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스승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국현대문학사’ 강의 시간.
분필을 들어 칠판 오른쪽 위에서 대문짝만 하게 한글 흘림 필체로 강의 제목을 내리 쓰신다.
그리고는 눈을 스르르 감은 채 입을 여신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하실 적에는 얼마나 논리적인지 삼단논법이 무색할 지경이고 표현이 명명백백하여 참으로 명쾌하였다. 실로 명강 중의 명강이었다.
한국 비평문학의 거두, 석재 조연현 선생님이 가신지 어언 30년이 되었다. 스승의 고향 함안 땅에서 함안문인협회가 지난 11월 26일 함안문화예술회관 다목적 홀에서 문학심포지엄 ‘내 고장 출신, 석재 조연현을 말한다’를 개최하였다.

‘석재 조연현은 그 자체가 한국문학사이며 문단사’이며 이를 증명하는 사례를 열거한 주제발표(조병무: 시인, 평론가. 동대 출신. 전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조연현 비평문학의 성과는, 계급주의 문학 비판, 민족주의 문학론 수립, 비평의 문학화, 현대문학문장의 수사적 검토, 한국현대문학을 역사적으로 체계화한 점’(발표자: 홍기삼. 평론가. 전 동국대학교 총장)이라는 주제가 발표되었다.

인물 평가란 시대나 시류에 편승하여 절상, 절하, 과대, 과소평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리창에 낀 성에. 석재 조연현 선생의 절하 되고 과소 되고 왜곡된 평가는 유리창의 성에에 해당될 뿐이다. 성에와 관계없이 유리창은 투명하고 맑은 본래의 모습을 지닌다.

다음날인 27일 10시. 석재 선생의 배움터였던 함안초등학교를 방문하고 인근에 있는 생가를 찾아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마치 스승이 우리를 마중 나오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낮은 담장, 광이 딸린 기와지붕, 마당과 화초. 집 뒤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바알간 홍시를 주워들고 ‘스승도 옛날에 이 감을 잡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은 스승께서 잠들어 계신 데를 찾아가 큰절을 올리지 못한 것이며, 죄송한 점은 문학관을 지어드리지 못한 것이다.

당나라 시인 왕유의 시 ‘송별(送別)’이 떠오른다. ‘봄풀은 해마다 푸르건만 한번 간 임은 돌아오지 않네(春草年年綠 王孫歸不歸).’ 그러고보니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다. 잠깐, 오늘 석재 선생의 고향 땅에서, 유가족, 함안 조씨 종친, 그분의 제자, 친구, 지인,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약 200명이 모여서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사적, 문단사적인 위치를 재조명하고, 공로를 치하하며 그분을 흠모하고 추모한 것은 무상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차창 밖에서 깡마르고 자그마한 체구의 옛 스승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신다. 그리고 한 말씀을 단호하게 던지신다.
“동국인의 혼으로, 동국문학을 발전시키며, 한국문학을 빛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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