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울 속에 나 자신의 해골을 보는 죽은 사람입니다. 또는 눈을 뜨고서 내가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의 가장 어두운 부분 속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꿈속의 인물입니다. 나는 이미 형무소의 기능으로써 밖에는 아무런 행위도 思考(사고)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행위는 형무소라는 테두리 안에 한정 되어 있습니다. 나는 벌 받은 한 사람의 人間(인간)에 불과 합니다.’라고 1946년 <장미의 奇蹟(기적)>에서 자신을 서술해 놓은 작가 쟝․쥬네(Jean Genet, 1910-)의 문학 작품 세계는 제 2차 세계 대전 후 혜성과 같이 돌연 프랑스 문단에 나타났다. 그의 작품세계는 고독하며 괴이했고 그 아무도 흉내 내거나 침범할 수 없는 독특한 경지로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해 그 類例(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체를 통해 역겨울 정도로 강한 피 냄새와, 땀 냄새, 끈적거리는 정액의 냄새를 풍기며 不道德(부도덕)적이고 惡(악)의 세균이 창궐하고 있다.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는 ‘사디스트’와 ‘매조키스트’ 男色(남색)등 變態性(변태성)에 차있고 위태롭기 한량없이 증오에 차 있다.
  이는 그의 작품에 못지않게 그의 살아온 생애가 소설적이며 드라마 적인데 기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도둑 日記(일기)>는 자신의 성장을 근거로 한 반 자서전적 소설로그가 악에 얼마나 충실했으며 순수했는가 말해주고 있다. <도둑日記(일기)>를 근거로 한 Fiction보다 더욱 Fiction적인 그의 성장과정을 살펴보자.
  쟝․쥬네는 1910년 파리의 어느 공립 무료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일체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娼婦(창부)인 그의 어머니는 바로 그를 버리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빈민구호국의 관리하에 놓인 그는 일곱 살 때 중부 불란서의 어느 고원지방 농가에 보내졌다. 대단히 민감하고 종교적인 경향이 강한, 사랑에 굶주린 소년이었으나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저 동정으로 지급되어 주어지는 물건이외 어느 하나도 자기 것을 가지지 못한 그는 도둑질을 시작하였고 열 살 된 어느 날 도둑질을 하다 발견됐다. 이윽고 그는 감화원에 수용되나 그곳으로부터 탈주한다. 그 후 20년 도둑 日記(일기)에 서술해 놓은 그대로 감옥에서 감옥으로 옮겨 사는 생활이 아니면 구라파 각지와 ‘에스파냐’반도까지 방랑자로 떠돌아다니며 어느 때는 거지로 어느 때는 男娼(남창)으로, 그러나 대부분의 시기는 도둑으로 지냈으며, 한동안 외인부대의 兵士(병사)로 북아프리카에가 있었으나 상관인 흑인장교의 소지품을 훔쳐 탈영, 다시 무기 密賣(밀매)와 마약 밀매 등 惡(악)에서 惡(악)으로 연결된 삶을 살았다.
  이로써 그가 악의 편에 서서 얼마나 순수했는가 말해주며 그는 딴 사람들이 善(선)을 목표로 하듯 惡(악)을 목표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男色(남색)행각은 ‘앙드레지드’의 그것과 상이한 국면을 나타낸다.
  ‘쥬네’도 남자의 육체를 좋아했고 ‘지드’도 남자의 육체를 좋아했다는 점에서 일치할지도 모르나 前者(전자)의 것은 피동적인 것이었으며 後者(후자)는 加虐的(가학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前者(전자)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의 받아들임이었으나 後者(후자)는 숙명에 대한 처절한 대결 반항이었고, 전자는 이에 즐거움을 느끼며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으나 후자는 순수한 여성애의 동경을 버리지 못한 聖性(성성)에 대한 철저한 파괴였다고 보겠다.
  ‘장․쥬네’는 작품의 주제가 특이한 점에 못지않게 그의 문장 언어구사의 방법도 특이할만하다. 그는 戱曲(희곡)상으로도 ‘이오네스코’ ‘헤롤드핀터’ ‘샤무엘 베케트’와 함께 現代(현대) 反演劇(반연극)의 기수로 꼽히고 있는데 戱曲(희곡)作品上(작품상)에서의 언어는 환상적이며 제사를 지낼 때나, 예식을 지낼 때 사용되는 특수 용어처럼 呪術的(주술적)이며 祭式的(제식적)으로 혼미하여 마술과 같은 위력을 내포하고 있다.
  반면 소설 작품상에서의 언어는 詩(시)처럼 쓰여져, 흔히 그가 즐겨 찾는 罪囚服(죄수복)과 눈꼽, 男根(남근)과 이(?), 부러진 八(팔), 쓰레기통 등 사물 하나 하나 가장 지저분하며 우리에게 증오감을 일으키게 할 더러운 것들에게까지 生動(생동)하는 힘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르트르’는 <장주네 論(론)>에서 ‘사회로부터 언어의 사용이 박탈된 자, 자기의 유죄성을 告白(고백)하는데 밖에는 언어의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도둑>’쥬네‘가 항상 자기 本質(본질)을 속여서 말하고, 언어의 통상적, 직접적 사용의 不可能(불가능)한 상태에 있어서 오로지 그 허구적이며 시적인 사용에만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에 숙달하여 교묘한 언어 구사자로 되었다’라고 그의 사생활을 꼬집듯 一針(일침)을 가하고 있지만 ‘怪物(괴물)이면서 완벽한 작품’ ‘가장 특이한 가장 아름다운 詩的(시적) 作品(작품)’이라고 찬양되고 있다.
  끝으로 그의 작품을 소개하면 소설로 <꽃의 노틀담 1944> <장미의 奇蹟(기적) 1946> <葬禮式(장례식) 1947> <도둑 日記(일기) 1948>이 있으며 희곡으론 <엄중한 감시 1947> <下女(하녀)들 1948> <발코니 1956> <흑인들 1958> <병풍 1961> 등이 있다.
  <엄중한 감시>는 그의 처녀 희곡으로 감방을 무대로 삼고 있다. 이 작품은 범죄의 계급성을 다룬 것으로 죄수의 두목과 그를 따르는 졸개와의 관계에 있어 극 전체를 일종의 白日夢(백일몽)처럼 환상의 세계로 바꾸어 놓는 매력이 있다. 시종일관 빈정거림과 악의 誇示(과시), 증오심의 자극, 끝내 살인의 얘기로 끝을 맺는다. <下女(하녀)들>은 어느 자매 下女(하녀) ‘솔랑주’와 ‘끄레느’의 자기 학대와 피학의 극단으로 밀고나가 그들이 섬기고 있는 부인 마님을 살해하려 하나 이루지 못하고 또 다시 허탈의 악순환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허나 아직도 그의 작품은 우리의 관객과 독자들에게 생소하며 따뜻한 사랑을 못 받고 있는 듯싶다.
  마지막으로 현재 늙어 버린 <도둑> <쥬네>에 대한 逸話(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사교계의 귀부인들은 가끔 ‘쥬네’를 초대하고, 그의 참석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다녀간 후 혹시 없어진 물건이라도 없는가 살핀다. 없어진 물건이 하나도 없을 때 그 부인들은 섭섭해하며 슬퍼한단다. 때문에 쥬네는 어디에 초대되어 가면 항시 주최측 사람들을 슬프게 해줄 수 없어 지금도 재떨이건 포크건 훔쳐가지고 나온단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이야긴가.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