首席卒業(수석졸업)한 四年(사년) 獎學生(장학생)

首席(수석)이라는 무게 있는 어휘에 집착할 것 같지 않은 모습을 지난 韓奎英(한규영)(28세)군의 첫마디는 “과분한 영광이다”라는 겸손의 말이었다.
首席卒業(수석졸업)이란 소식도 자택을 방문한 記者(기자)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면서 차분하면서도 소탈한 모습에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않는다.
“이 모든 영광은 저를 지도해주신 은사님들과 半分(반분)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면서 “결실의 계절에 맛볼 수 있는 농민 같은 마음”이라고 현재의 심정을 토로한다.
韓君(한군)은 大學在學(대학재학) 4年(년)동안 줄곧 獎學(장학)혜택을 받아온 수재로, 1학년 때는 優等獎學(우등장학), 1학년 때부터 文敎部(문교부)에서 지급되는 韓國財源獎學生(한국재원장학생)으로 만년獎學生(장학생)이란 말이 적격인 努力型秀才(노력형수재), 총 1백72학점에 평균 93.2를 획득했다.
農業(농업)에 종사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으로 農大生(농대생)이 되었다는 韓君(한군). 농촌근대화와 소득증대에 충실한 일꾼이 되어야겠다는 소박하면서도 투철한 자기 나름대로의 哲學(철학)을 피력한다. 그래서 大學院(대학원)진학을 권유하는 지도교수님의 성의까지도 마다하고 농장을 경영하겠다는 푸른 꿈을 실천단계라고 한다.
自己(자기)전공에 맞는 생활이어야 自己(자기)發展(발전)도 꾀할 수 있다는 단순한 哲理(철리)대로 이미 용인郡(군)에 7千(천)여坪(평)의 土地(토지)도 마련해 놓았다고. 축산을 겸한 약초재배에 젊음을 불사를 각오라고 한다.
“4년 동안 줄곧 獎學生(장학생)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저와 ‘學究派(학구파) 女學生(여학생)’덕분이었다”고 슬쩍 화제를 돌리는 韓君(한군)은 재학 중 여자 친구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대학생활 중 學究(학구)에만 치중하다보니 써클활동 한번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고 대학의 낭만을 만끽하지 못한 아쉬움을 느낀다고. “공부와 과외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학인이 되었으면”하고 후배들에게 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학교당국에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農林大(농림대)學內(학내)실험농장과 연습림의 충실한 운영과 지원.
“大學(대학)을 首席(수석)으로 나선다고 人生(인생) 역시 首席(수석)人生(인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평범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충실한 일군이 되겠다”고. 韓(한)군이 농촌에 투신하게 된 精神的(정신적)영향을 준 것은 ‘가나안’농군학교의 창설자 舍容基(사용기)氏(씨)의 자서전이었다고.
농업에 종사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6남매중 3째. 취미는 바둑과 테니스.
▲수원고교卒(졸)
▲農林大(농림대) 農生果(농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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