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왔는데 봄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요즘 나눈 대화의 단골말이다. 미인을 몰라본 황제 때문에 이국에서 일찍 숨진 왕소군을 기리는 당나라 시인 동방균의 싯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포근하게 따스해지지 않는 초봄 날씨를 설명하기에도 딱맞는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좀 춥다. 게다가 4ㆍ11폭풍이 거세게 부니 정치바람 결이 봄바람에 파고들어 아수라장 세상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변화를 위한 혼돈과 기대감으로 해석하면 나쁠 것도 없다. 자전하며 공존하는 지구이기에 계절이 있다. 그래서 봄은 오고 갔다가 한 해가 지나면 다시 오는 변화가 우주자연의 법칙이다. 
그런 계절의 변화 속에서 봄은 유난히 사람들에게 아련한 슬픔을 준다.

이를테면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1953, 대구 유니버설레코드)는 지금도 끊임없이 리메이크 되는 전설적인 애창곡이다. 국민가수 조용필, 독창적인 대중 소리꾼 장사익, 옛노래를 블루스풍으로 재해석한 한영애의 버전도 있다.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는 완전히 다른 노래지만 봄날의 애잔함을 풀어낸 점에선 유사한 점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란 명대사로 광고카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낳은 영화 ‘봄날은 간다’(2001, 허진호)도 있다.
시적인 흥취가 절절한 ‘봄날은 간다’는 가슴에 꽂히는 매력이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짐작컨대 봄꽃놀이를 같이 하던 님이 떠났나 보다. 2절은 더 깊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김윤아의 노래는 사람과 사랑에 대해 보다 관조적이다.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꽃잎은 지네 바람에/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며...그런 대목에서 가는 봄날에 대한 애수가 느껴진다.
꽃피는 봄. 그리하여 꽃처럼 피어나는 마음과 세상을 기대하고 기억하기에 봄날이 가는 것은 아쉽다. 봄이 와도 봄같지 않아 제대로 봄을 못누린채 떠나간 봄은 아쉽다. 그러나 지구가 태양계 속을 도는한 봄은 다시 온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들을 듣다가 꼭 한 부분을 고쳐 부른다. ‘봄날은 간다’를 ‘봄날은 온다’로. 그러면 마음에 활력이 솟아난다. 베르그송이 말하는 ‘생명의 약동’ ( élan vital)이 느껴진다. 거센 정치바람도 변화의 봄, 생명의 약동으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우주자연의 법칙이라는 점도 깨닫는 부수적 효과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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