 웃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거리에는 온통 情(정)이 넘치는 듯, 친숙하고 다정스러워 보였고 무엇인지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함이 있었다.
  몸에 익숙하지 않은 일이 힘이 드나보다. 다리가 몹시 아팠다.
  입학원서를 사기 위해 학교 위치를 묻거나 혹은 科(과)의 합격선 등을 물어오는 예비학우들도 많이 있었는데, 뱃지 모양도 함께 인식시켜야 한다며 큰 것을 가슴에 달고 호각을 열심히 불어대던 친구의 얼굴이 눈물겹도록 순진해 보였다.
  그리고, 의외로 서울 지리를 물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는 外國人(외국인)에게 길을 안내해 준 기억도 있다. 물론 會話(회화)를 잘하는 사람을 통해서였지만.
  7년을 넘게 영어를 배워서 처음으로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 “I don't know”라니. 그것도 개미소리만큼이나 작은 소리로. 다음 말은 “Wait a minute”이었다.
  사실 나는 그가 펼쳐 보인 종이 위에 적힌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지만 몇 년 동안이나 영어를 배워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르겠다는 말을 제일 먼저 사용할 줄이야…
  이 사건(?)은 나에게 약간의 침울함을 안겨주었다.
  서울의 인구는 많았다.
  行人(행인)이 그렇게도 많이 있었건만 첫날의 기대와는 달리 오직 한 스님만이 시내 한복판의 낯익은 얼굴이었으니 그것은 정말 인연이었으리라.
  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낮에도 우리의 봉사활동은 계속 진행되었었다.
  첫날 시작할 때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협조하여 주었다. 그러나, 같은 도시민들에게 일상생활과 직접 연결된 질서는 지속적인 계몽을 펴서 자율적인 준법정신 내지는 질서의식을 습관화 시킴으로써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삶을 확인한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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