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동국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자국을 내딛는 곳. 학생회관 앞에서 본관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을 ‘동악로’라 부르며 이 동악로란 이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가를 알고 있는 학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동악로’의 유래를 알기 위해서는 학림관 옆에 자리 잡고 있는 東岳先生詩壇(동악선생시단)부터 살펴보아야 할것 같다.
  이 시단이 자리 잡고 있는 터는 조선 초기 문인이며 중종 때 左相(좌상)을 지냈던 李荇(이행)의 외가가 있던 곳인데 이후 德水李氏(덕수이씨)의 서울집터가 되고, 그 종손인 東岳(동악)李安訥(이안눌)선생이 살아 이른바 德水文脈(덕수문맥)의 거점이 되었다 한다. 그 당시 이곳은 동악선생을 중심으로 당대의 명가인 이호민과 권필 등이 어울려 시를 읊조리며 시단에 앉아 가희들의 노랫가락을 즐겼다 한다.
  또한 목멱산 일대에 대나무와 단풍나무가 우거져 서울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신선놀음’을 하고 있다고 해 靑鶴洞東園(청학동동원)으로 불렀다 한다.
  그 뒤 동악선생의 4대손인 李周鎭(이주진)에 이르러 선조들이 ‘신선놀음’을 하던 자리에 새로이 시단을 쌓고 그 옆 바위에 ‘東岳先生詩壇(동악선생시단)’이란 6글자를 새긴 것이다.
  이 시단은 원래 지금의 계산고시학사 자리에 서있었는데 지난 84년 고시학사의 신축과 함께 박물관에 보관을 하고, 다른 바위에 글자를 그대로 새겨 넣어 지금 학림관 옆 자리에 새로이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동악로’는 과연 어디에서 유래 되었을까?
  1940년대 본교가 지금의 자리에 자리잡은 후 ‘사색로’라는 다분히 낭만적인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후 학생들이 동악선생을 기리어 동악로라 불렀다 한다.
  한편 1985년 8월 15일 문과대 뒤편 남산산책로를 만들며 동악로 개통 기념비를 세워 동악로의 위치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는데 동악선생을 기리는 의미와 ‘동쪽의 산’이라는 의미가 혼합돼 있는 것으로 학생회관 앞길에서부터 남산 산책로까지를 동악로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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