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Pixabay

   “아 진짜 학교 가기 싫네.”

   개학을 앞둔 우리 동네 초등학교 5학년 현욱이의 말이다. 난독증으로 읽고 쓰기가 어려웠던 현욱이는 코로나로 ‘공식적으로’ 학교에 안 가는 날이 많아지자 환호했다. 하지만 시골 지역 면단위에 살면서 ‘전교 60명이 넘지 않는 학교는 전면등교’라고 결정되자 왜 우리만 계속 학교에 가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예민하고 까칠한 데다 틱 증상도 가지고 있던 초등학교 2학년 수혁이는 학교에 가는 날이 줄어들자 오히려 틱 증상이 눈에 띄게 없어졌다. 마침 휴직 중이었던 엄마가 동생과 함께 산에 데리고 가 주었고, 동네 친구와도 노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학교에 다닐 때보다 더 많이 웃게 되었다. 발끈하던 성격도 온순해졌고, 사회적 기술도 향상되어 동생과 싸우는 횟수가 훨씬 줄었다.

   초등학교 4학년 수희는 도시 학교에 다니다가 면 단위 학교 영양사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시골로 전학을 왔다. 거주지인 도시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고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하자 엄마가 결단을 내렸다. 큰 학교에 다니다가 시골 학교로 오니 아이들과 더 활발하고 친밀하게 놀 수 있었다. 엄마와 등하교 하느라 학원을 다닐 시간이 아예 없어진 것도 수희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코로나가 아이들의 모든 것을 앗아간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줄을 세우고, 아이의 고유성보다는 평균에 빗댄 성취와 발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학교에서 ‘경계인’ 또는 ‘문제아’로 취급되었던 아이들에게는 코로나로 학교를 안 간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학교의 통제에서 벗어나 개인 간의 거리가 확보되면서 아이들은 자기 호흡으로, 자기 형편대로 숨쉴 겨를을 찾기도 했다. 그동안 어떤 아이들에게는 학교 환경이 위험요인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코로나의 ‘이점’ 뒤에는 숨어 있는 대전제가 있다. 아이들 옆에 어른이 한 명 이상 있어서 ‘삼시 세 끼’와 적절한 상호작용을 제공하고 있다는 전제. 우리는 이것을 ‘돌봄’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경우 아이들은 ‘집’이라는 폐쇄공간에 방치되고 고립과 무기력에 휩싸인다. 안전이 위협받는 것도 당연하다. 작년에 어른이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 사망한 초등학생 형제도 돌봄 부재와 고립으로 인한 비극 아니던가.

   그러나 돌봄의 일은 쉽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주로 돌봄의 일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은 다양한 노동이 연속적으로 중첩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돌봄의 일은 암묵적으로 당연하게 어머니에게 집중되지만 모든 어머니가 돌봄을 제공할 조건과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 중 한 명이 없는 가정이라면 상황은 더 어렵고, 혹여 아이가 장애나 질병을 가지고 있다면 돌봄의 일은 수감생활과 비슷한 일이 된다. 코로나로 제일 먼저 학교와 복지관이 문을 닫았을 때, 발달장애인 자녀와 24시간을 집에서 ‘유폐’된 채 지내다가 결국 함께 목숨을 끊은 엄마들이 줄을 이었다. 일방적인 돌봄 노동은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황폐함이 누적되면 모든 걸 포기할 만큼 파괴적이다.

   코로나로 아이들은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생의 활력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본성을 생각하면 정서적 결핍도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학력이 낮아진다는 걱정은 아이들을 ‘인적자원’으로 쓰고 싶은 일부 어른들만의 걱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코로나 시대의 아이들이 어떤지 고민하고 생각하려면 결핍이나 학력의 문제보다는 돌봄의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돌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누가 어떻게 아이들 옆에 있을 것인지를 전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합의를 만드는 일을 교육의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가정이라는 사적 단위에 돌봄의 모든 것을 욱여넣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곪아가는 줄도 모르는 채 겉모습만 번지르르했던 과거를 딛고 더 나은 팬데믹 이후를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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