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교정에 날리는 꽃잎들은 한낮에 더 빛이 나고, 봄밤의 나뭇가지와 꽃망울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 풍경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웃고 있는 우리 대학생들의 웃음은 이유가 없어서 더 사랑스럽다. 이즈음의 학생들에게 나는 가끔 예방주사라도 한 방 놓아주겠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장난삼아 이런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중간고사가 끝날 즈음, 학생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질 것이고 한 녀석 두 녀석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이다. 작가 F.스콧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무심히 쓴 것처럼 보이는, “노력해서 겨우 적응한 것들을
3월이다. 3월의 캠퍼스는 신입생의 생기발랄함으로 채워진다. 이 무렵 만나는 신입생에게 어떤 대학생이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되는 것이 신입생들이 기대하는 대학생의 모습인 듯하다. 자기 관점과 주관을 정교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학생에게 자신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개 MBTI를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성향을 나타내는 네 개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소위 가짜뉴스(Fake News)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사회 문제들이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각국,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최근 독일 뮌헨에서 끝난 뮌헨안보회의(MSC)에서 20여 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가짜뉴스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하였다. 올 한 해 동안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40억 명 이상의 유권자들이 크고 작은 선거에 참여하는 가운데 첨단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하여 만들어진 ‘진짜 같은 가짜뉴스’가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가짜뉴스는 ‘정치·
단일민족.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삼아 한반도에서 우리 말과 글을 사용하며 문화나 풍습, 전통을 공유하는 집단을 말한다. 이 개념은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할 때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정서적 동질성 추구도 이러한 단일민족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국제사회는 이런 인식을 비판한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2007년 7월에 한국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인종차별에 해당할 수 있으니 다른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노력을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권고했
4천여년 전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던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항상 요즘 젊은이들은 문제였다. 물론 말하는 사람을 위한 건지 듣는 사람을 위한 건지, 누굴 위한 건지 알기 힘든 꼰대질을 당하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친 이후의 일부 학생들을 보면서 이 지면을 빌어 꼰대질, 혹은 대학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 언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칼럼을 읽은 학생이 혹시 스스로 무언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면 오히려 그 학생은 별
RNA(messenger RNA)는 1980년대부터 알려져 있었으나, 시험관에서 생산할 경우 쉽게 부서지고 염증반응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외면받아 왔다. 하지만, 커리코 커털린 바이온텍 수석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는 mRNA를 구성하는 네 염기 중 유리딘(U)을 변형하면 염증반응을 줄이고, 단백질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염증반응을 줄이고 단백질 생산을 늘려 상용화의 기틀을 마련한 이 연구는 코로나 백신 개발의 기초가 되었다. 이들은 2023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
공림손은 국립극장을 지나 장충체육관을 등지고 좌회전하여 동국대학교 로터스관 지하로 들어간다. 지하에서 100 미터를 더 달려서 우회전하여 다향관 입구에 주차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3D-팔정도는 지하층부터 계단 공연장과 8개의 화강암 기둥으로 되어있다. 불상을 바라보고 우측에는 은행과 스타벅스 등의 편의시설이 보이고 좌측에는 세미나실과 휴게실이 유리 벽 넘어 보인다. 팔정도 계단 광장의 4번과 5번 기둥 사이의 백상 코에서 뿜어내는 분수가 주변 화단 식물들에게 생기를 준다. 명진관 앞의 아미타 불상이 학생들의 움직임을 그윽
오늘 하루를 되돌이켜보며, 혹시 위험한 것은 주변에 없었는지, 다친 곳은 없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안전한 시스템에서 지내고 있었을까?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기술문명의 발전에 따라 물리적인 풍요가 가져오는 안전은 확보하였지만, 점차 복잡해지고 부산물을 수반하는 기술발전이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키고, 위험감수성을 증가시키는 위험사회(risk society)에 살고 있다고 제안하였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 있고,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되는 사회를 지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예전보다 삶의 편의는
대학 입학부터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까지, 그 명칭과 편제상의 변화는 있었지만 큰 틀에서 나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제도적・학문적・사회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러다 박사과정 수료 후 처음으로 약 2개월간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 체류했을 때 마주했던 ‘국제 일본학’의 풍경은 나에게 ‘한 명의 연구자’라는 실감을 처음으로 가져다준 장면으로 기억된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40여 명의 젊은 참가자 중 ‘재일조선인 문학 연구’를 수행 중인 사람은 오직 나 한 명뿐이었지만, 그 외에도 ‘한 명뿐’인 연구자들이 많
