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공동체 사회로 나아가야”

 

박원석 동문을 만난 것은 8월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시행되고 있던 날이었다. 박 동문이 속해 있는 참여연대에서 무상급식 투표 불참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투표 결과에 신경을 쓰고 있는 듯했다. 정치적 이념이나 노선은 일단 차치해두고,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하는 박원석 동문이 바라보는 현 상황과 앞으로 꿈꾸는 비전은 무엇인지를 들어보았다.
 

박원석 동문 프로필

△1970년 출생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994년 참여연대 발기인으로 참여 △2006년 참여연대 상근 협동사무처장 겸 집행위원 △2008년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2011년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박원석 동문
학생 운동 시절 화염병을 던지며 투쟁했던 그의 이력과는 달리 실제로 만나본 그는 낮은 목소리 톤의 온화하고 차분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요목조목 근거를 들어 확고한 소신을 펼치는 모습에서 투사의 강인함이 묻어나왔다.
 
불의 보면 참지 못했던 운동권 시절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로 학생운동은 대중적 노선으로 변하고 학생회 중심으로 학내 시위가 이루어졌다. 88학번인 그는 총학생회 집행부 사회부장으로 있으면서 학생운동의 선봉에 있었다.

“일본 수상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일감정에 대한극장에서 일장기를 태운 적이 있어요. 그 때문에 교사범으로 수배망에 올랐고 학교 근처에서 거의 숙식을 해결하며 숨어 지내곤 했었죠.” 2학년 때 교내에서 함께 학생 운동을 하며 만난 여인이 지금의 아내라며 겸연쩍게 웃음을 보였다.

사회학과 출신인 그는 사회 구조를 탐구하는 학과 수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교수로는 1학년 때 지도교수였던 양영진 교수를 꼽았다.
“당시 학생 운동에 대해 공부를 등한시 한다는 면에서 곱게 보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랑스럽게 여기며 진로를 고민하는 사회학과 후배들에게 소개해 주기도 하세요.”
 
자기실현의 과정, 후회한 적 없어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화학물질 부실 관리를 고발하고 있는 박원석 동문.
1994년 참여연대 발기인으로 참여해 상근간사, 연대사업국 국장 등을 거쳐 2006년부터 상근 협동사무처장 겸 집행위원을 맡아왔다. 2008년 한미FTA 쇠고기 협상 문제로 떠들썩했던 당시 ‘광우병 위험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촛불시위를 이끄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꿈을 품고 투쟁해오기까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혹시 이쪽에 발을 들여놓은 것을 후회한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대학교에서 학생 운동을 한 이후로 계속 이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물론 가족의 반대로 인한 갈등, 경제적 여건 등의 문제로 힘든 것도 있었지만 시민운동가의 길을 선택한 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이상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매 순간마다 성취감을 느껴요. 자긍심을 느끼고 내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자기실현의 과정이라 생각해요.”
당시 시민단체(NGO)라는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참여연대의 창립멤버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의 영향력 있는 단체로 일궈내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힘들었던 순간보다 보람 있던 순간들이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며 감상에 빠진 그의 얼굴에서 낙관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라
정부중앙청사 별관 앞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진상을 규명하고 국정조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모습.
극심한 취업난에 등록금 부담으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대학생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 때보다 요즘 세대의 경우 훨씬 미래가 불투명하고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려운 상황이에요. 기성세대로서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대학생들의 사회참여나 비판의식이 저조해졌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것은 환경,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어록 중에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라’를 인용하면서 사회에 관심을 갖고 다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도 최근 반값등록금 시위는 학생들 자신의 이익에 관한 것이지만 또 사회 문제이기도 한데, 이에 관심을 갖고 직접 행동에 옮긴 것은 큰 의미가 있어요.” 앞으로 활발한 학생 참여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사회는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유기체이므로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고 자기의 역할을 찾는 자세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복지국가로의 구체적 이행이 목표  
보편적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아이들 먹는 문제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비교육적, 비인간적 태도죠. 완전한 보편적 복지는 없다 할지라도 어린 아이와 노인들에게는 가능한 한 차별 없이 평등하게 주어져야 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외형적 성장만 이루었지 속을 들여다보면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행태가 도처에 팽배하다. “차별을 줄이고 인권을 추구하며 환경의 압박 없이 자기실현의 욕구를 추구할 수 있는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일조하고 싶어요. 복지국가에 대한 담론은 이미 확산되었고, 이제는 복지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가치와 비전을 구체화하고 정책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향후 계획입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저녁에 운동본부 공식입장을 발표하고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문화제에 가볼 예정이라고 했다. 신념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 온 박원석 동문처럼 우리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기에 앞으로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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