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불스님(국제선센터장)
우리의 삶을 올바로 영위함에 있어서는 양쪽의 수레바퀴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한쪽은 정신적인 축으로서의 종교생활과 다른 한쪽은 물질적인 축으로서의 사회생활이 짝을 이루어 나란히 굴러가야 한다. 이때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두 수레바퀴가 똑같은 크기라야 진리를 향해 곧게 나아갈 수 있다. 만일 한쪽이 작고 다른 한쪽이 크면, 수레는 원을 그리며 그 자리를 맴돌게 된다. 종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사회윤리와는 다른, 보다 높은 차원의 종교윤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사회윤리를 넘어서는 종교윤리의 가치에 눈떠야 한다. 우리는 종교를 믿거나 안 믿거나에 관계없이 종교윤리에 대한 올바른 가치를 인식해야 성숙한 인간이 된다.

인류가 과거에 눈뜨지 못했던 한 차원 다른 가치를 알게 됐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아야 될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종교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보편적으로 지켜왔던 사회윤리 개념을 가지고 종교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종교윤리와 사회윤리가 서로 차원을 달리한다는 것을 모르고, 일반상식적인 가치관으로 인류가 새롭게 눈 뜬 종교적 가치관을 이해하려다 보니 올바른 판단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선(善)은 진리이고, 악(惡)은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깨끗한 것은 진리이고, 더러운 것은 진리가 아니다” 혹은 “정의는 진리이고, 불의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종교윤리에서는 “진리는 선과 악을 포용하지만, 선과 악에 물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선이 진리라면, 악도 진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진리고 악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논리적으로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진리는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진리는 나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도 진리요 악도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천당에는 진리가 있고 지옥에는 진리가 없다고 한다면 모순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종교윤리를 알면 세상의 어떤 일도 수용할 수 있기에 마음이 넓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정신적 가치를 바로 알고 눈을 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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