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의 ‘돈의 맛’과 홍상수의 ‘다른 나라에서’가 칸느로 갔다. 수상 소식은 없었지만 두 감독의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영화 명예의 전당에 뽑혀간 것은 한국영화 국제화에 큰 성과이다.
두 감독들의 영화 스타일과 주제의식은 독특하다. 그래서 국제무대에 인정받을 정도로 영화의 맛과 기능을 더해준다.

상업적으로 극장에 걸리는 극영화들에 비해 자유롭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사한다. 그렇지만 한국 극장가에선 커다란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아마도 장르영화 추세에 걸맞지 않는 독특함이 한국관객을 사로잡기엔 거리가 있는가 보다.

‘돈의 맛’은 한국사회 초대형 부자 가족 초상화로 새겨볼만하다. 냉소적인 쿨함을 보여주는 임상수감독 스타일은 ‘그때 그 사람들’에 이어 ‘돈의 맛’에서 한국형 재벌가족의 초법적 돈의 힘과 모욕감을 다룬다. 재벌 백회장과 안주인, 두 자녀를 지켜보며 시중을 드는 비서 영작의 입장에서 ‘돈의 맛’에 중독된 한국인의 일상과 뒷모습이 펼쳐진다.

오만원권 다발로 가득 찬 돈의 방, 돈 다발로 가득찬 철가방 두 개는 검찰에게 배달된다. 떡검사 파문이 떠오른다. 돈다발을 전달하는 영작에게 백회장은 몇 다발 꼬불쳐도 된다고, 알려준다. 실무를 관리하는 안주인 금옥은 살인방조도 마다 않으며 돈의 권력을 지켜낸다.
하녀 에바와 정분이 난 남편에게 분노해 영작을 강간하듯 범하며 욕망을 채우기도 한다. 돈에 취해 나쁜 남자 노릇을 하며 아내 금옥의 지배를 견뎌내던 백회장은 마지막으로 좋은 남자가 돼보려고 에바와 함께 화려한 돈의 집을 탈출한다.

“애정없는 아내와 왜 그렇게 위선적으로 살아왔느냐”는 영작의 질문에 그는 “돈중독 때문”이라고 답한다.
금옥의 아버지, 노회장을 일대일로 돌보는 강고해 보이는 하녀는 월급 때문에 그런 일을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영작에게 당신도 월급받는 ‘하남’일 뿐이라고 동일시한다. 돈의 맛에 중독돼 온갖 비리와 살인도 불사하는 재벌가족 행태에 영작은 모욕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에선 돈의 맛에 길들여진다. 그의 방 커다란 액자 뒤, 그동안 돈배달을 하며 꼬불쳐 놓은 돈다발이 쌓여 있는게 그 증거이다. 무서운 일이다. 나쁜 일인줄 알면서 거기에 길들여지는 것, 말이다.

파멸로 끝나지 않은 재벌가족, 그들이 누리는 돈의 권력은 돈의 맛에 중독된 이들, 그들이 사회 시스템을 수호하기에 탈법적 부익부 시스템이 유지된다. 투명성을 상실한 비극적 사회상이 투영된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수억, 아니 수십억대 장쯔이와 권력남들에 대한 스캔들이 핫뉴스로 뜬다. 물론 사실이 아닌 루머에 불과할 수도 있다. 장쯔이의 항의처럼.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사실여부를 떠나 중국 스타 장쯔이와 중국 권력남의 관계를 묘사할 때 돈의 막대한 크기가 뉴스 타이틀로 동원되는 건 비극이다.
돈과 권력이 함께하고, 돈의 맛에 취한 이들이 줄줄이 얽혀드는 돈-권력 시스템은 분명 불법적이고 부정의하다.

거기에 성적 욕망이 개입하는건 인간의 속성일까? 본능일까? 아닐 것이다. 돈의 맛을 행복감이나 성취감으로 해석하는 가치관과 윤리관은 반생명적이다. 우리는 이익 창출론자, 돈벌이꾼, 돈의 맛 도취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들, 공기와 하늘, 바람과 비, 인간관계의 신뢰와 사랑, 즐거움과 보람…. 온갖 것들을 돈의 크기로 환산하지 않는 무료와 무상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영화영상학과 교수 · 본사 논설위원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