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孟子(맹자)’思想(사상)의 理解(이해)

孟子(맹자)의 政治思想(정치사상)

  맹자가 살던 戰國時代(전국시대)에 들어서자 周初(주초)에 完成(완성)되었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이기적인 富國强兵主義(부국강병주의)가 성행하였으며 당시의 유교도들은 공자시대에 있었던 신선한 학문태도를 거의 잃고 있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맹자는 예부터 내려오는 성현의 道(도)를 자기가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여러 나라로 유세하였는데 그의 정치사상에는 天命思想(천명사상), 理想主義(이상주의), 民本主義思想(민본주의사상), 革命思想(혁명사상), 王道政治(왕도정치) 등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天命思想(천명사상)과 革命思想(혁명사상)

  天(천)은 宇宙萬物(우주만물)의 주체자로서 우주만물을 創造(창조), 지배, 감독한다는 것이 天命思想(천명사상)의 主題(주제)인데, 따라서 사람은 다 天(천)의 衆子(중자)로서 天(천)은 자시의 衆子(중자)인 인민가운데서 가장 덕망있는 한 사람에게 命(명)하여 天(천)을 대신하여 인민을 통치하는데 그 대신 통치자는 天(천)의 아들이며 天意(천의)의 대행자이므로 옛날 요순임금과 같이 德(덕)이 출중해야 되고 또 꾸준히 나타내는 民意(민의)를 얻어야 하며 만약 天子(천자)가 德(덕)을 잃었을 때에는 이미 天子(천자)로써 지위를 상실하고 一夫(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有德者(유덕자)가 나와서 이를 토벌한다는 思想(사상)이 孟子(맹자)의 역성혁명사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은 반드시 德(덕)을 잃은 자가 夏(하)의 걸왕처럼 폭군이어야 하고 치는 者(자)는 殷(은)의 탕왕처럼 有德者(유덕자)라야 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또 역성혁명사상은 농민에게 君主(군주)가 德(덕)을 잃었을 때는 포악한 君主(군주)를 몰아내고 다른 有德者(유덕자)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고 군주에게 백성을 잘 다스리라는 일종의 경고로써의 소극적 의미밖에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王道主義政治思想(왕도주의정치사상)

  맹자는 주로 梁(양)의 혜왕, 齊(제)의 선왕 등의 문공에게 政治(정치)理論(이론)을 유세하였는데 그 이론은 王道主義(왕도주의)로서 王道(왕도)는 요, 순, 우, 탕, 文武(문무)의 고대 聖王(성왕)들이 천하를 다스리던 道(도)(방법)를 말하는 것이다. 맹자는 王道(왕도)는 仁(인)의 도덕으로써 仁政(인정)을 행하는 것이고 패도는 인정을 가장하여 무력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구체적 방법으로서 농사에 힘쓰게 하여 인민을 안정시키고 배움을 일으켜 人德孝悌(인덕효제)의 道(도)를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나 恒産(항산)이 없으면 恒心(항심)이 없다는 맹자는 민중의 경제안정을 기초로 도덕과 王子(왕자)의 仁政(인정)을 토대로 봉건 지배계급 체제의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완전한 심복 및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최후의 목표로 한 것이다.


맹자의 性善說(성선설)

  맹자는 人性(인성)의 개념규정을 인간의 본능에 두지 않고 도덕적 先天(선천)能力(능력)에 두고 心性(심성)을 도덕적인 면에서 평가하였다. 그러므로 心性(심성)은 善(선)하며 인간은 측은지심(仁(인)), 수오지심(義(의)), 사양지심(禮(예)), 시비지심(智(지))의 4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이 인간의 性善(성선)에 대한 비유를 맹자는 ‘牛山(우산)에 나무들은 일찍이 아름다웠으나 大國(대국)에 가까이 있어서 남벌되고 말았으니 아름다울 수가 있으랴. 밤낮 자라고 비가 내려 싹이 나는 수도 있으나 牛羊(우양)을 몰고 가서 마구 먹여 벌거숭이 山(산)이 되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벌거숭이 山(산)을 보고 원래 나무가 없었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山(산)의 本性(본성)이겠는가’하고 비유했다.


맹자思想(사상)의 비판

  덕치주의와 왕도정치를 부르짖은 맹자가 항상 강조한 요순시대의 이상국가는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한 것이며 현실이 아닌 것으로 이상에 기준을 두고 현실을 비교, 비판했다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물론 유교 자체에서는 요순의 태평성대를 인정하고 시작한 것이겠지만) 또한 도덕을 준수해야 하고 덕치주의에 의한 이상사회를 꿈꾸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治者(치자)계급에 대한 被治者(피치자)계급의 완전한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 治者(치자)계급의 被治者(피치자)계급에 대한 기생생활을 정당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恒着(항착)이 없는 농민에게 恒心(항심)을 요구하는 하나의 도구로 도덕이나 예의 등을 주장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느낀 점

  그 이상이 현실에 받아들여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이며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갔으며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즐거움이다’라는 말은 항상 두고 되새겨야 할 말이라고 느껴진다. 또 그가 魯(로)의 군주를 만나고자 했으나 그 군주 신하의 간언으로 만나지 못하여 실망했을 때 이것도 天命(천명)이라하고 쓸쓸히 한말에서 우리는 고독한 마음을 찾아볼 수 있고 齊(제)의 선왕이 신하에 대해서 물었을 때 왕과 친척간인 신하는 직언을 몇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군주를 갈아버린다는 말을 君主(군주)앞에서 태연히 할 수 있었던 그의 배짱, 기개, 신념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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