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店(서점)찾는 게 唯一(유일)한 재미

  나의 愛藏書(애장서)가 어떤 것이 있느냐는 말에 대해서. 이렇다할만한 장서가 없어서 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장서는 극히 빈약하기 때문이다. 장서의 일반적인 개념이라면 稀貴本(희귀본)ㆍ珍奇本(진기본)이 있어야 하고 또 각 부문에 걸친 많은 서적이 있어야하는데 나는 이러한 규격에 맞는 서적이 없다. 그러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각 個人(개인)의 愛藏書(애장서)라 하면 반드시 일반이 좋아하는 珍奇書(진기서)나 각종 도서의 구비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孤陃(고병)하고 少數(소수)의 서적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專攻(전공)하는 서적 도는 그 성격과 기호에 따라 특수한 부문의 서적을 즐겨하고 사랑하여 애지중지하는 서적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愛藏書(애장서)가 아닐까?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본다면 나에게도 과거에는 약간의 愛藏書(애장서)가 있었고 또 現在(현재)에도 얼마간의 愛藏書(애장서)가 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과거에 있었다는 것은 6ㆍ25사변 이전의 이야기다. 즉 그전에 所有(소유)하였던 서적은 1ㆍ4후퇴 때에 서울 私宅(사택)에 그냥 고스란히 두고 갔다가 몇 해 後(후)에 돌아왔을 적에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還都(환도)하기 얼마 전에 와봤을 때에는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사만 놓고 한 페이지를 읽어보지도 재미를 보지도 못한 책들이 상당히 있었으나 어찌하랴. 하룻밤의 꿈이 되고 말았으니… 이 책들을 모을 때 일을 回想(회상)한다면 일본 동경大學(대학) 在學(재학)시절부터 母校在職(모교재직)시대까지 前後(전후) 13년간에 그야말로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입을 것도 입지 못해 가면서 절약 검소한 生活(생활)을 계속한 결과로 약간의 서책을 모을 수 있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한 달 學費(학비) 몇 十圓(십원)을 받으면 받는 그 즉시로 그달의 하숙비와 약간의 잡비를 제하고는 神田區(신전구) 書籍商街(서적상가)에 가서 필요한 서적들을 사 모으는 것이 동경生活(생활), 13년간 그날의 재미였고 유일한 樂(낙)이었다.
  이때에 모은 책들은 貧寒(빈한)한 書生(서생)으로서 모은 것이므로 나의 專攻(전공)이외의 것은 살래도 살수 없는 절박한 처지이었다.
  책을 사는데도 가난하였던 까닭에 여간 책의 선택에 腐心(부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째로는, 나의 佛敎哲學(불교철학)이 전공이었으니까 이에 관한 것을 사야했고, 그 다음 보조적인 참고서로서는 東西哲學(동서철학)에 관한 것, 셋째로는 역사에 관한 것 등의 순서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애써 모은 서적들이 一朝(일조)에 鳥有(조유)에 돌아가고 말다니, 하는 생각을 할 때 마음이 좋았을 리는 없었다.

  學者(학자)로서 서책이 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고적한 일이요 사실 살아갈 수 없는 悲哀(비애)다. 솔직한 이야기가 학자에 있어서는 먹는 것 다음 가는 중한 것은 서적이다. 還都(환도) 後(후)에 다시 한권 두 권 사 모으다가 보니, 또 몇 백책이 되어 옛날의 권수로는 아마도 몇 천권의 藏書(장서)를 갖추어서 장서가 축에는 들 수 없겠지만 나의 전공分野(분야)를 硏究(연구)하는 데는 큰 不便(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은 된 것 같다.
  藏書(장서)를 함으로 因(인)해서 생기는 몇 가지 사항에 대하여 말해보고자 한다.
  藏書(장서)를 書齋(서재)에 정비해놓고 있으면 조석으로 상대하는 것이 서적이라 이 말 없는 서적으로부터 항상 교훈을 받는다. 더욱이 동서의 賢聖哲人(현성철인)들은 우리들의 잘못과 게으름을 항상 질책하시고 無言(무언)의 警策(경책)을 하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자연 게을리 할 수 없고 잘못을 저지를 수 없다.
  그 다음 서적을 바라보면 자연 정숙해지고 따라서 자주 思索(사색)의 길을 찾게 되며 그 결과로는 自己自身(자기자신)을 반성할 기회가 많게 된다.
  또 한 가지는 한 가정에 다소간에 서적이 장비되어 있으면 가정의 분위기가 안정되고 이에 따라 子女(자녀)의 敎育上(교육상) 지대한 영향을 가졌으리라 생각된다.

  그 다음으로는 藏書家(장서가)들은 各自(각자)의 경제 사정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個人(개인)의 장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자연 專攻(전공) 別(별)의 藏書(장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장서란 우선 자기만족을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또 稀貴本(희귀본)같은 것이 보존되겠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남의 장서를 빌려가는 일은 삼가야한다. 卽席(즉석)에서 빌어보는 것은 별문제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미 作故(작고)하신 한 學者(학자)는 남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 理由(이유)에 曰(왈), “學者(학자)에 있어서 서책은 婦人(부인)과 같다. 내 婦人(부인)을 자네가 빌리자면 그런 失禮(실례)가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이것은 좀 지나친 예이지만, 자기의 愛藏書(애장서)는 아침에나 저녁 심지어는 자다가도 빼 볼 수 있는 것이므로 만약 남에게 빌려준다면 그 자유를 앗아가는 것인 고로 이것은 조심해야 될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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