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신문 기자들이 떠나는 궁으로의 힐링캠프

▲ 올해로 준공 600주년을 맞이한 경복궁 경회루
벌써, 아니 이미 봄이다. 시험도 끝! 나가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환상적인 날씨까지. 출타하라는 하늘의 계시다. 하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할 지 고민이 찾아온다. 여의도 벚꽃축제는 이미 벚꽃을 찾아볼 수 없고, 허구한 날 오르는 남산은 이쪽에서 거절한다. 서울 시내는 봄을 맞아 온통 커플로 북적북적. 그렇다면, 나른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궁은 어떨까? 봄나들이를 몸부림치며 갈망하는 동국인, 지금 떠나라!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지고,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시던 날, 경복궁으로 향했다. 경복궁 이곳저곳을 일일이 다 살펴보려면 한나절이 걸릴 정도라니, 그 크기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경복궁에서 우리를 처음 맞이하는 곳이 바로 근정전이다.

근정전은 과거 왕이 신하들의 조회의식을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으로, 경복궁의 얼굴답게 그 웅장함과 거대함이 느껴진다. 근정전의 마당, 즉 조정에 깔려 있는 화강암은 햇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다듬었다고 하니. 과거 조선시대부터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 멋과 실용성을 겸비한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 후원
궁궐 여인들의 소소한 공간
책이나 드라마에서 왕비의 삶은 늘 궁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경복궁 의 왕비의 공간인 교태전 후방에는 예쁜 꽃들이 가득한 ‘아미산 후원’이 있다. 이 후원은 난방 후 연기가 지나는 4개의 굴뚝을 정원과 함께 꾸며 교태전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도 굴뚝과 디자인을 접목시킨 환경디자인이라니, 그 기발함에 놀라울 뿐이다. 후원 덕분에 중전마마는 잠시나마 마음의 휴식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흥선대원군은 신정왕후의 거처인 대비전을 궐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세심하게 만들어 고종의 즉위를 도와준 은혜에 보답했다고 한다. 특히 자경전에는 온돌방을 많이 마련했는데, 각방들과 연결된 10개의 연기 길을 모아 북쪽 담장에 하나의 큰 굴뚝을 만들었다. 그리고 굴뚝 벽면 중앙에 십장생들을 묘사하여 악귀를 막고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해·산·물·돌·소나무·달 또는 구름·불로초·거북·학·사슴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여 어린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단, 모두 찾기 쉽지 않다는 것! 

▲ 왕세자 훤과 연우낭자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경복궁 향원정
궁의 깊이를 더하는 경회루와 향원정
다음으로 찾아간 경회루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올해로 준공 600주년을 맞은 경회루의 우아함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하다.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연못 한 가운데에 있는 웅장한 누각은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된다. 경회루에서 연회와 향락을 즐기는 왕과 신하들의 모습이 단번에 그려진다. 이 근처는 푸른 나무들과 널찍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보는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때 묻은 도시에서의 답답함을 씻어내 버리기에 안성맞춤.

경회루에서 잊어버린 전생을 회상하려는 그대. 혹시 비단 잉어가 아니었는지. 실제로 경회루의 커다란 못 안에는 남자 어른 팔뚝 크기만 한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다.
경복궁을 거닐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향원정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여 낯설지 않다면 빙고. 향원정은 TV드라마의 단골 촬영장소로, 사랑의 향기가 풍기는 곳이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어린 세자 이훤과 연우낭자가 방방례 때 다리를 건넜던 곳이자, ‘뿌리깊은 나무’에서 왕세자 이도가 세종대왕으로 전환하는 장면을 찍었던 곳이라고. 두 드라마 모두 엄청난 화제를 불러왔으니, 향원정에서 사극 드라마 촬영을 하면 대박 드라마가 된다는 징크스도 세워볼만하다. 드라마 촬영을 했던 삭막한 겨울보다, 지금 같은 봄에 아름다운 풍경이 최고조에 이른다.

▲ 어린 덕혜옹주의 유치원으로 사용되었다는 덕수궁 준명당
동서양의 고풍스러운 조화, 덕수궁
크고 웅장한 경복궁과 달리 작고 아담한 궁을 원한다면 덕수궁을 추천한다. 시청을 지나가다가 웬 도포차림의 행렬이 늘어선 것을 봤다면, 그것은 바로 덕수궁 대한문의 수문장 교대식이다. 화려한 도포자락과 웅장한 북소리, 늠름하고 절도 있는 몸짓에 외국인들의 관심을 받는 건 당연지사.
대한문을 통과하면 입구부터 시원한 산책로가 펼쳐진다. 양쪽에 푸르른 나무들이 반겨주는 길을 따라가면 중화전, 석조전, 덕수궁 미술관, 그리고 분수대를 볼 수 있다. 석조전을 향한 벤치에 앉아서 햇빛에 반짝이는 분수대를 바라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나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서울의 고궁들 중에 덕수궁은 유난히 서구적인 느낌이 강하다. 정광헌의 경우 러시아 건축가를 불러 지은 것으로 서양 건축에 전통 양식을 섞어 지었다. 석조전 또한 서양식 석조 건물로, 고종황제가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했다. 왼편에 있는 석조전 서관은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려한 서양식의 외면에 반해 덕수궁은 안타까운 사연을 갖고 있다. 당시 고종은 서구 열강의 간섭에서 대한제국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그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러한 고종을 위해 고종의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공호를 올렸는데, 그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다.
덕수궁,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덕수궁 돌담길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길 중에 하나로, 노래 가사에 등장하기도 했다. 덕수궁 정문에서 시작하여 돌담길을 쭉 따라 걸으면, 서울시립미술관의 분수대가 나타난다. 봄에는 화사하게 벚꽃이 피는 덕수궁은 은행잎이 가득한 가을에 그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룬다.

오래전부터 연인이 함께 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도 있다고. 주변에 얄미운 커플이 있다면 데이트 코스로 덕수궁 돌담길을 추천해주시길. 실제로 연인들이 함께 걷기에 덕수궁 돌담길만큼 적격인 곳이 없다.
답답함과 스트레스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당신을 치유해줄 수 있는 처방은 휴식이다. 시내에서 가까운 궁 투어를 통해 옛것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어떨까. 늘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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