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세대의 공시생 쏠림 현상

지금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하 공시생) 열풍 속에 있다. 최근 SBS 뉴스에 따르면 취업 준비생(이하 취준생)의 4명 중 1명은 공무원을 준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공시생 유튜버들의 ‘study with me(함께 공부해요)’ 영상이나 공부 계획, 노트 필기를 사진으로 찍어 타인과 공유하는 공시생의 SNS 공스타그램은 하나의 문화가 됐다. 이처럼 청년들의 공무원 선호 현상은 전에 없던 기세로 심화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들 사이에서 부는 공무원 열풍

얼마 전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있었다. 보통 추석에는 흩어졌던 가족과 모여 회포를 풀지만, 공시생의 추석은 달랐다. 이번 추석에 본가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김 모 씨는 “집에 내려가면 생활 리듬이 깨져 다시 공부하기 힘들다”며 “다른 공시생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이번 추석은 열심히 공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국정관리학회의 전년도 연구에 따르면 국내 공시생 인구는 44만 명으로 이는 청년 인구 6.8%에 해당한다. 청년들의 공무원 시험(이하 공시) 준비가 증가하면서 2018년 국가직 9급 공시는 41대 1의 평균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 정책으로 공시에 도전하는 수험생은 더욱 늘어나 공시생 쏠림 현상은 두드러지고 있다.

공무원은 취업의 기로에 놓인 청년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는 진로이다. 공무원 취업을 준비할 때 학력, 학벌, 자격증을 비롯한 소위 스펙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청년들에게는 공시 준비가 사기업 채용보다 더 공정하게 인식된다. 익명을 요청한 우리대학 학생 김 모 씨(22)는 “복잡한 스펙 쌓기보다 시험을 준비하는 게 더 공정해 보이고 준비과정이 내 성향에 더 적합하다”며 공시에 도전한 이유를 밝혔다. 또한 청년들은 휴가, 휴직을 비롯한 복지의 보장을 이유로 공시에 도전하기도 했다. 결혼과 자녀 계획이 있는 청년은 육아 휴직의 보장을 공무원의 큰 장점으로 꼽았다. 공시생 박예찬(24) 씨는 “어릴 때부터 가정을 꾸리고 싶었는데 공무원이 되면 직장 생활과 결혼 생활을 병행하기 쉬울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기업에서 남성이 육아 휴직을 신청하기도 어렵겠지만 휴직을 한다고 해도 복귀가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시생들이 감내하는 어려움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공시생 필기 노트. (사진=이성우 공시생 제공.)

다양한 이유로 수험생활을 시작하지만, 수험생활이 장기화되면서 공시생들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공시 준비 2년 차에 접어든 정 모 씨(28)는 “취직한 동기들을 보면 내 앞가림도 못 하고 지내는 거 같아서 자괴감이 든다”며 수험 기간 중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을 호소했다. 이러한 심리적 어려움은 비단 정 씨의 얘기뿐만이 아니다. 올해 1월, 아시아경제 보도에 따르면 공시생들은 경쟁에서 오는 긴장과 압박 때문에 일반인보다 우울함을 느끼는 비율이 3배가량 높았다. 또한 공시생 중 상당수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시달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공시생들이 심리적 어려움으로 사회 시설의 상담을 요청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동작구 마음건강센터의 이소라 정신보건 임상심리사는 “공시생 상담은 전체 상담 비율의 10% 정도를 차지한다”며 “학생들 인식에서 상담 치료가 아직 보편화돼있지 않고, 상담 기록이 남을까 꺼리기도 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 심리사는 상담 기록은 남지 않으며 상담은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는 효과가 있으니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부담 없이 상담을 요청하길 권유했다.

공시생은 자신의 선택으로 공시 준비를 시작하지만, 수험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이를 포기하지 못해 지속하기도 했다. 서울산업진흥원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공시생 중 30.6%가 공시를 그만두고 기업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공시생은 공시를 그만두고 사기업 취업을 준비할 때 스스로의 경쟁력이 낮을 것이라고 봤다. 사기업 채용 과정에서 수험기간은 공백 기간으로 취급되고, 공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펙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3년째 공시를 준비하는 김 모 씨(27)는 “처음에는 선택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포기하면 남는 게 없어서 한다”며 “준비 기간 동안 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자격증이 만료됐기에 다시 사기업 취업을 준비한다고 해도 막막하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공시생들의 사기업 취업 전환을 돕는 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산업진흥원 강민구 팀장은 “공시생들의 사기업 취업 전환을 돕는 사업이 서울에서 현재 시행 초기 단계에 있다”며 “이러한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취업 전환을 희망하는 공시생에게 구체적 정보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력 끝에 공무원이 됐다고 해서 모두가 공직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2019년에 한국일보가 입수한 ‘최근 5년간 일반 행정직군 공무원 퇴사 현황’에 따르면 임용 후 3년 이내 퇴직한 서울시 공무원은 5년째 4배가 증가했다. 안정성에 대한 기대로 공무원을 준비했지만, 수직적인 조직 문화, 단순 업무의 반복에 지쳐 퇴사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공무원을 그만둔 임 모(33) 씨는 “처음에 공무원을 준비할 때 내 성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단순 업무와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임 씨는 “나는 이런 부분이 힘들어 퇴사했지만, 공직에서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신다”며 “직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너무 아쉽다”고 고백했다. 이에 강민구 팀장은 “공시생들이 생각한 공무원과 실제 공무원의 삶은 다르다”며 “흔히 업무 강도가 낮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바쁘게 일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청년들이 성향의 차이로 업무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조직에서 체계적인 일을 하는 것이기에 개인 성향이 직무에 적합한지 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무원 쏠림 현상, 그 원인과 해결책은?

그러나 일각에서는 청년들의 공시 준비와 공시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밸브 제작 업체를 운영하는 강 모 대표(58)는 “중소기업이 구인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청년이 공시에 도전하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속내를 밝혔다. 강 대표는 “공시생이 어려움을 겪는다지만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거 아닌가”하며 청년들의 도전 의식이 부족한 부분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우리대학 행정학과 주창범 교수는 “도전 의식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창업, 전문직 준비에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며 “자본이 없는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준비하는 것은 기업 취업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주 교수는 청년들의 지망이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으로 편중되는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구조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청년들의 평균 학력이 높아지면서 보수에 대한 기대도 커졌는데, 임금 격차 구조는 개선되지 않아 공시생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답했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공시생 쏠림 현상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에 주 교수는 “임금 격차 개선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며 “공무원 직접 고용은 일자리 창출의 최후 방법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주 교수는 “대기업과 정부 중소기업 간의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기업 친화적 정책을 통해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를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 구조가 개선될 때, 임금 수준 역시 개선될 거라고 보았다.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의 협력적 태도를 기반으로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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