참으로 시끄러운 시절이다. 누구나 여기저기서 제멋대로 떠들면서 그저 자기 말만 옳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거짓말인지 알고나 하는지를 생각하니 더욱더 어지럽다.강아지들이 허공에 대고 속절없이 야옹거리고, 고양이들은 멍멍 짖어대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새들이 늦은 아침 먹이를 찾아 걸어 다니고, 벌레들은 누가 보든 안 보든 이른 새벽부터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동화 속에 나오는 이상한 나라보다 더 이상한 세상이다.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공동체에서 사회적 위치조차 모르는 것 같다.급기야 국회의 어느
최근 넷플렉스로 공개된 사이비 종교 교주 및 집단 내부 비리를 폭로한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피해자 심리를 조정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효과를 증명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런 심리적 통제 상황을 절묘하게 극적 동기로 활용한 연극 원작 (1938, 패트릭 해밀턴)과 그 작품을 각색한 영화 (1944, 조지 쿠커)의 핵심적인 상황이 친밀감을 위장한 세뇌효과 폐해란 점에서 작품 제목을 따온 용어이다. 충격적 파장을 생성중인 이 다큐멘터리에서 피해자들이 ‘순종’이나 ‘복
흔히들 Spy라고 하면 007 영화 시리즈나 연상하고 정치적, 군사적 첩보를 생각하겠지만 냉전이 끝난 이후로는 오히려 경제 첩보에 방점이 찍히고 있는 실정이다. 경쟁적 우위, 이점을 선점하거나 쟁취하기 위하여 경쟁자가 영업기밀이나 혁신적 신기술 등을 불법적, 비윤리적으로 훔치는 절도까지도 서슴지 않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절도행위를 쉽게 산업 스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산업 스파이, 산업 첩보는 국가 안보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와 정부에 의한 스파이나 첩보와는 달리 주로 사업적, 경제적 목적으로 민간분야, 기업에 의해서 이루어지
봄이 되면, 중국 현대 유명한 시인이자 산문가인 주자청(朱自淸)의 이 떠오른다. 그는 “일 년의 계획은 봄에 달려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시간도 희망도 얼마든지 있다(一年之計在於春, 剛起頭兒, 有的是功夫, 有的是希望)”라고 하였다. 이 봄에 여러분 또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울림으로 다가오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 단어는 바로 ‘돌봄’이다. 흔히 돌봄이라고 하면 누군가를 돌보는 것으로 아는데 이제는 개념이 확대돼서 시선을 ‘나’에게 돌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자기 돌봄은 다른 사
세계경제가 ‘3중’폭풍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우리경제도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와 기업실적의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곡물 및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충격의 여파로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40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하였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연방준비위원회(FRB)의 연이은 자이언트스텝(0.75%) 금리 인상은 기업들로 하여금 계획된 투자마저 줄줄이 취소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유럽 또한 재정 확대를 통해 소비 및 투자 침체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막대한 국가부채는
오래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다. 존재의 주체로서 사람이란 용어보다 공동체를 이루고 더불어 사는 주체로 인간이란 용어를 더 많이 쓰는 것도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격의 주체이면서 권리의 주체인 인간의 존재가치를 이미 법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정보통신의 확산으로 인간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예측할 수 없었던
권력의 평가는 구성원의 ‘묵인과 공감 그리고 동의와 지지’의 여부 또는 그 정도로 이루어진다. 선거의 득표율과 지지율은 동의와 지지를 수치로 나타낸다. 긍정적 권력평가의 최소한은 묵인이지만 최대치는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다.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하는 권력, 성공하는 권력의 필요조건이다.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축소 지향적이다. 5월 10일 취임이후 최근까지 19주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129개. 전체조사에서 나타난 긍정적인 대통령의 국정평가는 ‘평균 38% 부정평가는 평균 56%.’ 19주 동안 대통령 지지율은 하락세다. 대통
2021년 발표된 국립기상과학원의 자료에 의하면 1912년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진행된 이래 한반도는 평균기온 상승, 강수량 증가 및 강수일수 감소와 같은 기후변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적으로 겨울은 감소하고 여름은 길어졌다.기후변화 현상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해주는 생산자인 식물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식물의 생육은 온도와 수분에 의해 결정된다. 기후변화는 평균기온의 상승을 가져와 식물들이 살아가는 생육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경우 그 영향이 심각하다. 서울의 현
신라 경덕왕 때 진주의 불교 신도 수십 인이 극락에 가고자 하는 뜻으로 진주 경내에 미타사를 새로 짓고 1만 일의 염불 기도를 맹세하였다.그때 귀진(貴珍)의 계집종 욱면(郁面)도 귀진을 따라가 절 마당 한복판에서 스님을 따라 염불을 했다. 귀진은 욱면이 제 직분을 모르는 것을 미워하여 매일 곡식 2섬씩을 주고 하룻저녁에 다 찧으라고 했다. 욱면은 초저녁에 이를 다 찧어버리고 밤낮 쉬지 않고 염불을 했다. 그는 절 마당 좌우에 말뚝을 세우고 노끈으로 두 손바닥을 꿰어 말뚝과 연결하고 이를 좌우에서 흔들게 하여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몸
일어나 창문을 여니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가 시원하다. 일찍 일어난 새들은 젖은 나뭇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노닌다. 이런 날 아침 산책을 나가면 길 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종종 본다. 공원길을 돌아 집으로 올 때쯤 아침 해가 뜨고 햇살이 비추면 기어 나왔던 지렁이는 십중팔구 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말라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렁이는 왜 땅 위로 기어 나와 그토록 위험한 길을 떠나는 것일까. 지렁이를 보며 걷다가 실크로드를 거쳐 인도로 떠난 구법승들을 생각한다. 3세기부터 8세기에 걸쳐 많은 승려들이 중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첫인상이란 무엇일까? 이 이야기를 하려면 리터러시(literacy) 분야의 오랜 주제인 ‘comprehension’과 ‘understanding’의 차이부터 살펴봐야 한다. 사전에서 두 단어를 검색하면 대부분 명사로 쓰이며, 뜻은 ‘이해’라고 나온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뜻이다. 그런데 ‘comprehension’은 ‘이해력’이라고 해서 ‘힘’을 의미하는 ‘力’이 뒤에 붙어 있고 ‘understanding’은 ‘특정 주제나 상황에 대한 이해’라고 해서 대화 내용이나 주제가 강조된다. 결국 ‘und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