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색의 계절 - 그 회상과 충고와


  화초를 좋아한다고 수집가라 할 것인가. 꽃집이나 거리에서 파는 값싼 화초를 하나 둘 사들고 간다고, 또 남의 사무실에 들렸을 때 나눌 수 있는 화초라도 그곳에 있다면 나누어 달라고 보채, 얻거나 사온 화초의 이름을 식물 그림책에서 찾아본다고, 이러한 나를 수집벽이 있다 또는 수집가라 이를 수 있을까.
  아직 모은 것이 없으니 수집가까지 될 수 없고, 또 모으지 않으면 미칠 듯이 못 견디게 버릇이 된 것도 아니니 수집벽도 아니리라.
  한 때는 책을 모으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화초를 더 좋아한다. 화초는 값싸고 나 나름으로 볼품있는 것을 산다. 값진 것만 좋은 것이 아니다. 맥문동이라는 풀이 있다. 난초 비슷하여 어느 사람은 난초라 이르고, 서울 장안의 꽃집에서도 팔고 있다. 그러나 산에 가면 볼 수 있는 풀이고 분에 심어 즐길 수 있는 화초이며 또 약초이다.
  요즘 서울 거리의 꽃밭에서는 서양 오랑캐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한해살이 풀이고, 산에나 들에는 해를 묵어서 사는 것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향기 있는 것이 있다. 어느 날 친구와 둘이서 산에 올라갔다. 더워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 앞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모양의 오랑캐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얼른 그 꽃의 향기를 맡아 보았다. 그랬더니 그 꽃에서 바로 은은한 향기가 나지 않는가. 기뻤었다. 나는 스스로 우리나라에서 나는 향기 있는 오랑캐꽃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른 오랑캐꽃의 잎모양이 통으로 둥글거나 개름한데 이것은 갈기갈기 갈라져 제비쑥이나 미나리처럼 되었고 꽃빛도 노랑 보다 또는 흰 것이 있는데 이것은 연한 보랏빛이다.
  아무도 고광나무를 화초로 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고광나무를 좋아한다. 고광나무는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만 나무이다. 잎이 국화 같으나 국화과의 식물이 아니고 호이초 (싹씨후라가) 과이다. 여름에 조그만 흰 꽃을 피우고 보잘것없는 나무이지만, 덩굴 모양으로 쭉쭉 뻗은 가지가 활처럼 휘여 늘어진데 멋이 있어 좋다.
  이처럼 보잘것없는 풀이나 나무라도 자기가보고 즐길 수 있으면 화초가 된다. 화초는 모으는데 맛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르고 보는데 있다.
  모으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돈을 번다. (이것도 모으는 데서는 같다) 또 옛돈이나 다른 나라의 돈을 모은다. 우표를 모은다. 책을 모은다. 성냥갑을 모은다…그 분량과 물건은 다르나 사람은 누구나 모으는 일을 한다. 그러나 모으는 일에는 세 가지가 있으리라. 첫째는 돈벌이를 위하여 모으는 일, 둘째는 어떠한 연구를 위하여 자료를 모으는 일, 셋째는 재미로 모으는 일이다.
  옛날에 어느 사람이 있어서 그는 밖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언제나 돌을 하나씩 주어와 마당한구석에 쌓아놓았다.
  어느 날이다. 산처럼 쌓인 그, 돌더미가 황금빛으로 빛났다. 이때 잎에 살고있던 욕심쟁이 영감이 그것을 보고 탐이 나서 자기 집에 쌓아둔 노적더니와 맞바꾸자고 하였다. 그는 망설이다가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였다. 바꿀 때 그는 위에 놓아두었던 금돌하나만 내려놓고 맞바꾸어 부자가 되었다는 옛 얘기도 있지만 모으는 일이 모두 돈만 노리고하는 짓은 아니다. 도리어 돈을 주고 산다. 재미있고 멋을 위하여 모으는 것이다.
  재미로 모은다는 일은 자기세계이다. 남이 볼 때에는 우습고 장난 같으며 아무 보잘 것 없는 일 같지만 자기는 무엇보다 중하고 자기만이 맛볼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홀로 조약돌 밭에서 구멍 뚫린 돌을 찾고, 말없는 돌과마주앉아 오늘도 서로 얘기하며, 보잘 것 없는 화분 곁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있다.
  왜 그럴까. 사람은 아무리 두 사람 사이에 가깝다 할지라도 서로 마음깊이 영혼까지 가까워질 수 없는 그 고독 때문에.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이 그의 작품에서 늘 나타내려고 한 그 ‘사람의 영혼의 절대적 고독’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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