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제 나름대로 길을 낸 교차로, 執念(집념) 덩어리 책가방을 힘으로 들고 가는 사람, 도서관은 고요로 그 무게를 지탱하고 여름의 뜨거운 숨결을 知性(지성)으로 同化(동화)시킨다. 農村奉仕(농촌봉사)를 떠나는 사람의 땀에 젖은 배낭엔 村(촌)사람의 소박한 웃음을 따겠다는 意慾(의욕)이.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여행가방엔 여름의 소리와 색깔을 담아오겠다는 싱그러움이. 배움의 길을 자기 힘으로 지탱해야 하는 사람은 방학이란 큰 빗자루로 길을 닦는다. 모두 익는다. 결실을 向(향)한 행군.…○


  작년 바로 이맘 때, 난 봉사활동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오직 해보겠다는 의욕만으로 농어촌연구부 주최의 하계봉사대에 한 일원으로서, 가슴 깊이 우리의 농촌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농촌과 농민을, 나아가서는 조국을 이해하고 그들과 가까이 되려고 나름대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농촌 봉사 대열에 참가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어떤 커다란 봉사를 한다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맥 속에 연면히 이어내려오는 주체-농민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함께 호흡하며 그분들에게서 뭔가를 배우고 깨달으면서 흙과 멀었던 자신을 살찌우고, 단체생활을 통해 집을 떠난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서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새로운 나를 찾아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 타보는 호남선 야간완행열차에서부터 또 다른 생활로 접어드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면서 조그만 시골역들을 지날 때 아름다운 밤이기 전에, 이 가다듬어지지 않은 길을 평평하게, 돌을 치우고 잡초를 제거해서 고르게 닦아야 할 그런 사명감이 앞섰던 것이다.
  우리가 갔던 곳은 전라북도 정읍군 내장면의 한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어찌나 공기가 맑고 평화스러워 보였던지 주민들을 대하기도 전에 긍정적으로 내다보면서 크게 또는 작게 젊은 고동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수줍은 듯 머뭇거리며 우리들 주위로 티 없이 맑은 눈동자들! 그 빛나는 눈동자 속에서 희망의 광채를 볼 수가 있었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해지고 캄캄할 때까지 일손을 멈추지 않고, 함께 호미를 잡고 구수한 얘기를 듣고, 저녁엔 피곤한 몸이지만 하나라도 더 배워보겠다는 욕망에 차있는 부녀자들의 매서운 눈초리들은 우리로 하여금 농촌의 앞날에 희망을 걸 수 있게 하였으며, 급속한 물질문명의 변화와 더불어 빚어지는 도시와 농촌과의 심한 격차 즉, 빈익빈, 부익부의 물리적인 사회현상 속에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얄팍한 지식을 최대한도로 심어주고 용기를 내게 하는 활력소가 됨으로써 조금이라도 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 밑에서 모김을 매고 돌이 많은 산등성이의 밭에서 김을 맬 때 손끝은 다 갈라져 있었다. 이렇게 직접 작업을 해보니 그분들의 근면함을 알게 되어 죄책감 내지는 송구심을 불러일으키고,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꽉 짜여진 계획 속의 하루가 열흘 같음을 느끼게 했던, 다시 말하면 진지했고, 보람되고 고된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열흘 함께 생활했다고 해서 무엇이 어떻게 해서 무엇이 어떻게 금방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농촌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던 자신이 나도 그들과 같은 세계에서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또 나름대로 많은 경험을 했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자연에 역행하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것이 큰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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