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문학)은 良心的(양심적)이어야

  4월, 어느 해 北韓山(북한산) 絶頂(절정)을 내려가던 다섯 사람의 행렬을 생각해본다.
  한창 만발한 철쭉꽃 키에 묻혀 파랗게 질리며 앞장서서 가던 교준이와 그 뒤를 따르던 범모 정희, 현숙이 그리고 꽁무니에 붙어서 한 사람이 더 심심한 表情(표정)을 하고 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이 순서가 한번 이외에는 지켜지지 않았다) 초라한 이 행렬은 제4회 동국인 등산대회에 참가한 바로 우리 同人(동인)이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詩(시)를 써서 同人誌(동인지)를 만들고자 모인 우리는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퉁겨져 나와 있었던 것이다.
  이날 찍은 사진이 미처 현상되기도 전에 교준이는 입대를 했고, 그 후 한 달쯤 후에 또다시 범모가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은 同人誌(동인지) 創刊(창간)호도 엮어보지 못하고 말았지만 처음 시작했던 2학년 말부터 등산대회를 갔을 무렵까지의 동인활동은 詩(시) 습작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물론 나는 이 시기를 同人活動(동인활동)이라고 명백히 부르고 있다.
  그러나 끝내 同人誌(동인지)를 내지 못했던 이유는 있었다. 그것은 우리끼리 자주 만나 이야기하면서 점차 느끼기 시작했던 것으로써 詩(시)로 인한 막중한 使命感(사명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의욕만으로는 쓰여지지 않는 詩作(시작)의 냉엄한 現實(현실) 앞에 자꾸만 굴복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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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습작기에 겪는 어려움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으며 苦痛(고통)이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어설프게 同人誌(동인지)를 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同人誌(동인지)를 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同人(동인)들 마음속에서부터 無言(무언)의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文學(문학)의 폭을 넓히는데 그나마 그 시기는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좀 더 詩(시)에로의 접근을 할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同人活動(동인활동)이 나에게 준 소산임에 틀림이 없다.
  일반적으로 文學(문학)을 하는데 있어서 同人活動(동인활동)의 필요성은 항상 강조되고 있지만 그 동인의 멤버 구성은 가장 힘들고도 중요한 작업에 속한다.
  뜻이 맞고 人間的(인간적)으로 굳건히 結束(결속)되어진 조건 아래에서만이 그 同人(동인)의 올바른 방향이 찾아지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이즘(ism)을 형성하게 되는 위대한 힘을 낳는 것이다.
  4년 동안 詩(시)를 써오면서 이외에도 어쭙잖은 同人誌(동인지)를 내어본 것은 신입생 때 ‘象友(상우)’를 만들었고 다른 학교 친구들과 同人(동인) 비슷한 모임을 자주 갖기도 했다. 그 외의 詩(시) 공부에 도움이 되었던 合評會(합평회), 文學(문학)에 뛰어든 신입생인 나를 격려해주고 詩(시)가 무엇인지를 조금은 눈뜨게 해주었던 선배들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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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꼭 지적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양심을 속이고 글을 쓰는 비열한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동국문단의 매력을 잃어서야 말이 될까, 하루바삐 이런 풍토는 없어져야 되겠다.
  누구보다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우리들이 동료를 속이고 독자를 속인 데서야 어떻게 글의 進境(진경)을 기다려 보겠는가.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글을 쓰는 우리들은 깊이 생각하고 文學的(문학적)인 양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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