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제 나름대로 길을 낸 교차로, 執念(집념) 덩어리 책가방을 힘으로 들고 가는 사람, 도서관은 고요로 그 무게를 지탱하고 여름의 뜨거운 숨결을 知性(지성)으로 同化(동화)시킨다. 農村奉仕(농촌봉사)를 떠나는 사람의 땀에 젖은 배낭엔 村(촌)사람의 소박한 웃음을 따겠다는 意慾(의욕)이.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여행가방엔 여름의 소리와 색깔을 담아오겠다는 싱그러움이. 배움의 길을 자기 힘으로 지탱해야 하는 사람은 방학이란 큰 빗자루로 길을 닦는다. 모두 익는다. 결실을 向(향)한 행군.…○


  대학생과 아르바이트가 긴밀하게 연관지워 지는 것은 우리 현실의 한 일면이기도 하다. 우선 가장 손쉽고(?)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이른바 과외지도, 도서 세일즈 등이겠는데 나의 아르바이트는 좀 색다르면 색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관광회사에서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직업사진사였다.(회사에서는 사진기사라고 부른다.)
  우리 동문의 소개로 S관광개발주식회사 사진기사로 첫 出寫(출사)(사진 찍으러 관광단과 행동을 함께 한다)를 나간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그 첫 出寫(출사)의 아침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레인다. 비록, 학생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냉엄한 곳이라고 익히 들어온, 한 사람 몫을 해내야만 한다고 스스로 다짐 두어야 했던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아침.
  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관광버스에 오르는 관광객들의 즐거운 표정이며, 그 목소리를 들으며 쌀쌀해지는 늦가을 날씨에 발이 시려워 자꾸만 두 발을 차 바닥에 두드려대고 있었다.
  사진기사로서 한사람 몫을 해야 하는 마당에 카메라를 든 승객이 오를 때마다 가슴이 섬찟해졌다.
  강의가 없는 주말을 이용, 용돈도 모을 수 있으며, 여행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기꺼이 뛰어든 出寫(출사)가 그 첫 아침부터 거리감을 가져왔다.
  즉, 관광객들이란 버스를 탈 때부터 여행 기분에 들뜨는 반면 출사 나가는 사진기사는 이것이 여행이 아니라 직업이라는 관념을 갖고 끊임없이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을 소개하는 차내 방송의 ‘아나운스멘트’에서부터 자신을 선보여야 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느끼는 듯한 자존심, 부끄러움의 부피.
  그러나 이렇게 어느 쌀쌀한 날 아침 시작된 나의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많은 성장을 가져다주었다고 확신한다.
  내장사, 설악산, 한려수도 등지의 관광명소를 구경했다는 것보다도 갖가지 인간군상이 관광단에 모일 때 벌어지는 우습고 씁쓸한 일들. 눈살 찌푸려지는 일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저속하다거나 힘들었다고 느끼기보다는 이 사회에 대해 계속적으로 긍정과 부정의 파문을 일으켜 놓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자신의 일, 맡겨진 일에는 진지하게 달려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포장도 되지 않은 도로를 몇 시간씩 흔들리며 가는 시간, 어쩌면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위한 준비로서는 너무 긴 것 같은 시간, 무의미한 것 같은 순간, 순간이 자신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다시 여름을 맞는다. 구름과 바다, 산과 녹음, 열기 속의 사람들, 그리고 많은 밤의 불빛, 나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진지함을 보게 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갖는다. 그리고 사진기사로서 수없이 지나쳐간 얼굴들은 그 진지함이 대다수 인간들의 삶의 자세라고 확인시켜 주었으며 이번 여름의 아르바이트에서도 그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또한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진지하게 임할 것을, 그러면 그 진지한 만큼의 대가는 돌아오는 것이며 자신의 가능성 또한 자신의 내면 속에서 더 크게 일어난다는 것을 배웠다.
  첫 출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중에서 먼발치로 본 서울의 밤과 불빛, 거기서 또한 오늘의 나로 크기까지의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다.
  ‘나도 이제부터는 한 사람의 떳떳한 사회인이다.’하는 귀중한 자부심을 나는 자신의 것으로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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