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宇宙(우주)향한 假設(가설)

  ○…동국문학(東國文學)(3집)에 실린 ‘님에 관한 연구’를 발단으로 시작된 萬海(만해) 詩(시)에 있어서의 <님에 관한 論爭(논쟁)>이 本面(본면)에 2회에 걸쳐 실렸었다. 崔淳烈(최순열)군(國(국)3)이 처음 反論(반론)(12일字(자)ㆍ‘님은 目的(목적)이다’)을 제기, 沈鍾善(심종선)(國(국)4)군은 그에 대한 答(답)(19일字(자)ㆍ‘님은 영원한 複合體(복합체)’)을 했다. 이에 다시<崔(최)ㆍ沈(심)>양군의 글을 함께 실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일단락을 짓는다. <편집자>

  또다시 나는 코페르니쿠스的(적) 용기로 정확히 말하고자한다. ‘님’은, 만해(萬海)의 ‘님’은 결코 <조국~해탈>이 아니며 더더구나 “궁극적 의미로 安樂國(안락국)의 阿彌陀(아미타)”도 아니다. ‘님은 目的(목적)이다’라는 題下(제하)의 필자의 전번 反論(반론)에 沈(심)형은 고작 反論(반론)에는 으레 答(답)쯤 해야지 하는 체면의식으로 “문학개론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그리하여 “無知(무지)에 가까운” 등 가히 反駁的(반박적)인 어휘와 문체의 입내를 내었다. 필자의 첫 의도한바 해답을 외면한 탓― 마침내 아득한 塗粉(도분)의 모순된 불투명한 논증으로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당착에 내닫고 말았다.
  우선 “문학전반적” “詩論的(시론적)”이니 “문학개론적”이니 하는 오해는 필자의 글을 막무가내 훑어가면서 자신의 知的追求(지적추구)가 감당해 내지 못한데서 기인한 소위 ‘F學點(학점)의 비평’이 범한 우스꽝스러움이다.
  이제 여기서 필자는 논란의 첫 실마리인 ‘님에 관한 硏究(연구)’에서 보여준 沈(심)형의 오류와 필자가 정의내린 ‘님’의 윤곽을 좀 더 풀이해 보여주고자 하며 아울러 필자의 反論(반론)에 대한 반박문 ‘님은 영원한 복합체(復合體)’에서 또다시 엿보인 모순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평론적 안목의 부정확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님’은 假設(가설)이다
  어디한번 萬海(만해)의 ‘님’을 변증법적으로 究明(구명)해 보자.
  한 이름이여, 그래서 宇宙(우주)는 이룩되어 간다. <Ganzo>―여기서 ‘이름’(Un nom)은 바로 ‘님’이다. 宇宙(우주)에 상관을 맺은 ‘이름’이란 Sollen을 말함이며, 이는 目的(목적)이자, 한발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假設(가설)이다. 시인이 제시하는 이 절대의 假設(가설) 자기 生命力(생명력)과 意志(의지)의 응집體(체)―를 소위 評者(평자)들은 굳이 시인의 私生活(사생활)이니 思想(사상)이니 족보까지 들먹거리며, 萬海(만해)가 佛敎(불교)와 인연을 가진 인물임을, 또 민족운동에 관계한 인물임을 기화로 터무니없이 ‘해탈’이니 ‘淨土思想(정토사상)’이니 ‘阿彌陀(아미타)’니 하는 불교용어만 그럴싸 내휘두르고 있다.
  이제 말할까한다. 앞서 많은 사람들이 萬海(만해)의 ‘님’을 집적거려 ‘조국~해탈’을 말하고 있지만 그건 평론이 詩(시)를 말살하고 시인을 괴롭히는, 숫제 ‘저 개를 몰아내라 저 놈은 비평가 이니까’하는 괴테의 울화통이 생각나게 할 뿐. 沈(심)형이 ‘님에 관한 硏究(연구)’에서 들먹거린 印(인)ㆍ朴(박)의 ‘韓龍雲(한용운)연구’라든지 4人(인)은 물론 기타 그 밖의 諸說(제설)을 필자는 적극 否認(부인)하고자 한다. 그런데 沈(심)형은 上記(상기) 4人(인)의 論(논)을 엉거주춤 부정하면서도 末尾(말미)에 가서 가히 자기도 그런 방향에서 얼버무려두고 말더니 필자가 反論(반론)을 내세우자 “그건 고작 개론” 운운으로 넘어 가다가 이 무슨 망녕인가 “님은 영원한 복합체(復合體)”라는 등 꼬리를 흔들어버렸다. 다시 말하자면 ‘님’은 萬海(만해)의 영원한 假設(가설)(←目的(목적)←自己否定(자기부정))일 따름이다. 逆(역)으로 설명한들―산 넘어 파랑새가 있다기에 남들과 어울려 갔다가 눈물 젖은 눈으로 돌아왔네. <칼붓세>―여기서 ‘파랑새’는 ‘님’으로 가치전도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칼붓세>의 ‘님’은 ‘파랑새’인가. 앞서 필자가 말한 ‘主語的(주어적)이미지’라는 어휘에 골몰해주기 바란다. 그리자 한다. ‘님은 영원한 複合體(복합체)’라는 반박문에서 沈(심)형은 “…동시에 ‘목적’인 것인지는 모르지만”하였다. 그렇다면 沈(심)형은 곤 <헤겔>의 ‘客觀的(객관적) 정신’과 <버크레이>의 ‘客觀的(객관적) 實在性(실재성)’을 대비하여 참고하라.

  理論不在(이론부재) 뿐…
  잠간, 이제 沈(심)형이 저지르고 있는 평문전체를 통해 일관하는 理論(이론)과 論理上(논리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론적인 論理(논리)로써의 ‘님’과 소위 “脫衣(탈의)해 본 ‘님’”은 무엇인가. 물론 비평의 방법론에 따라서 다 같은 대상을 여러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필자가 택한 構造的(구조적) 분석의 방법론이 생소하다해서, 마냥 “개론적일뿐”이라는 자기협소의 옹색한 한 고집을 주장한다면, 애당초 沈(심)형은 ‘님’에 관한 ‘硏究(연구)’는커녕 ‘硏究(연구)’라는 어휘에 관한 일진적 고심을 함이 어떤가 권하고 싶다.
  한 가지를 보자. 萬海(만해)가 “민족운동과 문학에 남달리 눈을 부릅떴기 때문에” “禪(선)은 그리 못한 사람”이라 손치드라 그리하여 萬海(만해)의 ‘님’이 ‘자기自身(자신)’이 아니다라는 논리야말로 위험 천만 한 至上(지상)의 ‘분위기 批評(비평)’이며 안일한 稚氣(치기)의 횡포가 아닐까.
  뿐만 아니라 ‘님에 관한 硏究(연구)’에서 내린 결론과 ‘님은 영원한 複合體(복합체)’라는 반박문에서 제시한 내용은 도저히 비약적인 상관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정도로 제한된 紙面(지면)에서 필자는 끝맺고자 한다. 가장 상식적인 것(그렇다. 그야말로 無識(무식)한 오류조차 지적할 순 없으니까)은 접어두기로 한다. 沈(심)형과 더불어 왈가왈부하는 건 참 고단한 일중에 하나이게끔 沈(심)형은 일단 체계도 갖추지 못한 상태인 것 같다.
  끝으로 沈(심)형에게 앞서 인용한 Ganzo의 좋은 詩句(시구)를 한번 들려나 주겠다.
  ―말하라 그러면 空虛(공허)한 날과 混沌(혼돈)밖에서 空氣(공기)는 혼자 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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