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나라’ , 억압과 자유

우리는 어디에서 살까? 새 정부가 출발하는 대한민국이고, 동국대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남산 밑에 산다.
봄과 함께 화사한 꽃들로 물들어 갈 남산을 상상만 해봐도 마음이 환해진다. 진달래를 보며 짐지고 가는 인생을 노래했던 김흥호 선생님 (대학시절 만난 스승)은 지난 해 세상을 떠나셨다. 하루 한 끼를 드시고 늘 산책을 벗 삼아 대학생활의 멋과 맛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새 학기 대학론이 이 무렵이면 늘 생생하게 떠오른다.

“인생에서 대학생활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절이다. 그동안 인생의 스승 한 분을 만나고, 친구 열 사람을 사귀고, 책 백 권을 읽으면 멋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나는 그랬을까? 적어도 선생님과 책은 그랬다. 친구도 어느 정도 그렇다. 그 후 좋은 친구를 더 사귀긴 했지만. 특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도서관 서고 구석에서 이 책 저 책 전공과 상관없이 읽곤 하던 기억, 그건 생각과 세상보기의 자유로움에 영감을 준 큰 기쁨이었다.

며칠 전 ‘기억의 나라’를 보노라니 억압의 아픔과 자유로움의 기쁨이 진하게 다가온다. 1959년부터 20여 년간 ‘지상의 낙원’을 내건 북송사업차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간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북한에 갔던 오빠 성호가 뇌종양으로 잠시 일본에 온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다큐멘터리를 만든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분단현실의 억압을 깊이 다룬다.

결국 3개월인 예정도 못 채우고 급히 돌아가는 오빠는 북에서 함께 온 감시자에게 모든 걸 보고해야 하는 일상적 억압을 토쿄에서도 받는다. 그런 오빠는 동생 리에와 거리를 걷다가 트렁크를 보고 가방집에 들어간다. 리에에게 바퀴달린 트렁크를 골라주며 그 옆에 서보라고 권한다. 그 트렁크를 끌고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보라고 권하는 오빠는 억압자체가 삶이란 것부터 도망갈 길 없는 이상한 애국자가 되버린 것이다. 사사건건 오빠를 감시하는 양 동지에게 질린 리에는 “당신도, 당신 나라도 싫어”라고 절규한다. 그런 리에의 절규 앞에서 양 동지는 답한다. “동생분이 싫어하는 그 나라에서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억압적으로) 사는 겁네다”라고.

억압과 자유가 가슴 저리게 엇갈리는 이 작품은 토쿄의 한 가족을 대상으로 하지만 분단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남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생 어느 시절보다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에서 사는 건 다행이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래서 가능한 예술의 자유가 고달픈 삶의 맛과 멋을 누리게 해줄 것이란 자유로움이 우리의 권리이자 삶의 본질이니까.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