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땐 장충단공원을 걸어봐요

아름다운 가을이 가고 있다. 늘 스쳐지나가던 장충단공원을 슬슬 산책해야 한다고 벼르던 생각을 마침내 결행했다. 남산공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내겐 여전히 장충단공원이다. 아마도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 마음 속에 새겨져 그럴지도 모른다.

“안개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트로트를 즐기지 않건만 배호의 노래는 유독 서정적인 비장미가 풍겨서인지 어디선가 나오면 귀기울여 듣는다. 지난 봄, 음악극 ‘천변캬바레’를 볼 때, 구성진 창법의 핸섬보이 배호의 노래들을 들으며 거기 등장하는 장충단공원 풍경이 떠올라 꼭 가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벼운 바람에도 낙엽을 흩뿌리는 낙엽송을 바라보며 새로 단장한 장충단공원을 걷는다.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열사 동상, 구한말 런던에서 순국한 이한응 기념비,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마침내 ‘장충단(奬忠壇)’이라고 한자로 새겨진 초혼단 앞에 선다. 어머니 명성황후를 을미사변으로 잃은 20대 황태자 순종이 친필로 남긴 이 세 글자, 그러니까 배호가 노래한 “뚜렷이 남은 이 글씨”란게 바로 이 흔적이란걸 이제야 깨닫는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 바로 그게 나같은 무지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절감한다.

이준열사 동상 앞에 서니 오래 전 파리 씨네마테크에서 보았던 북한영화 ‘돌아오지 않은 밀사(1984, 신상옥)’가 떠오른다. 고종이 대한제국이 독립국가임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에 파견한 세 명의 밀사를 그린 연극 ‘혈분만국회(血憤萬國會)’를 각색한 영화이다. 해외출장으로 헤이그에 간 청년이 이준 열사묘에 참배를 한 후, 그의 행적을 찾아나서는 회고담 형식이다.

한 나라를 지울 정도로 역사의 안개가 짙게 낀 시절, 나라의 존립과 독립을 위해 순국한 얼들이 깃든 곳, 그곳이 바로 학교와 이웃한 장충단이라는 걸 이제야 낙엽을 밟으며 절감한다. 왜 장충단이란 역사적 이름을 그저 비석 속에만 남긴채, 세금으로 재조성한 이 공원을 남산공원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일까? 질곡의 역사가 너무 아파서? 그래도 사람들은 전설적인 가수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란 노래가 살아있는 한 이 곳을 장충단공원으로 기억할 것이다.

팁: 이준열사 동상과 이한응 기념비를 설명하는 안내판은 위치가 기이하다. 동상과 비를 바라보면서 읽기에 매우 불편한 구석에 꽂아놓았다. 도대체 누구의 시점에서 이렇게 박아 놓았을까? 특히 이준열사 동상은 헤이그 이준열사 박물관에 보관된 사진과 너무 다른 인물로 보인다. 역사 문화유적을 제대로 복원하고 알리는 일도 돌아오지 않는 밀사일까? 관치문화행정 탓만 말고 등잔 밑이 어두웠던 내가 해야 할 일이란 각오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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