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마즈 귀니 감독의 영화 ‘욜’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그리고 있다.



  바람과 같이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우리의 괴로움에도 천의 색깔과 천의 얼굴이 있다. 내가 가깝게 지낸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며 나는 이 영화로 괴로움과 사랑의 참회를 얘기하려 했다.
  우리들이 그것을 믿든 믿지 않든 혹은 그것을 불가해의 것이라고 하든, 사람이 사는 한, 괴로움도 사랑도 참회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함께 살아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만이 사람과 고뇌를 의식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만들어진 영화 1982년 칸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은 단지 이 같은 정치적 SENSATION에 근거로 하는 것일까?
  1982년 칸느 영화제, 세계 비평가 협회, 세계 가톨릭 영화상을 휩쓸었던 YOL은 그 수상 경력뿐만 아니라 제3세계의 영화가 제3세계권 밖으로 확장되어 제3세계의 문제점을 타국이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YOL에서 나오는 터키의 정치적 상황은 군부독재에 의해 처음부터 압도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의 전개과정과 시위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5명의 죄수가 가석방을 나와 각자의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시작부터 목적지에 도착하는 끝까지 터키의 진실을 명쾌하게 제시할 뿐이다. 이마랄리 수용소가 보이는 첫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가석방 기대에 부푼 5명의 죄수가 가석방 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5명의 죄수 중 가장 어리고 키가 작은 유서프는 그의 어린 신부와의 만남을 기대하지만 신분증을 잃어버려 다시 체포된다.
  검문검색을 하는 과정에서, 단지 1장의 휴가증을 잃어버린 자를 아무 희망도 없는 감옥으로 재 투옥하는 과정에서 다른 4명의 죄수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고 강력한 군부 독재의 악랄함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적극적인 성격의 메브르트는 그리워하는 약혼녀와 만나게 되지만 불행히도 속박과 금지로 가득 찬 가부장적 관습의 사슬에 얽매이게 된다. 이때의 감옥은 돌로 둘러쌓인 감방이 아니라 전통과 도덕의 구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방황하던 메브르트는 결혼식 전날 수많은 군중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는 사창가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사창가 앞에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서 다시 한 번 가부장적 관습의 허위를 실감할 수 있다. 메메트살리는 투옥 전에 처남과 함께 범죄를 저지르다 그의 비겁함 때문에 처남이 경찰에 의해 죽게 된다. 부인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했던 그였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부인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서로 사랑하던 살리와 그의 부인은 도주하지만 관습적인 처가의 복수에 기차 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젊은 쿠르드인인 오메르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터키 군대와 자유투사와의 전투로 인해 고향은 이미 황폐해 있었다. 자유투사인 형이 터키 군에 의해 타살되자, 사랑하는 여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상 형수의 남편이 되어야만 하는 처지에 처한다. 감옥 밖과 안이 다름이 없음을 직시한 오메르는 자유를 향해 말을 달린다.
  신중한 성격을 지닌 세이트알리는 아내가 창녀로 전락한 것을 알고 이미 가족의 벌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아내를 자신의 손에 벌하기 위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한을 견디며 목적지에 도달한다. 아내의 정절에 확신이 없던 그는 그녀에 대한 심판을 하늘에 맡겨 버린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가부장적 관습의 둘레에서 허덕이는 그가 결국 사랑을 선택하나 그녀가 숨을 거둔 후였다.
  그리고 이에 순응하고 만다. 가끔 양심적이고 인간적이면서, 인간의 사랑에 호소하여 더욱더 사실됨과 진실됨을 찾은 것이 바로 이 영화가 좋을 수밖에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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