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月(월) ‘現代文學(현대문학)’을 통해 본교의 두 同門作家(동문작가)가 탄생되었다. 한 同門(동문)은 詩(시)를 쓰는 宋東均(송동균)(58年(년) 國文科(국문과)卒(졸))씨이고, 한 同門(동문)은 小說(소설)을 쓰는 金容喆(김용철)(61年(년) 國文科(국문과)卒(졸))씨이다.
  이 두 同門(동문)은 文學(문학)수업에 20여 년간을 전념해온 분들. 문학을 공부하는 東國(동국)의 전통은 계승되어야 한다면서 創作(창작)에의 집념은 個人的(개인적)인 고된 수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宋東均(송동균)

  <각박한 生活(생활)에 리듬을 주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宋東均(송동균)(58년 國文科卒(국문과졸))同門(동문)은 <오랜 기다림과 집념 끝이라서 이번 詩(시)推薦完了(추천완료)가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밝힌다.
  高校(고교)시절에 ‘解脫(해탈)’이란 詩(시)를 ‘新太陽(신태양)’誌(지)에 발표한 후 줄곧 詩作(시작)에 열중했다는 宋同門(송동문)은 本校在學(본교재학) 시절에도 ‘東國詩集(동국시집)’ 등을 통해 이미 文壇(문단)에 데뷔한 많은 동료들과 함께 詩作(시작)활동에 주력했다고. 졸업 후에는 개인사업 등에 손을 대면서 잠시 침체된 채 詩作(시작)과는 좀 먼 생활을 했으나, <이때도 한 달에 1篇(편)은 써야 된다는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未堂(미당) 徐廷柱(서정주)교수는 추천후기에서 <大人(대인)에게 거는 기대와 같다>면서 宋同門(송동문)의 詩的(시적) 역량을 높이 평가했는데, 宋同門(송동문)은 <앞으로도 꾸준히 詩作(시작)에 노력하겠다>면서 <現代(현대)의 숨 가쁘기조차 한 위기의식에 自然(자연)의 서정성을 도인해 詩(시)로 표현하겠다>고 다짐한다.
  <인간에게서 愛情(애정)을 빼면 무엇이 되겠느냐>고 반문하고 <애정은 사실상 原初的(원초적)인 自然性(자연성)에 있다>고 自然(자연)을 강조.
  東國文學(동국문학)에도 언급한 宋同門(송동문)은 <東國文學人(동국문학인)은 개인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의 傳統的(전통적)인 文學風土(문학풍토)를 發展(발전)시키는데 서로 힘을 모아야 된다>면서 <東國文學創作敎室(동국문학창작교실)등을 열고 전통의 계승에 안간힘을 보이는 것은 그런대로 반가운 일>이라고 밝혔다.
  3男(남)2女(녀)의 가장인 宋同門(송동문)은 32년 全北(전북) 정읍 出生(출생). 현재 운수업체의 代表理事(대표이사).


▲金容喆(김용철)

  <변화․감격 없는 지루한 생활이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金容喆(김용철)(61년 國文科卒(국문과졸))同門(동문)은 <지루한 권태에서 이겨내기 위해 글을 쓴다>고 밝힌다. <이 신선감을 찾기 위한 몸부림을 무려 20년 가깝게 詩(시)와 小說(소설)로 표현해 왔다>며 그래서 이번 추천완료는 <귀중한 기쁨 대신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自覺(자각)이 먼저 앞선다>고.
  大田高(대전고)시절 ‘思荀(사순)’ ‘文藝村(문예촌)’ 등의 同人誌(동인지)를 만들며 詩(시)와 小說(소설)의 習作(습작)에 열중했다는 金(김)동문은 본교재학 중에도 <원고지를 들고 밤샘하는 그 창조적 고뇌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65년에는 忠淸日報(충청일보)의 신춘문예에 詩(시)가 당선되어 주로 시에 몰두했으나 <역시 소설 쪽이 대중과의 대화통로가 넓은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소설공부를 시작한건 74년 소설가 吳永壽(오영수)씨를 만나면서 부터라고. 추천도 吳永壽(오영수)씨가 맡아 해줬는데, 吳永壽(오영수)씨는 추천후기에서 성실히 인생을 살아가는 金(김)동문의 태도를 높이 칭찬하며 특히 文體(문체)가 월등하다고 評(평).
  小說(소설)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는 <사실 모교에는 小說(소설)을 지도하는 교수가 적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文學(문학)이 아주 個人的(개인적)인 창조적 작업인 이상 피를 말리고 뼈는 깎는 성실한 인격수련을 통해 文學(문학)으로 형성화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
  앞으로는 주로 서민의 아픔을 그리는 데에 주력하겠다고.
  슬하에 2男(남)1女(녀)를 두고 있는 金同門(김동문)은 38년 忠南(충남) 扶餘(부여) 출생. 현재 東大附高(동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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