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현실비판이 특징

용운, 불교의 무분별한 현실참여 경계
승려 협회는 자성의 선언서도 발표

  近代(근대) 한국 불교학계의 특징을 우리는 이렇게 大別(대별)해 볼 수가 있다. 곧 위축되었던 불교의 재흥과 그것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또 순수한 學的(학적)인 결실로 나타난 아카데믹한 論(논)ㆍ著述(저술)이라고 하겠다.
  前者(전자)에 관한 것으로 우리는 朝鮮佛敎(조선불교) 維新論(유신론)을 가장 대표적인 論述(논술)로 들 수가 있다. 여기서 그는 당시의 불교계가 당면하고 있던 諸(제)문제들을 과격한 논지로 파헤치고 있다. 예컨대 한국 불교가 定立(정립)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실을 은폐시킬 것이 아니라 그것을 노출시켜 현실과 대면케 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維新(유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파괴의 자식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그것은 維新(유신)의 어머니이다. 천하에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는 것과 같이 파괴 없는 維新(유신)이란 또한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이러한 주장이 과격하다는 면보다는 극복되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그의 논지는 한국불교계로서는 폭탄적인 선언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는 파괴라는 대강령 아래 한국불교가 改善(개선)해야 하는 점들을 광범위하게 言及(언급)하고 있었으니 僧侶(승려)의 교육 參禪(참선), 念佛堂(염불당), 布敎(포교), 砂原(사원)의 위치, 불교의 塑畵(소화)숭배, 儀式(의식), 승려의 地位(지위)문제, 승려의 嫁娶(가취)문제, 寺院住持職(사원주지직)문제, 승려단체, 寺院統轄(사원통할)에 관한 것들이 그것이다.
  승려 교육문제에 관해서 그는 보통학 사범학과 외국유학을 단계적으로 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반적으로 승려학자들이란 그 학력의 우열을 고려치 않고 모두 佛敎(불교)전문에 종사케 하여 보통학인 기초적 교양을 仇讐(구수)와도 같이 여기게 하였으니 그 폐단은 尤甚(우심)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參禪(참선)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현실과 배리된 이상론을 논박하고 있다. 參禪(참선)이란 마음을 밝히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오늘날 參禪(참선)한다는 사람들은 그 본래의 의의를 잊고 마음을 寂寂(적적)히 해야 할 것을 그 장소가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한 옛날 禪客(선객)들은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데 지금의 參禪人 (참선인)은 그 몸을 움직이지 않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용한 장소에 있으면서 세상을 厭惡(염오)하고 독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불교를 배우는 사람들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참선이 본래의 목적과 의의를 상실한 지금 차라리 禪室(선실)을 통합하여 禪參(선참)을 원하는 사람은 僧俗(승속)을 불문하고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들을 일정한 시험을 거쳐 수련케 하고 그 결과를 청강 토론케 하여 수행정도를 알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포교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전통적인 어느 한 방법만을 취할 것이 아니라 연설, 신문, 잡지 번역이나 혹은 자선사업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불교를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와 같은 주장은 지금의 시점에서 불 때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침체된 불교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일대 선언이 아닐 수가 없다. 불교유신론이 발표된 후 불교 재건을 위한 提言(제언)은 계속하여 발표되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로 許永鎬(허영호)교수의 ‘朝鮮佛敎(조선불교)에 對(대)한 雜感(잡감)’을 들 수가 있다. 그의 한국불교에 대한 管見(관견) 역시 한용운스님의 것과 동일한 노선을 걷는 것이었다.
  그는 ‘絶滅(절멸)의 深淵(심연)으로 구르던 朝鮮佛敎(조선불교)의 惰性(타성)은 불필요한 殘存勢力(잔존세력)에 걸리어 아직도 고민의 상태를 계속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제하고 한국 불교가 가져야 하는 방향이란 무엇이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당시 불교계에 유행하던 신불교운동이 ‘山間(산간)에서 사회로’라는 구호 아래 민중불교와 대중 불교를 표방하던 것에 대해 반성적인 태도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곧 한국불교가 민중화되고 대중화된다는 원칙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으나 그것이 內實(내실)을 갖지 못할 때 한국불교의 방향이란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극히 비판적인 發言(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在來(재래)불교가 세속적 생활을 영위한다는 사실만으로 불교가 민중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민중불교란 일반사회ㆍ일반 민중으로부터 요청되고 또 요청되어질 불교라야 비로소 그 內實(내실)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가 제시하는 한국불교의 방향이란 무분별한 현실참여론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곧 僧院(승원)이 도시 속에 세워진다고 사회 佛敎(불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용운을 효시로 한 불교개혁안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일 수가 있으며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불교계의 동향을 대변하는 論旨(논지)였다. 불교계 내부의 이와 같은 사정과 병행하여 우리는 3ㆍ1운동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현실에 대한 발언을 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불교가 현실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종교의 이상은 결코 세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誘導(유도)될 때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종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안정된 사회라고 할지라도 종교적 이상에서 볼 때 한 사회가 완전한 경우는 없다. 불교가 끊임없이 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러한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다. 3ㆍ1운동을 전후한 한국의 현실은 종교계만이 비판하여야 할 현실은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불교는 이 현실을 비판하는 특징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 때 대한승려협회의 이름으로 발표된 선언서의 내용에서 불교의 현실 비판에 대한 최적한 경우를 본다.
  ‘평등과 자비는 佛法(불법)의 完旨(완지)로서 이에 위반하는 者(자)는 佛法(불법)의 적이다. 그런데 日本(일본)은 표면으로는 佛法(불법)을 숭상한다고 하나 전세기의 유물인 침략주의 군국주의에 탐닉하여 빈번히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인류의 평화를 교란하며 그 강포에 侍(시)하여 교화ㆍ은혜를 받은 隣國(인국)을 침략 멸망케 하고 그 자유를 奪(탈)하고…’
  일본의 행위에 대해 이토록 신랄한 비판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당시의 여건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 비판의 기준이 무슨 세속적인 근거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바로 불교가 표방하는 慈悲(자비)ㆍ平等(평등)의 사상에 위배된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며 그것에 상치될 때 어떠한 것이건 불교로서는 거부하고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의 우리 불교가 호국정신에 입각해 있었다는 사실이 왕권과의 野合(야합)이라는 단점을 많이 내포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 시기의 불교계를 대변하는 이 선언서는 새로운 자세를 취하는 우리 불교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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