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국제개발협력에서 더 성공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특수성과 국제사회의 현실을 모두 이해해야 한다. UN기준 193개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자를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아프리카에는 한 나라에 평균 40개의 언어가 있다. 또 대한민국이 식민지배를 하지 않고 공여국(Donor Country)이 된 것은 도덕적으로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과거의 피식민지국가가 현재의 수원국(Recipient Country)이므로 대한민국은 수원국을 잘 모른다는
“아 진짜 학교 가기 싫네.” 개학을 앞둔 우리 동네 초등학교 5학년 현욱이의 말이다. 난독증으로 읽고 쓰기가 어려웠던 현욱이는 코로나로 ‘공식적으로’ 학교에 안 가는 날이 많아지자 환호했다. 하지만 시골 지역 면단위에 살면서 ‘전교 60명이 넘지 않는 학교는 전면등교’라고 결정되자 왜 우리만 계속 학교에 가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예민하고 까칠한 데다 틱 증상도 가지고 있던 초등학교 2학년 수혁이는 학교에 가는 날이 줄어들자 오히려 틱 증상이 눈에 띄게 없어졌다. 마침 휴직 중이었던 엄마가 동생과 함께 산에 데리고 가 주었고,
인식 개선 말고 인식 전환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 다소 낯선 학문이다. 2019년 말 출간된『장애학의 도전』(오월의봄)은 1부에서 장애학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풀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는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장애란 무언가 ‘할 수 없음’(disability)의 상태를 의미한다. 다리에 손상이 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버스를 탈수 없음’이라는 장애를 경험하고, 청각에 손상이 있는 농인은 ‘의사소통할 수 없음
최근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아동학대 문제라고 할 수 있으며,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에서의 다양한 법률과 제도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아동학대가 최근에 갑자기 증가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민감성이 매우 증가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1999년 신애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시작된 이후 이번에 정인이 사건은 또 한 번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대응 방식에 있어 전면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
지난 10월 25일 칠레에서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77.6%의 국민이 새 헌법 제정에 찬성했다. 이제 칠레는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과정에 들어가게 됐다. 일부 언론에서 ‘개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잘못된 단어 선택이다. 헌법을 개정하는 ‘개헌’과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제헌’은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 과정이다. 개헌은 기존의 헌법 중에서 일부만 수정하지만, 제헌은 기존 헌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체계를 수립한다. 이러한 차이는 문자적 의미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제헌 과정에서 기존 헌법은 폐기되는데, 그 결과 기존 헌법 조항에 존립
위기의 시대이다. 1백년 이래 최악의 감염병으로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기후 변화는 날로 심대해져 기상은 날이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상학계는 지구 전체의 기후 시스템 차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는 경고를 이미 20년째 보내고 있다. 행성 차원의 위기가 겹겹으로 인류를 덮쳐오고 있다. 이 위기의 원인은, 삶을 개선하려는 인류의 활동이다. 인류는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생태계를 궤멸시키며 그 속에 숨어 있던 병원체를 풀어 놓았고, 대기 중 탄소 농도를 높여 대류권의 열적 평형을
2016년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의 촛불 저항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사회적 변동은 기존 보수집권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면서 중도개혁 세력인 민주당의 안정적인 집권의 길을 열었고 그 결과가 현재 문재인 정부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로 들어선 민선 7기 지방 정부들도 민주당의 압승으로 귀결되었다. 이 연장선에서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함께 국회도 이번 4.15 총선으로 민주당의 압승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 관심이 모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특히 총선 이전까지 국정운영 성과가 미진하고 조국 전 장관 임명사태까지 겹치면서
작년 (2019)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엔 이제 그럴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굳이 한·중·일 3국을 비교할 필연적 이유는 없지만, 일본은 이미 1954년에 (1953. 이때는 황금종려상이 생기기 이전 그랑프리)이, 중국은 1993년에 (1993)가 같은 상을 받았다. 국제영화제가 국가대항의 올림픽은 아니지만 국가의 위상을 떠나 생각할 수 없고, 각 영화제의 최고상은 한 감독의 최고 작품에 주기보다는 그/그녀가 국제영화제에서 쌓아 올린 경력에 주는 것이기에 봉준호 감독의 수상은 응
지난 몇 달 동안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것은 단연 ‘조국 사태’였다. 이와 관련해서 청년 학생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공정성의 문제였는데, 처음 조국 개인에게 향했던 젊은 세대의 분노는 이제 기성세대 전체로 확산하였다. 대통령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것은 ‘합법적이되 불공정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이러한 분노의 배후에는 우리가 공직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과 요구가 놓여 있었다. 즉 장관이든 정치가이든 나랏일을 하는 사람은 그의 행위가 합법적인 것만으론 부족하며 그의 삶 전체가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최근에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의 논란에 묻혀버리는 느낌이지만, 일본상품 불매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이 문제는 조국 논란보다 더 중요하며, ‘냄비언론’의 단순한 현상 중계식 반응보다 훨씬 더 깊게 짚어 봐야할 대목이 많다. 불매운동의 배경인 한일 갈등은 물론 대법원 판결이라는 비정치적 사건에서 촉발되었으나, 곧바로 매우 정치적인 현안이 되었다. 특히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상징적으로 확인되듯이,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동북아의 오랜 블록대립 체제가 심각하게 동요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갈등은 증폭되었다. 그런 만큼 앞으
