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허영과, 약간의 고민과, 약간의 음악과, 약간의… 아직 열매 맺지 못한 싱그러움으로 모든 가능성을 갖고 무지개를 쫒듯, 아름다움을 꿈꾸듯 하나의 세계에서 나는 영원히 머무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것이 고정적인 강요라 할지라도 호기심과 두려움의 눈짓으로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의  건 자의건 고등학교 제복을 벗고 나니 서투르게 몸놀림해야 하는 전혀 새로운 세계-男女共學(남녀공학)이라는-였다. 여기에서 나는 새로운 고민을 배워야 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올린 성곽, 그러나 나는 새로운 모든 것들에게 자신을 타협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우선 노력해 보기로 했다. 아직 어리다는 利點(이점)을 약간 이용하는 어리광(?)까지 부리면서 나는 고민했고 며칠을 끙끙 앓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는 생각했던 것만큼 너그럽지도 못했고 관용의 큰 줄기를 갖고 있지도 못했다. 사회는, 그리고 그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너그러운 애정을 베풀기 보다는 약간의 강요로 나를 두렵게도 하였다. 그것은 차라리 그들이 무관심한 표정을 짓는 것보다 내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고 때로는 반발을 느끼게도 했다. 차츰 나는 大學(대학)에 대해 회의를 느꼈고 어떤 슬픔에 빠져서 제복을 입던 시절을 그리워하게끔 되었다.
  책가방을 들고 단정하게 머리를 땋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왠지 서글픈 감회 속으로 빠져 들곤 했다.
  그리고 내겐 전혀 그런 시절이 없었다는 느낌조차 들곤 했다.

  꿈만이 가득하여 생활하던 어린 시절 얼마나 理想(이상)이 높았던가! 채 영글지 못한 대화로서, 그러나 살찐 감정으로서 미래에 대한 희망에 가슴 부풀었었지. 고등학교 시절 나는 어서 졸업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면 양쪽으로 묶은 머리를 명쾌하게 자르고 약간의 화장을 하리라는 실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꿈도 꾸었던 것이다. 차마 부끄러워 신지 못했던 ‘하이힐’을 또닥대며 ‘페이브먼트’위를 걷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일일까.
  그래서 나는 대학 1년을 되도록 알뜰하게 보내기 위해 뛰어다녔다. 각종 강연회, 교양강좌, 미술전람회, 음악회… 내가 이렇게 다채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사회에의 호기심과 유혹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는 너무나 차갑고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약간 괴로워했고 失意(실의)에 차기도 했다. 사회를 어찌해서 꿈에 부푼 나를 이렇게 실망시킬 수 있는가?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나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작정 사회와 주변인들에 대해 실망만 하고 있을 수도 없으며 안일한 無爲(무위)에만 빠져들 수도 없다.
  지나친 허탈과 無事(무사)는 내게 조금치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생활에의 무의미한 나태와, 허겁지겁 달려드는 그 허기처럼 나는 마냥 깊은 잠에 빠져버리고 말테니까.

  어서 묵은 때를 말끔히 씻어 버리고 저 맑은 샘물에 내 얼굴을 담그자! 그 차가운 촉감처럼 냉정한 지성과 열심한 나날들을 나는 마련해야겠다. 그리고 보다 많은 편지를 쓰자. 오랫동안 잊어버린 선생님과, 친구와, 이웃사람과, 또 아끼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띄우자.
  해맑은 이를 드러내고 영롱한 햇살처럼 인사를 나누자. 그것은 곧 죽어가는 나의 영혼에 새 활기를 불어 넣는 것이 아닐까.
  참말 어젯밤에는 긴 잠을 잤지. 아무런 고통과 후회 없이 긴 잠을 잤던 거야.
  이제 2학년이다.
  새 학기 등록과 함께 봄이 달려오고 있다. 이젠 모든 묵은 것들을 정리해야겠다. 막 대학에 들어선 ‘영ㆍ레이디’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부딪힐 그 壁(벽), 때문에 나 역시 약간의 잠 못 이루는 밤을 가졌었고, 그것은 곧 成長(성장)으로 향하는 內面(내면)의 소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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