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은 우리대학의 개교 111주년 기념일이었다. 개교 기념일을 맞아 초기 명진학교부터 지금의 우리대학에 이르기까지의 그 역사를 돌아본다.

우리대학의 태동서부터 지금까지, 백여 년 동안의 역사를 지탱해온 주춧돌은 ‘불교’라 할 수 있다. 교육을 향한 소박한 바람과 작은 소망들이 모여 우리대학의 시발점이 되었다.
1900년대 초반, 신문물의 유입과 함께 근대식 교육이 가능한 불교 학교 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사찰에서 하던 교육을 확대해, 보다 전문적으로 승려를 교육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불교 연구회는 불교의 근대화를 위하여 신학문을 동시에 교육할 수 있는 불교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여러 사찰의 대표들이 수차례 모임을 했고, 조금씩 기부금을 모아 마침내 1906년 동대문 밖에 위치한 과거 원흥사에 정식학교로 인가받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불교 학교인 명진학교의 첫걸음이었다.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을 개발해 자비와 수선에 힘쓰겠다는 취지가 받아들여진 셈이다.
명진학교 설립을 계기로 전국 사찰에는 20여 개의 근대학교가 세워졌다. 이는 명진학교가 단순히 국내에 처음 세워진 불교 학교라는 의미를 넘어, 민족사학에서 불교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상당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

고급인재들 앞다퉈 입학신청
명진은 대학의 도는 덕을 밝히는 데 있다는 뜻의 명(明)과 불교 가르침 중 올바른 도를 향해 수양한다는 정진에서의 진(進)을 빌려 지어진 이름이다.
처음 명진학교가 개교했을 당시, 불교의 최상위 교육단계인 대교과 과정을 마친 고급인재의 학생들이 입학을 신청했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단순 승려교육에서 벗어나 인문학, 자연과학, 예술 및 기술 전반에 이르는 신학문을 접목해 교육했기 때문이다.
1회 졸업생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해 한용운 스님과 종합대학교로 승격한 후 초대 동국대학교의 총장직을 맡은 퇴경 권상로 스님이다. 개교 당시 50명 내외였던 학생 수는 2년째인 1907년이 되자 1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곧이어 일제의 사립학교 탄압이 시작되며 명진학교는 더이상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식민지화 과정 속, 일제는 조선의 불교를 일본의 불교에 예속시키는 작업을 추진했고, 우리대학도 위기를 맞게 된다. 불교와 교육을 향한 일제의 탄압이 점점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의 대중화와 고등교육을 향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전문학교로의 승격을 위해 근대화 교육과정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했고, 그 과정에서 불교 사범학교, 불교중앙학림 등 학교명은 계속해서 바뀌게 된다. 그리하여 1930년, 불교 학교로서 유지되던 우리대학은 중앙 불교 전문학교인 고등 전문교육기관으로 승격하게 된다.
1940년대가 되자 일반 전문교육을 포괄하는 전문학교 시대가 열린다. 우리대학도 세상을 은혜롭게 교화해간다는 뜻의 혜화를 붙여 혜화전문학교로 승격한다.

일제시대, 앞장서 저항해
명륜동에 위치했던 혜화전문학교는 1940년부터 1946년까지 6년간 존속됐다. 일제의 횡포가 가장 심했던 식민지 마지막 시대였기에 일본인이 여러 해 총장직을 수행하고 일본인 교수가 지도하는 비극적인 사태를 겪기도 했다.
이에 불교계는 적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하였고 우리대학 학생들도 명진학교 출신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앞장서 큰 목소리로 민족독립과 국권 회복을 주장했다.
해방이되자 국가에서 종합대학교의 성장을 지향하게 됐고, 우리대학도 종합대학교로 인정받고자 승격을 신청했으나 단과대학 확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동국대학으로만 승격됐다.
하지만 6.25전쟁 직후 불교계에서는 종립대학 설립에 대한 의견이 대두됐고 1953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종합대학교로서의 동국대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대학은 재단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전국에 많은 사찰의 진심 어린 기부가 있었기에 동국 발전을 위한 기반 조성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 때 참여했던 사찰 중 지금까지 그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상당수다.
그 결과, 동국대학교는 4개 학부 (불교대, 문과대, 법대, 농림대)의 46명의 교수와 강사, 8명의 교직원, 987명의 학생으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갖은 역경과 숱한 고비들이 있었지만, 학교는 불교계의 적극적인 지지와 관심과 함께 날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2017년 5월 8일 개교 111주년을 맞게 됐다.
어쩌면 매년 찾아오는 개교기념일은 동국인들에게 있어 하루 쉬는 날 정도로 인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11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크고 오래됐다는 개념을 넘어서 불교와 우리대학이 가진 소중한 역사적 가치를 증명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