20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역사적인 날이다. 재판관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의견을 냄으로써 압도적 다수가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한 것이다. 형법에서 낙태죄가 존치된 지 66년, 헌법재판소의 2012년 합헌 결정 7년 만에 이루어낸 전진이다. 그간 여성단체들과 다수의 시민들은 임신중단을 결정한 여성을 형법으로 처벌하는데 반대해 왔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모든 시민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임신·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분리될 수 없고 그 선택에 대해 여성을
‘20대 남성 보수화’와 ‘공정세대’. 요새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하나는 청년들을 힐난하는 용도로 쓰이며, 다른 하나는 긍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청년들을 둘러싼 프레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먼저 ‘20대 남성보수화’는 말 그대로 20대 남성들이 보수화되었고,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매우 흥미롭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지지율이 떨어졌고, 이는 페미니즘 물결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왜 ‘보수’
사람들은 나를 작가, 지식인 등으로 부르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자영업자다. 누군가는 김밥을 팔고 누군가는 옷을 팔 때, 나는 그저 ‘지식’을 팔 뿐이다. 그 알량한 것을 대략 15,000원짜리 책(이라는 물질)에 담는다. 내 몫의 인세가 10%니 1권 팔리면 1,500원 번다. 그렇다. 1,500원짜리 장사를 하는 인간 다이소가 바로 나다. 다행히 김밥이나 옷처럼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다고 여겨져 어떻게든 팔리고 있으니, 그저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좀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사회과학 책 써서 근근이 생계가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야근공화국이요 과로사회이다. 통계청의 ‘2013년 지역별 고용조사’에서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1,743만 명 중 약 27%인 470만 명이 매일 저녁 8시까지 퇴근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밤 9시에도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장인이 15% 수준인 260만 명에 달했다. 직장인 10명 중 1명은 밤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사람들(202만 명, 11.6%)이다. 자정 이후 퇴근하는 이들도 61만 명(3.5%)에 이른다. OECD의 ‘2017 고용동향’ 역시 우리들의 장시간 과잉노동을 보고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유감스럽게도 5월 2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12일 예정되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취소는 그동안 북미간에 오간 언쟁의 난기류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새로운 북미정상회담의 동력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난기류의 원인을 교훈삼아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 애초에 북미정상회담 성공의 관건은 미국이 제시한 ‘핵무기·핵물질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개월내 반출’ 요구에 대해 북미 양측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여부였다. 하지만 북미 양측의 접점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갑 중의 갑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기자들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취재활동을 합니다. 이 법의 적용 대상에 공무원이 아닌 사람으로는 사립학교 교원과 함께 언론인이 포함됐고, 기존 공무원들과 달리 사실상 처음으로 전면적인 제약을 받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워낙 많고 출입처마다도 분위기가 달라 단순화하기는 어렵지만 기자들 대부분은 자신의 취재 활동이 적절한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법원과 검찰 등을 담당하는 법조기자인데 대법관을 만나도, 대형 로펌 대표를 만나도 식사비가 3만원이 넘으면 더치페이를 하고 있습니
2018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인상된 7530원으로 결정됐다. 한편에서는 내심 바랐던 10,000원에 많이 못 미쳐 실망스럽다는 의견도 들리고, 다른 쪽에서는 소자본가나 자영업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정도로 올라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상일이 그렇듯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정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은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펴는가의 문제인데, 마르크스 의 해설서인 저자로서 최저임금 논란을 보며 에 나오는 시니어의 ‘최후의 한 시간’이 떠올랐다.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시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이 문장을 쓸 수 있는 날이 왔다. 희망을 적은 것도 아니며 가설을 쓴 것도 아니다. 그동안 그 긴 시간을 개발사업 하나 막겠다고, 정책 하나 고치겠다고, 법 하나 바꾸겠다고, 진상 하나 규명하겠다고 매달려도 꿈쩍 않는 듯했다. 이 시대는 그 우울한 반복의 지속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결에 이 문장을 사실명제로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써야 할 문장은 무엇인가. 현재로선 “○○○가 대통령이 되었다”가 먼저 떠오른다. 이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국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는 지난 9월 22일 보건복지부가 현행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에 모자보건법 14조 1항을 위반하는 인공임신중절시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항목으로 포함시키고, 이를 시술한 의사는 최대 12개월까지 자격을 정지할 수 있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한 응답이다. 여성들은 낙태죄 처벌 강화를 목표로 한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를 넘어서서, 인공임신중절을 시행하고 있는 여성을 처벌하고 있는 형법 ‘낙태죄’ 항목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시작하였다. 이번 의
“내 꿈은 재벌 2세인데,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해요.” 온라인 공간에서 가끔 회자되는 개그 코너의 대사이다. 최근 여러 ‘짤방’들을 양산하고 있는 이 ‘웃픈’ 대사를 다시 소환한 청년들의 저의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수저론’이라는 유사계급론(혹은 新신분주의)에 강하게 공감한 ‘흙수저’들이 과거 결정론적인 이 개념을 외려 미래-소망으로 투사한 상상의 유희일 게다. 하여 ‘노오력’과 ‘열to the쩡’이 없다고 타박한 어른-부모세대에게 바로 그 어이없던 훈계를 ‘미러링’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편으로는 사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