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의 중추 세력형성

동국의 근간적 전통의 주류
1백여 시인 배출한 ‘동국시집’

  ‘東國(동국)’의 詩(시)전통은 그대로 한국의 현대 詩史(시사)로 바꾸어 볼 수 있다. 불교와 문학이 아울러 ‘東國(동국)’의 근간적인 전통의 주류라 말할 때, 그 뜻은 일단 ‘東國詩(동국시)’의 흐름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남을 엿볼 수가 있다. 한국의 詩史(시사)에 아직도 생명적이요 신앙적이요 또 강인한 창조적 경향이 얼마큼이라도 엿보인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동국시’의 전통의 흐름이 한국 시에 그만큼 작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東國(동국)’의 불교와 시를 최초로 구현한 이를 가리켜서 흔히 ‘님의 침묵’의 시인 韓龍雲(한용운)을 듦은 상식으로 되어있다.
  이 점에 관해서 평론가 趙演鉉(조연현)은 <동국시집>의 제3집 跋文(발문)에서 아래와 같이 단정하고 있다.
  ‘東大(동대)전통의 최초의 구현자로서 우리는 故(고) 韓龍雲(한용운)선생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선생이 불교와 詩道(시도)에 있어 다 같이 특출했다는 것보다도 선생의 작품이 하나의 佛經(불경)일 수도 있고 하나의 노래일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韓龍雲(한용운)선생의 이 전통은 선생의 후학인 徐廷柱(서정주)씨에 의하여 근대적으로 한층 더 심화 확대되고 趙芝薰(조지훈)씨에 이르러 우리의 고전에 대한 자각과 반성까지를 촉구하게 되어, 오늘에 와서는 동대의 전통은 한국 문학의 정통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정신의 하나가 되었다.’
  이 논지를 韓國詩史(한국시사)에 적용시켜 동국의 시인과 동시대의 시인들을 아울러 놓고 보면 그 뜻은 한층 더 뚜렷해진다.
  한용운이 新詩(신시)의 초기에 있어 김소월, 이상화, 金岸曙(김안서), 오상순, 변영로, 박종화, 양주동, 주요한 등과 함께 주로 <廢墟(폐허)>를 중심으로, 개념적이면서도 또 상징적인 목소리로 우리 시의 근대적인 기반을 닦았다고 하면 辛夕汀(신석정)씨는 시문학을 중심으로 하여 金永郞(김영랑), 정지용, 朴龍喆(박용철), 異河潤(이하윤)과 함께 우리 시의 감각적 기교와 개성적인 밀도를 가지고 우리말 자체의 문학성을 드높였고 김달진이 유치환 등과 같은 시대에 象徵的(상징적)인 언어의 ‘리리씨즘’을 대표한다고 하면, 서정주는 <시인부락>을 중심하여, 咸亨洙(함형수), 吳章煥(오장환), 김동리, 金光均(김광균) 등과 함께 인간의 진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에의 변신을 온전히 대표했다고 볼 수 있으며 다시 조지훈에 이르러서는 <문장>을 발판으로 하여 朴木月(박목월), 朴斗鎭(박두진) 등과 함께 이른바 청록파를 형성하고 다시 그 독특한 지사풍의 몸가짐으로 이즈음까지 시 주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韓龍雲(한용운)-辛夕汀(신석정)-金達鎭(김달진)-徐廷柱(서정주)-趙芝薰(조지훈)으로 이어지는 東國詩(동국시)의 뚜렷한 계보는 그대로 한국시의 중추적인 체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시집은 놓고 보더라도 詩史(시사)의 획기적인 초점은 또 그대로 들어난다.
  <님의沈黙(침묵)>-<촛불>-<靑柿(청시)>-<花蛇集(화사집)>-<청록집>.
  同人詩(동인시)를 놓고 보면<폐허>-<백조>-<시문학>-<詩苑(시원)>-<시인부락>-<白紙(백지)>-<청록집> 이렇게 추려놓고 보면 ‘東國詩(동국시)’=‘韓國詩(한국시)’의 圖式(도식)운 뚜렷한 것이 된다.
  이 전통, 이 흐름의 경향, 특징을 또 조연현은 동국 시집의 제7집 跋文(발문)에서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기계적이기보다는 생명적이요, 서구적이기보다는 동양적이고, 이지적이기보다는 신앙적, 기교적이기보다는 사상적, 시류적, 모방적이기보다는 창조적 경향’이라고.
  그러나 이 전통적인 경향은 해방 이후로 내려오면서 전혀 변모를 가져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선 앞에 든 시인들 자신이 해방 후 과감한 변신의 자유를 보여주었듯이 해방 후 동국의 시인들은 혼란한 시대의 사조와 함께 그만큼 다양성을 띄게 된다.
  한번 일어난 물줄기가 온 沿岸(연안)을 목 축여주고 길게 오래 흘렀던 그 前世紀(전세기)의 문예사조와 달리 현대의 그것이 지극히 그 영향하는 바 ‘스페이스’가 축소되고 그 수명이 또한 짧으며 또 사조끼리가 다분히 상대적이듯이 流派(유파)라 이름할 만한 줄기가 형성되지 못하는 戰後(전후)의 세계문학의 양상이 그대로 여기에도 반영되었던 것이다.

  해방 후의 동국시인의 계열을 그런대로 굳이 분류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적인 ‘리리씨즘’-이런 말을 붙여본다면 그것은 일단 朴(박)항植(식), 崔寅熙(최인희), 李炯基(이형기), 宋晳來(송석래), 黃命(황명), 李昌大(이창대), 宋赫(송혁) 등이 포함될 것이고 ‘모더니티’를 바탕으로 발언의 詩(시)의 문을 열었다고 하면 高遠(고원), 李哲範(이철범), 申基宣(신기선) 등이 될 것이며 鑛物的(광물적)인 목소리로 現代(현대)의 深層(심층)을 더듬는다면 金尙憶(김상억), 具慶書(구경서), 金先現(김선현), 李星煥(이성환), 姜泰烈(강태열) 등을 들 수 있지 않을까?
  詩史(시사)의 정리를 달리 미룬다면 동국시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국내의 다른 대학에서 그 類例(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동국시집에 대한 것으로 돌아간다.
  <동국시집>의 제1집이 1949년 5월, ‘동국’이 종합대학으로서 그 면목을 갖춘 때, 그 기라성 같은 재학 중의 학생시인들의 손으로 그 첫 권이 나오고서부터 6ㆍ25사변으로 일단 끊어졌다가 환도 후 53년, 4년 만에 그 2집을 내면서 8집까지 7년간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전통의 무게를 쌓아올리더니 8집에서 3년을 쉬고, 9집이 다시 62년에 나오더니, 그 후 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사이 거의 每輯(매집)마다 있는 10여 명씩의 동문시인 외에 <東國詩集(동국시집)>이 배출한 학생시인만도 연 1백81명을 헤아리고 총 4백22편의 작품을 실어 내었으며 이 시집을 발판으로 등장한 시인이 1백6명이 된다.
  시인의 양이 반드시 시의 질에 비례하는 바 아니라 할지라도 동국의 전통적 요소에서 문학-그중에도 특히 시를 빼놓을 수 없고 또 동국문학 내지 동국의 시가 그대로 한국문학 내지 한국시의 중요한 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東國詩集(동국시집)>의 전통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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