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싫지 않아서 좋고 아무리 들어도 피로하지 않아서 좋다.
  특히 가을에는 그 말이 신비롭기 조차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말을 새겨보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가 언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기억에 오르는 건 K가 떠난 무렵 사방에서 가을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탄주하던 그 무렵이 아닌가 한다.
  K는 둘도 없는 나의 친구이다. 성격이 고지식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반면에 외고집인 그는 여학생들 앞에서는 말을 못하고 곧잘 얼굴이 벌겋게 되는 수줍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성격과 사람됨을 잘 파악하고 있는 나는 심심할 때면 자주 그를 골려주었으며 그에 대한 사랑의 가능성조차도 인정하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코스모스가 가는 허리를 잘 가누지 못하고 휘휘적거리고 나뭇잎이 차츰 떨어질 준비를 서두르는 바람 부는 9월 어느 날쯤인가 나를 데리고 고개 너머 중세기 서양풍으로 장식된 어느 찻집으로 들어선 그의 화안한 웃음은 이제까지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비웃듯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가 소녀를 사랑한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의 독립된 고독 속에 홀로 지새는 때가 사랑을 하고 있는 때가 아닌가 한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소녀를 사랑한 것이다.
  그는 행복해보였으며 고독해보였다. 그의 사랑은 가을빛 같았다. 가을빛은 한없이 곱고 황홀하지만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 서려 있는 것이다.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나뭇잎들이 붉게 타고 있었다. 저 화사한 옷을 차려입고 나뭇잎은 바람에 끌리어 낙엽으로 날리고 바스러질 것이라는 나의 성급한 불안은 공허한 저녁을 몰고 와서 나는 한없이 쓸쓸하기만 했다.
  그때 그가 나의 저녁 속으로 나무사이를 헤치고 왔다. 초췌한 얼굴로 온몸에 가을의 그 적막함을 거느리고 그는 느껴 울고 있었다. 나는 별반 놀라지도 않았다. 그의 소녀가 떠난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그는 괴로워했다. 그 때 나는 또한 보았다. 스잔한 바람이 그의 어깨에 걸리어 있음을. 그는 사랑 後(후)를 슬퍼하는 평범한 그래서 더욱 좋아지는 친구임을 알았다.
  다음날 아침은 온통 회색하늘이 가슴을 펴고 나무 꼭대기에 내려와 있었다. 괴로움으로 밥을 까맣게 살러 먹은 그는 일찌감치 귀향을 서두르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포도 위에 나뒹구는 바람, 구두 밑에서 나뭇잎이 바삭바삭 부스러졌다. 가을 길은 그렇게 멀리까지 뻗쳐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침묵 속으로 바람은 자꾸만 끼어들어 왔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말이 없었다. 갑자기 땅이 꺼지든지 날씬한 세단이 아니라도 우리를 치고 달아났으면 싶었다. 미치도록 ‘멜랑꼴리’했던 것이다.
  하늘은 더욱 침침한 ‘모노로그’를 외우고 있었다.
  K는 그렇게 떠났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진 것이다.
  또 다시 가을 입구에 섰다. 이제 곧 코스모스는 만발하고 나뭇잎 지는 소리를 ‘고스마’가아니더라도 누구나 들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한없이 곱고 화사하지만 더할 수 없는 고독이 서린 가을빛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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