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우거지는 6月(월)에 접어들면 마음부터 헤퍼진다. 山(산)이 부르고 바다가 손짓하는 사품에 좀이 쑤셔진다. 이른바 뭉게구름이 머흘어서도 아니고, 방학이 길어서도 아니다. 함부로 구겨진 마음의 운두를 높이고, 덩달아 머리의 空白(공백)을 메꾸는 푼수에서다. 싱싱한 푸르름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눈총으로 무디어진 붓을 버리는 풀무가 되어서다. 지질렸던 활개를 칠 수 있다는 마련 때문에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여름이다.
  일찍이 古人(고인)은 伏中(복중)에도 버선에다 행전까지 치고 여름을 났다. 日課(일과)가 고되 낮잠이라도 오면 짐짓 딱딱한 經書(경서)를 덮고 흥겨운 ‘唐音(당음)’을 외워 졸음을 쫓았다. 모깃불 속에서도 淸雅(청아)한 목소리로 練習(연습)을 일삼았다. 혹 불시의 졸음을 막기 위해 보꾹에 매달은 끈에다 머리채를 옭매는 다부짐도 있었으니, 선비들의 공부는 워낙 出世(출세)의 결판이었다.
  여기에 科擧(과거)의 보람이 안 꼈으니 장할손 그네들의 課業(과업)이었다. 부채조차 삼가고 공부에 一心(일심)한 미련, 그것은 분명 어리석은 修行(수행)이다. 한창 자라는 나이에 책상다리로 죽치고 앉아서 끄덕이다 보니 어깨가 휘었다. 바지를 썩히고 다리를 망치고 말았다.
  그렇다고 평생 공부만 하는 버러지가 아니었다. 제법 소풍도 하는 멋도 있었으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외고집은 아니었다.

  대자리 베적삼에 시원한 마루
  꾀꼬리 우러우러 꿈을 깨워라
  븨인잎 가려진 꽃 늦도록 남고
  열구름 새는 햇살 빗속에 밝아.
  輕衫小靈臥風(경삼소영와풍)령 夢斷啼鶯三兩聲(몽단제앵삼양성) 密葉(밀엽)예花春後在(화춘후재) 薄雲漏日雨中明(박운루일우중명).
  이것은 고려의 名章(명장) 李奎報(이규보)의 ‘夏日卽事(하일즉사)’란 七絶(칠절)이다.
  더위라 생모시 중의를 입고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마루에다 자리를 깔고 누으니 잠은 그야말로 ‘不速賓(불속빈)’일 밖에 없다. 그런데 앙징스런 꾀꼬리의 방정맞은 울음소리로 단꿈이 깨고 말았다. 松江(송강)처럼 임의 종적을 찾기 위해 결에 일어앉은 白雲(백운)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아하니 우거진 잎에 가려져 철을 넘긴 느림보 꽃이 남아있고, 먹구름 사이로 여우별이 쏘이는 저 하늘과 가랑비가 내리는 여기가 차곡차곡 개켜졌다. 봄을 놓친 꽃의 矢期(시기)와 야속한 자갸의 實存(실존)이 아예 그림 같다. 게다가 변덕 많은 하늘의 심술도 생각에 따라서는 自慰(자위)도 되려니와 여기에 安分知足(안분지족)의 가르침과 自然隨順(자연수순)의 거룩이 두드러져 돋뵌다. 아득 바득 조바셔 봤자 天運(천운)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 天分(천분)을 打開(타개)함이 젊음의 차지이니, 환경의 지배보다도 환경을 지배하려는 오기가 이에서 비롯된다.

