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라는 보편적 언어로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다

떨어지는 분수를 본다/자연도 아닌 것이/사람이 만든 것이/무엇을 세우려고 고통하지 않고/맘껏 무너져내리며/나를 장엄하게 일으켜세운다
(문정희 시 ‘분수’의 마지막 열.)

그녀가 그린 분수의 모습처럼 자유롭게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다 고독하고 장엄하게 떨어지는 특유의 에너지를 닮은 문정희 시인.

그녀는 2004년 마케도니아 시축제 최고작품상에 이어 지난 해에는 스웨덴 ‘제 7회 시카다 상’을 수상해 한국 여류작가의 힘을 세계에 당당히 보여 주기도 했다. 특히 시카다 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신경림 동문과 고은 시인밖에 수상자가 없을 정도로 권위있는 상이다. 한국현대문학관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시에서 풍기는 느낌만큼이나 자유롭고 호탕하면서도 온화했다.

세계인이 공감하는 문정희의 시

“Muze의 정원에 초대된 것 같았어요.” 작년 10월 제 7회 스웨덴 문학상 ‘시카다상’을 수상한 일은 그녀에게 문인 생활 중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시는 활발하고 당당한 시적 사유와 시어에 흐르는 여성적 생명의식과 열정, 그리고 자유를 주로 노래한다. 여성이 가진 강인한 힘, 그러면서도 자연에 가까운 온화한 마음이 사회를 보듬을 수 있다는 ‘에코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세계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시는 한국 시인 중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에 출판되었다. ‘시’라는 것이 결국 보편적 삶의 노래라 할 때, 그녀가 가진 손끝의 힘이 문학의 번역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와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문화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더불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 말하며 문학의 힘을 강조했다.

문인의 길 이외 생각해본 적 없어

그녀는 비교적 유복한 딸로 태어났지만 11살 때는 광주로, 15살 때는 서울로 옮겨지고 일찍 아버지를 여의면서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창문 틈 사이 달빛을 보면서 글을 쓰는 자신에게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학교에서 글을 쓰면 늘 칭찬을 많이 받고 백일장에 나가면 꾸준히 상도 타면서 문인의 길 이외로는 장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그야말로 ‘태생 문인’이다.

“시인의 삶은 힘들지만 바꾸고 싶지 않은 끝없는 자기모순이 있죠.” 그녀는 시인의 길이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마치 사랑과도 같아 기쁨은 잠시, 고통스러운 순간이 더 많다고. 또 완성이라는 것이 없기에 노력과 인내를 감수하는 희생정신이 필요한 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문학이 주는 카타르시스, 그리고 문학이 갖는 힘을 믿기에 지금껏 그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미당 서정주, 많은 격려 보내

문정희 시인과 미당 서정주 선생과의 인연은 그녀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본지에서 주최한 문학콩쿠르에서 당당히 장원을 차지했다. 그 때 심사를 맡은 미당선생은 “아따,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은 처음보네~” 라 칭찬하며 후에 여고생 문정희에게 친필로 입학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단다. 그렇게 시작된 특별한 인연은 그녀가 다소 외롭고 고독했던 대학시절에 큰 힘이 되었다. “미당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하늘 아래 내 자신이 있도다.’ 내 자신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가장 존엄한 존재며 그만큼 스스로가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하죠.”

자신이 걷는 길, 또는 나의 문학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하더라도 늘 ‘대(大)긍정’ 속에 빠져 살라는 미당 선생의 말을 전하면서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녀에게 미당 선생은 지금도 늘 그리운 존재이자 큰 스승이다.

그녀의 대학생활과 관련해 재학 중 불교 철학에 대해 많이 배우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한국문학의 미래에는 불교철학이 있다고 생각해요. 깊이 공부하고 수용했으면 한국문화와 문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데 더 도움이 많이 됐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죠” 종교를 떠나 불교의 미학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현재의 추세에 한국을 이해하고 전하는 데 불교공부가 중요한 이유다.

글로벌의식을 가진 ‘지구의 시인’

“남편은 평생 나를 지지하는 나의 최고의 팬(fan)이에요.”
졸업을 하자마자 결혼을 해서인지 결혼이라는 억압적 제도에 대한 불만이 곳곳 표현되어 있는 시와는 달리 오히려 남편은 자신을 지지하는 열혈 독자라고.

양(洋)행을 중요시 여겼다는 미당 선생의 권유로 아이들 둘을 데리고 뉴욕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한 것도 남편이 적극적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문인으로서의 삶에서 최고의 모멘텀(momentum)이자 동기가 된다. 한국문학과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글로벌 의식을 갖고 내 나라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더불어 인접 장르에 대해서도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북부 뉴욕 겐트시에 있는 작가촌 ‘레딕하우스’에서 외국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우리끼리 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지구의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오는 10월, 한국 문인으로서는 최초로 이탈리아의 카포스칼 대학교에 초청시인으로 한 학기동안 심포지엄을 갖는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문학평론가 사이에서 그녀는 여성으로서 온건한 울타리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유의 충동 속에 자신을 던지는 시인으로 평가된다. 현재 그녀는 7년 째 조선일보 신춘문예 최종 심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문정희 시인은 자신의 숨이 다하는 때까지 시를 쓸 것이라 말한다. “인간은 언어로 존재하며, 그 중의 가장 위대한 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문학의 위대함을 믿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동문들과 후배들에게 “하늘아래 자신을 가장 귀중한 존재로 여기고 늘 자신의 충만된 열정을 바라보라”고 전하고 싶다는 문정희 시인.

자신의 길에서 흔들리지 않고 늘 채찍질하며, 항상 좋은 작품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 ‘한국의 빛나는 여류 시인’으로서 그녀는 계속 활약할 것이다. 그녀 안의 꿈틀거리는 여성의 힘과 욕망, 그리고 세상을 향한 소통이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녀는 진정 ‘지구의 시인’이다.

윤설아 수습기자 sseol@dongguk.edu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