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계획 바르게 實踐(실천)

  다음 글은 金東益(김동익)총장이 지난 2월19일부터 月精寺(월정사)에서 열렸던 ‘리더십ㆍ워크숍’에서 강연한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훌륭한 指導者像(지도자상)은 어떠한 條件(조건)과 자격을 갖추어야 할까.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지만, 옛 哲賢(철현)들의 말씀을 종합하고 나의 所信(소신)을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指導者(지도자)의 資質(자질)은 ‘훌륭한 人格(인격)의 소유자’라고 요약할 수 있다. 自己修練(자기수련)을 통하여 남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人格者(인격자)여야 한다. 흔히 人格(인격)이 좋다든가 風采(풍채)가 훌륭하고 學識(학식)(문벌)이나 財産(재산)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指導者(지도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조건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절대 必要條件(필요조건)은 아니다. 男子(남자)라야만 지도자가 되고, 女子(여자)는 안 된다는 법도 없다. 다만 훌륭한 人格(인격)의 소유자로서 모든 사람에게 尊敬(존경)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人間(인간)의 됨됨은 일할 때 나타난다. 誠實(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자세야말로 바람직한 것이다. 成實(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創意的(창의적)으로 임한다. 치밀한 계획 아래 항시 연구하는 정열을 잃지 않는다. 精誠(정성)된 마음, 근면한 정신의 소유자는 責任感(책임감)을 저버리지 않는다.
  ‘至誠(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至誠(지성)이면 感佛(감불)’이라고 고쳐도 좋다고 믿는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은 ‘그리스도 아버지시여’하는 하늘이 아니다.
  大自然(대자연)의 하늘이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同一(동일)한 의미로 본 것이다. 부처님도 정성스럽게 일하는 자에게는 감동하여 도와주신다는 뜻이 될 것이다. ‘精神一到(정신일도), 何事不成(하사불성), 金石可透(금석가투)’라는 말이 있다. 정신을 집중하여 일하면 무슨 일이고 안 되는 일이 없다는 金石(금석)도 능히 뚫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금과 돌은 가장 견고한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것이다. 굳건한 정신력 아래서는 가장 단단한 금과 돌도 뚫리고야 만다. 열심히 何事不成(하사불성)하는 것이 지도자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言行(언행)이 一致(일치)해야 한다. 즉 말과 行實(행실)이 一致(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간혹 政治家(정치가)들은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는 公約(공약)을 해놓고는 그 公約(공약)이 이른바 空約(공약)이 되는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一時的(일시적)인 糊塗(호도)는 될지언정, 긴 眼目(안목)으로 훌륭한 지도자는 될 수 없다. 言行一致(언행일치)가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言行一致(언행일치)는 책임감과도 관련된다. 특히 교육도장에서 師表(사표)가 될 만한 사람이면 더욱 필요하다. 정치ㆍ경제ㆍ교육ㆍ문화 등 어느 분야에 있어서나 言行一致(언행일치)의 기풍은 강조되지만, 특히 학교는 指導者(지도자)를 양성하는 道場(도장)인 까닭이다.
  우리는 솔선수범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솔선해서 모범을 보인다는 것은 美德(미덕)이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自己(자기)가 하기 어려운 것인데도 솔선수범하라고 命令調(명령조)로 군림하는 일이 있다. 自己(자기) 스스로는 솔선수범의 論理(논리)와는 거리가 먼 딴 짓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감언이설에 유혹당하여 일시적으로는 따를지 모르지만 永續性(영속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옳게 계획된 일을 먼저 實踐(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지도자의 자세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지도자는 信念(신념)과 勇氣(용기)를 가져야 한다. 모든 일은 착수되기 전에 치밀하게 구상되고 검토되어야 한다. 일단 ‘옳은 것’이라는 自己(자기)의 信念(신념)이 굳어지면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당하지 않은 이야기에 기울어져도 안 되며, 그럴 듯한 이야기를 듣고 계획을 변경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信念(신념)이 문제인 까닭이다. 우리들은 어떤 일을 계획하기 전에 치밀한 연구와 신중한 검토를 하고 남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줄도 알아야 하며 보다 나은 견해는 수용할 여유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단 결의된 것, 혹은 결심한 바는 용기 있게 신념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 일을 하다가 在顧右視(재고우시)시해서는 안 된다. 바른 일, 좋은 일은 결심한 바대로 굽힘없이 매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일을 추진하는 데는 거기에 합당한 정당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勇氣(용기)와 蠻勇(만용)은 엄격히 구별되는 까닭이다. 