  唐(당)의 杜甫(두보)는 萬卷書(만권서)를 독파한 地才(지재)로도 科擧(과거)엔 보기 좋게 떨어졌다. 겨우 이름을 부친 말단 공무원이 신에 붙지 않아 의욕을 상실한 판에 가뭄으로 말미암은 무더위는 찌는 듯하고, 입맛은 떨어져 식욕이 없는데다가 물것은 들끓고 파리는 극성이니 따분한 官帶(관대)를 풀어 던지며 더워 죽겠다는 발광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판세다. 더구나 수복을 앞둔 公文書(공문서)의 독촉은 빗발치니, 저 山谷(산곡)에 우북한 靑松(청송)이 부럽고, 그 깊숙한 응달에 깔린 얼음을 밟고 싶어하는 하소연을 오늘에 남겼다.
  七月六日苦熱蒸(칠월육일고열증) 對食暫餐還不能(대식잠찬환불능)
  常愁夜來皆是蠋(상수야래개시촉) 況乃秋轉多(황내추전다)승
  東帶發狂欲大叫(동대발광욕대규) 薄書何急來相仍(박서하급래상잉)
  南望靑松架短堥(남망청송가단무) 安得赤脚踏層氷(안득적각답층빙)
  그러나 杜甫(두보)는 自己喪失(자기상실)의 敗北者(패배자)가 아니었다. 임금을 堯舜(요순)보다 위에 모셔서 풍속을 다시금 순박하게 하고야 말겠다.(致若堯舜上(치약요순상) 再使風俗淳(재사풍속순))는 參與意識(참여의식)에 불탔다. 비록 病(병)을 特許(특허)처럼 앓은 杜甫(두보)요, 萬里(만리)를 사발농사꾼으로 떠들은 杜甫(두보)였지만 코가 빠지는 가난 속에서도 愛國憐民(애국연민)의 熱願(열원)은 잠시도 잊지 못했다. 그 주제에도 더위를 삭히고자 아내를 이끌고 뱃놀이를 하는가 하면 아이들의 멱 감는 시원을 바라보는(盡引老妻乘小艇(진인로처승소정) 晴看稚子浴淸江(청간치자욕청강)) 杜甫(두보)였다. 정말 답답한 長夏(장하)요 事事幽(사사유)의 도가니였다. 自去自來(자거자래)하는 지붕 위의 제비만도 못하고, 相親相近(상친상근)하는 강물 위의 갈매기만도 못한 싸구려 人生(인생)이었다. 無聊(무료)의 消遣(소견)도 하루 이틀이지 아내는 장기판을 그리고, 자식은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든다.
  그것은 정녕 杜甫(두보)에게 도전하는 現實(현실)의 作戱(작희)였다. 그렇다고 그 現實(현실)에 사로잡힐 杜甫(두보)는 절대 아니었다. 당장 죽어도 애햄하는 杜甫(두보)였으므로 드디어는 千年城(천년성)과 萬年城(만년성)이 알뜰하게 쌓아졌다. 自尊(자존)에 살고 自慰(자위)로 견단 杜甫(두보)는 心象(심상)을 錄化(녹화)하고 生活(생활)을 詩化(시화)하기에 눈물 어린 붓방아가 바빴다.

  한편 杜甫(두보)보다 10年丈(년장)인 李白(이백)은 杜甫(두보)와는 그 바탕부터가 사뭇 다르다. 現實(현실)과의 타협은커녕 現實(현실)의 逃避(도피)에서 보람을 찾고 永遠(영원)을 수놓았다. 社會(사회)의 不安(불안)과 生活(생활)의 不調(부조)따위에 눈을 돌릴 나위가 없었다.
  하이얀 깃부채 슬슬 부치며
  싱그런 숲 속에 벗어부친 채
  두건은 벗어서 벼랑에 걸고
  이마를 드러내 솔바람 씌네.
  란搖白羽扇(요백우선) 裸體靑林中(나체청림중)
  脫掛石壁(탈괘석벽) 露頂(로정)려松風(송풍)
  이것은 ‘夏日山中(하일산중)’의 五絶(오절)이다. 社會(사회)와 制度(제도)에 주저할 李白(이백)이 아니다. 그나마 靑林中(청림중)이라 백번 다행이다. 친구와 더불어 마시다 자면서 지은 ‘友人會宿(우인회숙)’에 보면 “千古(천고)의 한시름 씻어 버리고, 一百杯(일백배) 싫도록 마시잤구나./ 좋은 밤 멋지다 얘기 안 하고, 새하얀 저 달에 잠을 자다니./ 거나히 취하자 산에 누으니, 이불과 벼갤세 하늘고 땅이”란 解脫(해탈)의 주인이다.

  杜甫(두보)도 飮(음)엔 손이 꼽히지만 굳이 ‘愁恨別淚(수한별루)’가 아니고는 作詩(작시)치 못하는 李白(이백)이 아니다. 天子(천자)가 불러도 술은 마셔야 했고, 素材(소재)가 흔다고 망설이는 發想(발상)이 아니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創作(창작)하기보다는 酒中仙(주중선)을 自負(자부)하며 노래한 李白(이백)이다. 節制(절제)보다 起興(기흥)이 우선이었다. 古人(고인)이라고 禮度(예도)만을 따진 것은 아니다.
  차마 現實(현실)과 타협 할망정 항시 自己(자기)의 자리, 자기의 구실을 잊지 않은 거기에 本分(본분)과 使命(사명)이 도도했다. 여기에 人生(인생)이 값지고 生活(생활)이 멋졌다. 이 울안에 피어난 꽃이 詩(시)요 哲學(철학)이다. 정자나무 그늘에다 멍석을 깔고 文學(문학)을 읽는 재미는 과연 윗길이다. 황소의 영각이 거슬리기로니 대수랴. 매미가 귀창을 뚫어도 騷音(소음)보다는 낫다. 公害(공해)의 구렁에서 벗어나 太(태)의 싱싱으로 가셔내는 그부터가 來日(내일)에의 마련이다. 풋내가 물씬물씬 묻어나는 가운데서 삶을 따진다는 것은 사실 여름만이 지닌 호사다.
  내가 여름을 가장으로 즐기는 속셈은 그 엉뚱한 참외서리의 재미보다도 解放(해방)된 낮잠의 꿀맛과 잠을 깬 뒤의 遠望(원망)이 하도 후련해서다. 허니 古詩(고시)로 더듬는 古人(고인)의 여름은 한갓 꿈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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