만용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쓸데없는 固執(고집)이나 동물적인 용맹은 배제돼야 한다. 용기 있게 일한다고 해서 非理(비리)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이론이 맞지 않는 것을 큰 목소리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바로 만용이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훌륭한 지도자는 正直(정직)하고 청렴결백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지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청렴결백이 요구된다. 正直(정직)하게 살며 正道(정도)로 나가야 한다. 正道(정도)와 覇道(패도)와는 다르다. 正道(정도)는 王道(왕도)라고도 한다. 정정당당한 道理(도리)에 따라서 일을 처리해 가는 것이다. 敵(적)을 정복할 때에도 正道(정도)로 대처하면 굴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覇道(패도)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강권을 발휘해서 다스리거나 복종시키는 일이다. 정치적으로는 그런 覇道(패도)가 있지만, 결코 길게 가지 못한다. 覇道(패도) 앞에서는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壓力(압력)에 못 이겨서 복종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 후에는 탈이 나고야 만다. 때문에 일은 正道(정도)로 해야 한다. 바른 길로 정직하게 남을 돕고, 지도해야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權謀術數(권모술수)야 말로 배제되어야 한다. 권모는 正道(정도)가 아니며 術數(술수)로서 남을 중상모략 하여 넘어뜨리는 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권모술수로서 私利私慾(사리사욕)을 일시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墓穴(묘혈)을 파는 패망의 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영달을 위해서 못된 일을 하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正道(정도)로 달리는 것은 어떤 목표에 늦게 도달하고 다소 여의치 않을지 모르지만 모든 성공의 正道(정도)임에 틀림없다. 正道(정도)야 말로 나의 信念(신념)이며 모든 사람의 길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다음으로 지도자는 公私(공사)를 구별할 줄 알고, 信義(신의)를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 세상에는 私利私慾(사리사욕)에 치우쳐 公正性(공정성)을 잃는 일이 있다. 情實(정실)이나 派閥(파벌)로 人事行政(인사행정)을 그르치는 수가 있다. 특히 한국의 현실 속에는 그렇게 서글픈 예가 非一非再(비일비재)하다. 공명정대하게 公(공)과 私(사)의 限界(한계)를 구별할 줄 아는 지도자가 아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信義(신의)를 지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는 責任感(책임감)과도 상통한다. 東大(동대)의 교훈 가운데 信實(신실)을 내세운 것도 信義(신의)있는 성실한 지도자를 기르기 위함에서이다. 三國志(삼국지)에 나오는 ‘桃園(도원)결의’는 信義(신의)를 지켜 끝까지 일을 해낸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信義(신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지켜야할 正道(정도)이다. 윗사람에게는 물론, 部下(부하)에 대해서도 信義(신의)를 저버리고 背信(배신)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滅亡(멸망)을 自招(자초)하고야 마는 것이다.
  한 社會(사회)가 발전을 누리려면 團結(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단결은 口號(구호)나 命令(명령)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 社會(사회)의 구성원들이 慈愛(자애)로운 마음으로 돌아가 人和(인화)가 조성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자비에 있음을 알고 있다. 東大(동대) 교훈 가운데 ‘慈愛(자애)’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奉仕(봉사)정신을 발휘해서 남을 돕고, 남을 돕되 도왔다는 의식까지 갖지 않는 거룩한 마음이 布施(보시)이다.

  人和(인화)조성은 나의 좌우명인 ‘天時(천시)가 不如地利(불여지리)요 地利(지리)가 不如(불여) 人和(인화)’(맹자)라는 말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英雄(영웅)이 좋은 때와 좋은 여건 하에 가령 地利(지리)를 구축했다 하더라도, 자기 部隊(부대) 안에 내분이 있어 人和(인화)가 조성되지 못하면 그 전쟁은 지고 마는 것이다. 지도자는 人和(인화)조성이 얼마만큼 중요하고 모든 일의 성패가 여기에 一次的(일차적)으로 달려있음을 느껴야 한다.
  지도자가 慈愛心(자애심)을 베풀고 人和(인화)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고 해서 公私(공사)를 혼동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일을 잘못한 사람을 방관하는 것은 慈愛(자애)가 아니라 우유부단이며 人和(인화)를 해치는 것이 된다.
  信義(신의)와 正道(정도)에 입각해서 慈愛(자애)를 베푸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된 지도자는 요컨대 훌륭한 人格者(인격자)여야 한다. 協心(협심), 度世(도세), 慈愛(자애), 信實(신실)의 교훈을 명심하여 실천할 때 그것은 부처님의 정신을 따르는 길이며 참된 지도자의 길이 거기에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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